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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더 해 헌혈 정년 채우고 싶어요”

313회 헌혈한 30대 성북구 청사 지킴이 신성택 공공안전관

등록 : 2023-08-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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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공공안전관 신성택씨가 지난 10일 헌혈의집 돈암센터에서 헌혈을 마친 뒤 ‘헌혈은 사랑입니다’라며 손 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뒤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 받은 헌혈 유공자 훈장과 상패들이 있다.

고1 때부터 17년간 꾸준히 헌혈해

2월에는 헌혈 최고명예대장 받고

헌혈리더로 동료 등에게 권유활동

“헌혈하며 기쁨·감사·보람 느껴요”

신성택(33)씨는 고1 때부터 17년 동안 평균 20여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헌혈했다. 주위에서 ‘청년 헌혈왕’이라고도 불린다. 헌혈 횟수 300회를 맞은 지난 2월 대한적십자사에서 헌혈유공자 ‘최고명예대장’도 받았다. 앞서 적십자사가 헌혈 횟수에 따라 주는 은장(30회), 금장(50회), 명예장(100회), 명예대장(200회)도 차례로 받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부터는 헌혈의집 돈암센터의 헌혈리더로도 활동한다. 10일 돈암센터를 찾아 313번째 헌혈을 하려 헌혈대에 누운 그를 만났다.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신씨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신씨는 2021년부터 성북구 공공안전관(청원경찰)으로 일하고 있다. 청사 순찰과 방호, 민원실 민원 응대와 처리, 유관기관(경찰서, 소방서 등)과의 협력 등의 업무를 한다. 지난 4일 그는 성북구청 직원토론방에 ‘헌혈은 사랑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처음엔 헌신, 희생, 봉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건 기쁘고 감사하며,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성북구 직원들의 헌혈 참여를 부탁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 글은 직원 1천여 명이 읽었다. 실제 한 직원은 그의 글을 보고 돈암센터를 찾아 헌혈한 뒤 소감을 전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2006년 만 16살이 된 지 5일째 되던 날, 그는 첫 헌혈을 했다. 학교(서울사대부고)에서 수술을 앞둔 선생님을 돕는 헌혈 행사를 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내 피가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뿌듯했다”고 했다. 이후 생명을 나누는 가치 있는 습관이 되면서 헌혈은 그의 삶 일부가 됐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전북에서 2009년 부사관으로 임관해, 부산에서 2016년 중사로 전역했다. 전문 분야로 가기 위한 준비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등 여러 여건이 여의치 않아 차선으로 취직을 선택했다. 부산의 금융기관 청원경찰, 자치구 행정직으로 일하다 2년 전 성북구 공공안전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성택씨가 헌혈대에 누워 313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일터와 삶터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도 그가 헌혈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신앙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때 기독교 신앙을 가진 뒤 ‘수고하여 약한 자를 돕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성경 구절을 늘 마음속에 되새긴다. 헌혈을 삶의 일부로 습관화하면서 마음은 물론 몸도 건강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헌혈 전 혈압 체크 등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끝난 뒤엔 혈액검사 결과도 나오니 주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할 수 있다. 그는 “헌혈 전 기름진 음식, 과로, 과음도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관리가 이뤄진다”며 “이제는 헌혈하지 않으면 마음도 편하지 않고 몸도 오히려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신씨는 조혈모세포와 장기 기증 신청도 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백혈병이나 혈우병, 재생불량성빈혈 같은 병으로 골수 조혈모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는 환자에게 건강한 골수를 기증하는 것이다.

지난해 조혈모세포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며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고 기증 의사를 밝히고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피기증자의 건강 상태가 나빠져 실제 기증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2만분의 1 확률로 어렵게 유전자형이 일치한 그분에게 꼭 드리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웠다”며 “언제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생각이 비슷하거나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헌혈로 자신이 느끼는 보람의 경험을 나누려고 한다. 군인으로 있을 때 같은 부대원들에게, 지금은 구청 동료들에게 생명 나눔 가치를 퍼뜨리고 있다. 그가 속한 총무팀 팀원 8명의 헌혈 횟수를 합치면 500회에 이른다.

신씨는 헌혈에 대한 제도 개선 제안에도 적극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헌혈이라는 가치 있는 습관을 지니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직원토론방에 올린 글에 ‘헌혈하면 쓸 수 있는 반나절 공가(공무원이 공식적으로 얻는 휴가)를 하루로 늘리는 것을 관련 부서에서 검토해줬으면 한다’고 건의했더니 ‘공가가 늘어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것 같다’ 등 동의의 댓글도 달렸다. ‘생애 첫 헌혈자에게는 좀 더 특별한 혜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제안한다. “헌혈은 한번 해보는 게 중요하기에 경험할 수 있게 여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헌혈증 대부분을 언젠가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지금처럼 꾸준히 하면 헌혈 정년 70살까지 1200회 정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해봤다. 신씨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37년 더 해 헌혈 정년을 채우고 싶다”며 “인생동반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가 생기면 나누는 행복을 알려주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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