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일본판 최순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등록 : 2017-04-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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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정가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아내인 아키에 스캔들로 매우 시끄럽다. 아키에가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오사카 모리토모 학원 재단과 부정행위에 깊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모리토모 재단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유치원생들에게 군국주의 교육 이념을 외치게 하고, 학부형에게는 왜곡된 혐한·혐중 내용의 편지를 보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가 많은 곳. 또 아베 총리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를 건립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기부금을 모으는가 하면, 아키에에게 로비를 벌여 9억엔이 넘는 국유지를 1억3400만엔 정도의 헐값에 사들이는 등의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하고 있다.

그동안 아키에가 문제의 학교에 가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남편 이름으로 100만엔의 기부금을 내는 등 이런저런 크고 작은 민원을 해결해준 사실이 잇따라 언론에 폭로됐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이 아베 총리와 같다는 이유만으로 건립 예정인 초등학교 이름조차 ‘아베 신조 초등학교’로 붙였을 만큼 깊은 관계였음에도 이를 부인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사실관계를 따지자, 그런 일이 절대로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만약 그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당장 총리직을 그만두겠다는 배수진을 치며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렇지만 문제의 모리토모 학원재단 이사장은 국회 증언에서 아키에를 통해 아베 총리 이름으로 100만엔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아베 총리 쪽은 슬그머니 아키에의 비서가 단독으로 처리한 일이라고 그 책임을 비서에게 떠넘겼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의 56%는 아베 총리의 해명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납득한다는 대답은 고작 27%였다. 이 때문에 60%를 넘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작년 11월 이후 5개월 만에 50%대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의 일부 언론이 ‘일본의 최순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아키에가 처음부터 세속에 물든 정치권력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키에는 모리나가 제과 창업주의 장녀로 금수저 출신이다.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고 정치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자유분방한 부잣집 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현실 정치에 눈을 뜬 것은 2006년 남편이 제1기 총리직에 오른 뒤부터였다. 퍼스트레이디로서 각국의 정상 부부들과 회담을 하면서 해박한 지식과 확고한 정치이념에 강한 자극을 받은 것.


그래서 그녀는 2011년 릿쿄대학원에 진학해 개발도상국의 교육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정치인 ‘아베의 부인’이 아닌 한 인간 ‘아키에’로 홀로서기에 나섰고, 공개적으로 ‘가정 내 야당’을 자처하는 등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또 2012년 10월에는 중의원 신분이던 남편과 시어머니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선술집 ‘UZU’를 차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때 그녀가 내세운 논리는 평소 정치인 남편이 들을 수 없는 시민의 소리를 대신 들어 전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12년 12월 아베가 제2기 총리직에 취임했을 때 그녀는 전에 없던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 3월11일 동북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자 원자력발전 재가동 반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해 세간을 놀라게 했고, 이어 아베 총리의 정책과는 정반대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를 외쳐 아베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론은 아키에 편이었다. 아베 총리가 워낙 극우적인 성향이었던 탓에 국민적 거부감도 상당했다. 이를 조금이나마 희석해준 것이 바로 아키에였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달콤함에 젖어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백년대계라는 교육기관의 교명이 남편 이름으로 된다는 것에 과욕이 생긴 것일까?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김치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키에의 이번 정교 밀착은 그래서 더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글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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