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어머니 투병 병실, 인생의 5감과 싸우는 곳

다인실 병실 풍경

자식 앞에 강했던 어머니 날로 쇠약
반짝 좋아졌다 다시 어린애 모습
협소한 병실 안의 쾌활한 할머니
“꿈은 외로운 거야” 혼잣말 맴돌아

등록 : 2019-02-21 17:37 수정 : 2019-02-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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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이름의 작문시험에서 가장 쓰기 힘든 주제어는 무엇일까? 길? 사랑? 이별? 꿈? 성공? 사람마다 연상하는 단어는 제각각일 것이다. 만약 나에게 가장 어려운 단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머니’란 세 글자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이름이니까.

그 세대의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도 평생 가난과 싸워야 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를 겪으며 삶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처절히 경험했다. 게다가 자식 두 명이나 어릴 때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아픔도 있다. 그다음에 태어난 나도 성장할 때까지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에서 싸워야 했기에 어머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렇다 해도 자식들 앞에서는 강했던 어머니다. 그랬던 어머니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세월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응급실과 입원실, 중환자실 등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점점 파괴한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편치 않다.

가끔은 엉뚱한 오해로 가족 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날은 어린아이처럼 말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본래 어머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아마도 최근 들어 가장 상태가 좋았던 며칠 전, 어머니는 과거 우리가 살던 동네 사람들 이름을 하나둘 기억해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뛰어다녔지. 시골에서 올라와 가진 것도 없고, 오직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늘 허둥거리며 땅바닥에 발이 붙어 있을 틈이 없었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거든. 그러다 이렇게 휠체어 탄 신세가 되었구나. 세월이 참 무상하지. 너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면서 살아라!”

잠시 반짝하는가 싶더니 안타깝게도 며칠 뒤에 어머니는 다시 약한 어린아이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소설가가 이야기를 창조해내듯,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자식들 마음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것은 지금은 어머니의 모습이지만, 어쩌면 훗날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정말이지 인생은 하루 앞을 알 수 없다.

병원 생활은, 특히 다인실 병동은 5감과 싸우는 곳이다. 협소한 공간 안에 여러 명의 환자와 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간병인이 모여 있다 보니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인간극장 같다.


평소 만나기 힘든 소리와 광경, 냄새와 촉각 등 감각들이 저마다 곤두선다. 약품과 소독 냄새, 그리고 연로한 환자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냄새야 참을 수 있지만, 의식 불명인 환자를 앞에 두고 자식들끼리 다투는 모습이나 큰 소리로 오랫동안 통화하는 소음은 정말 견디기 쉽지 않다.

가장 힘든 사람은 물론 투병하는 환자이지만,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의 체력과 정신력도 한계에 다다른다. 그럴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1년 전쯤 입원실 어머니 옆자리 병상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떠오른다. 소화기, 호흡기, 정형외과 등 다양한 질병과 싸워왔기에 저명한 의사들 이름과 전문성을 줄줄이 꿰고 계시던 분이었다.

“여보, 이를 악물고 걷는 연습 해야 해요. 여기서는 걸으면 살아 나가고, 누워 있으면 죽어요. 그러니 나 따라서 매일 걷는 연습 합시다.”

마침 어머니와 동갑이셔서 잠시나마 육체적 고통이 잦아들 때면 어머니를 챙기던 분이다. 힘든 투병에도 목소리는 늘 쩌렁쩌렁 울렸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도 밝았다. 요즘 유행어까지 잘 아시는 분이었다.

“어느 집은 딸들 모두 ‘비행소녀’라고 하더군요. ‘비혼이 행복한 소녀’라던가? 결혼하지 않은 게 무슨 자랑처럼 얘기들 하던데, 나는 이해하기 힘들어. 그래도 내 딸 세 명 모두 결혼해서 자식들 낳아서 잘 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이에요.”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비슷한 처지에 나이도 같으니 속마음을 좀더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 자기는 재력이 있어서 딸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간병인을 고용했을 뿐 아니라 직접 택시를 불러 병원까지 타고 왔다고 했다.

“어휴, 댁내는 아들이 있어서 좋겠수! 나는 일찍 영감이 돌아가시고 딸 셋을 키웠는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사위 보기에도 부담스럽고.”

보통은 키워놓고 나면 아들은 소용없고 나긋나긋한 딸들이 최고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할머니는 정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생 아들이 없다는 아쉬움을 갖고 살아온 구세대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자존심도 매우 강한 분이어서 세상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딸과 사위들에게도 들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가 먼저 퇴원하게 되었다.

“어휴, 우리 오래오래 잘 삽시다. 소식도 주고받고…. 돌아가신 영감이 그리워지네요. 옛날에 바람을 피워서 정말 미웠는데, 그 영감탱이!”

옆에 있던 동갑내기 말벗 친구가 퇴원하게 되자 마음이 좋지 않아진 것 같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던 그 할머니는 혼자 독백하듯 이렇게 말했다.

“꿈은 외로운 거야….”

퇴원 수속을 밟느라 그 할머니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 뜻도 알 길은 없다. 오랜만에 소식이 궁금해서 그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낯선 목소리의 여성이 받는다.

“어머니가 두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 할머니가 생전에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분의 말씀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꿈은 외로운 거야!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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