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작은 장례식에 따뜻한 작별의 큰마음을 담다

등록 : 2019-07-11 15:09

크게 작게

30대 부부 유종희·오지민 공동대표가 만든 장례문화 스타트업 ‘꽃잠’

초고령사회·1인 가구 확산 따라 ‘무빈소 장례’ 등 장례문화 변화 시도

장례문화 스타트업 ‘꽃잠’의 오지민(왼쪽)·유종희(가운데) 공동대표가 4일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인 권현지씨와 함께 작은 장례의 추모식 제단을 정성스레 차리고 있다. 꽃잠은 장례식이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예식이 되도록 서비스하려 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송파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50대 김태정(가명)씨는 지난달 혼자 살던 누나의 장례식을 치렀다. 일찍 혼자가 된 누이는 꽤 긴 기간 병마와 싸우다 생을 마쳤다. 부고로 알려야 할 친인척도 거의 없고 문상객도 없을 터라 빈소를 차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작은 장례식을 알게 됐다. 작은 장례식 전문업체 ‘꽃잠’의 무빈소 화장식 서비스였다. “간소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누나를 외롭지 않게 보내줄 수 있었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는 가운데 장례는 ‘관혼상제’ 가족 의례 가운데 가장 변화가 더뎠지만, 최근 들어 지나친 형식과 과한 비용을 줄이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가족 구성원 수가 줄고, 빠른 퇴직과 은퇴로 사회관계망이 줄어드는 사회적 변화 탓도 있다. 작은 결혼식에 이어 작은 장례식도 생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 30대 부부 창업가가 기존 장례서비스업체들의 저비용 작은 장례식과 다른 방식을 내걸고 나섰다. 유종희(35)·오지민(32) 공동대표는 2017년 장례문화 스타트업 ‘꽃잠’을 창업해, 올해 1월 수도권 지역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은 2015년 대학원 연합 프로젝트에서 만나 문화예술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로 가까워졌다. 둘은 문화예술협동조합에 참여해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죽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장례에 관심을 쏟으면서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함께 땄다.

오 대표는 “현재의 장례가 고인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며 유족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져주지 못해 장례의 본질을 살리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한다. 유 대표가 “기존의 획일적인 장례식 관행을 억지로 따르기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엔딩 스타일을 제시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회사 이름은 장례에 작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소풍’(小風)으로, 서비스 이름은 깊은 잠의 순우리말 ‘꽃잠’으로 정했다. 죽음과 삶 모두 생명의 세계 일부라는 뜻에서다. 법인등록을 하면서 꽃잠을 회사명으로 삼았다.

이들은 2017년 고용부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참여해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쳤다. 초기엔 예술적인 장례식을 시도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수의, 습신(염습할 때 주검에 신기는 종이 신) 등 장례용품의 소재와 색깔, 디자인을 바꾸고, 집 장례를 치러보려 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소비자만 관심을 보였다. 지난 한 해는 초심으로 돌아가 작은 장례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 상품 만들기에 집중했다. 일본의 작은 장례식 선두업체인 유니퀘스트 사업 모델도 참고했다.


넉 달 넘게 고심한 끝에 서비스 상품 3가지를 내놓았다. 무빈소 화장식, 하루장, 가족장이다. 무빈소 화장식은 빈소를 차리지 않고 입관식만 하는 장례식이다. 고인을 장례식장의 안치실에 모시고, 가족은 집에 머물다 입관식 때 모여 고인을 추모한다. 비용은 200만원 정도다. 하루장은 빈소를 하루만 쓴다. 문상객이 40여 명으로 빈소, 입관식을 포함한 장례 비용은 300만원대다. 가족장은 일반적인 3일장으로, 빈소를 이틀 동안 연다. 100여 명의 문상객을 예상하면 비용은 400만원대다. 오 대표는 “대부분 화장장이기에 수의나 관 등의 장례용품은 품위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적정하게 골라 사용한다”고 한다.

“획일적 기존 장례식 넘어 새로운 엔딩 스타일 제시 필요”

무빈소·하루장·가족장 3가지 선봬

작지만 품위는 지키는 장례 추구

“자기 장례 직접 준비하는 사람 늘 것”

차가운 공간·이용 시간 제한은 한계

꽃잠의 유종희(왼쪽) 대표와 직원 권현지씨가 입관식에 앞서 관에 꽃장식을 하고 있다.

안심 정액서비스도 만들었다. 장례식 전에 비용을 확정해 알려주고 견적서를 내준다. 일반적으로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에야 얼마를 썼는지 알게 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유대표는 “현재는 제단 음식, 화장장 사용료, 문상객 접대비 등은 이용자 여건에 따라 달라 정액을 제시할 수 없어 빠지는 데, 앞으로 포함하는 부분을 늘려가려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꽃잠의 작은 장례식은 입관식에 비중을 많이 둔다. 오 대표는 “예를 갖춰 고인을 추모하며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이 될 수 있게 장례지도사가 따뜻한 말과 손길로 고인과 가족을 잘 이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말한다. 고인이 좋아하는 꽃이나 작별식에 어울리는 꽃들을 쓴다. 입관식을 진행하는 장례지도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직원들이 함께 고민해 준비한다.

일반 장례식장은 문상객을 위한 빈소 중심의 시설로, 안치실과 입관실은 주검을 보관하고 처리하는 기능에만 맞춰져 있다. “수술실처럼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강해 이런 공간에서 따뜻한 분위기의 예식을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오 대표가 말한다. 또 1시간 안에 입관실에서 염습과 작별식도 다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꽃잠의 작은 장례 서비스는 현재까지 10여 건 이뤄졌다. 70%가량이 무빈소 화장식이다. 오랜 투병생활 뒤 임종한 미혼의 누이나 동생의 장례, 고인의 자녀가 어려 형제가 대신 치르는 장례, 오랜 요양 생활로 초대할 문상객이 없는 고령의 부모님 장례 등 사정은 제각각이나 ‘조촐하지만 초라하지 않게’고인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비슷했다. 무빈소 장례에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떠나간 사람의 사진, 영상, 아끼던 물품 등을 보며 추모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의 삶을 다룬 영화 <생일> 마지막 장면인 수호의 생일 모임처럼 말이다.

무빈소 화장식 뒤 유족이 고인을 위한 추모식을 열고 있다. 꽃잠 제공

최근 상담 문의 가운데 “최소한의 비용으로 비참하지 않게 하려면 어느 정도 드냐”고 묻는 중장년이 꽤 있단다. 고독사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연락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1인 가구의 증가로 자신의 장례를 직접 준비하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꽃잠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고민하고 준비를 시작해볼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죽음을 주제로 참여형 프로그램, 워크숍, 예술 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장을 운영한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죽음을 이야기하며, 아픔을 꺼내놓고 서로의 슬픔을 보듬는 자조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작은 장례식에 우려와 씁쓸함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죽음에 대한 예식마저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 “자식 된 도리가 아니지 않냐” 등 걱정의 목소리이다. 유 대표는 “초고령 사회, 핵가족 사회로 장례의 규모는 작아지고 형식도 간소화될 수밖에 없다”며 “작은 장례식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 대표는 “작은 장례식이 남은 이들이 충분히 애도하고, 슬픔을 치유하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돕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