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건강한 공동체 꿈꾸는 ‘마을 주치의’

서울의 7번째 의료사협이 만든 관악구 ‘정다운우리의원’ 조계성 원장

등록 : 2021-03-18 16:12

크게 작게

조합원 640명 뜻 모은 ‘문턱 낮은 병원’

약보다 식사·운동 등 건강생활 처방

방문 진료로 건강 취약계층도 돌봐

“의사-환자 관계 넘어 평생 친구 될 것”

지난 10일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관악 정다운우리의원에서 조계성 원장이 의료사협 병원을 만든 과정과 운영 방향, 그리고 지역 건강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가려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정다운우리의원은 2019년 설립된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이 운영하는 병원이다. 조합원 640여 명 가운데 230여 명이 개원 자금을 마련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의료사협 병원으로는 서울에서 7번째다. 의료사협은 주민들이 출자(5만원 이상)해 만든 1차 의료기관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조합원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며, 지역에서 건강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을 지향한다.

지난 10일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관악 정다운우리의원에서 조계성(56) 원장을 만났다. 조 원장은 연세대 의대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1990년대 중반부터 인천의 한 의료사협 병원에서 8년간 일했다. 이어 2000년대 초반에는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에 관악구로 옮겨 개인병원을 열었는데, 개원 2년 뒤 갑작스레 암을 진단받았다.

수술 뒤 항암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고 병원 운영을 계속했지만, 큰 병을 앓고서는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눈길이 갔다. 돌아보니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절로 마을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대학 때부터 함께해온 기독청년의료인회(기청의)를 통해서도 공동체가 주는 긍정적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공동체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2015년 지역 활동가들이 의료사협을 만드는 데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망설임은 있었지만 이내 받아들였던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그가 지난해까지 개원의로 18년 동안 운영해오던 병원을 의료사협이 인수했고, 조 원장은 이제 봉직의로 일한다.


아담한 2층 건물에 자리잡은 병원의 입구는 소박했다. 여느 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띈다. 의료사협 병원을 소개하는 입간판과 한쪽엔 개원 모금 참여자와 창립 조합원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목판이 걸려 있다. 20여 평의 실내엔 4개의 방이 있다. 각 방엔 치유하는 진료실, 서로 배우는 건강실, 찾아내는 검사실, 회복하는 수액실 등의 명패가 붙었다. ‘모두가 환대받는 문턱 낮은 병원’이란 운영 철학을 알리면서 이용자들이 ‘정다운’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지은 이름이란다.

대개 의료사협 병원은 조합원이 1천 명을 넘을 때 만들어진다. 하지만 정다운 의료사협 조합원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지역 건강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뜻을 모아 개원에 나섰다. ‘빚 없이, 조합원 모두가, 협동의 힘으로’라는 의지로 추진했다. 의료기관 개설 추진팀, 이용자 서비스 디자인팀, 개원전략 티에프팀 등이 차례로 가동됐다. 개원 자금 모금을 위한 개원 히어로 10여 명이 독려 활동에 나섰다. 70대 한 조합원은 페인트칠을 직접 하고 새 소파를 기증했다. 조 원장은 “개원은 조합원들의 생각과 노동, 자본의 협동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병원은 개원 100일을 앞두고 있다. 의료사협 병원의 장점으로 조 원장은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하고 책임을 나누는 것을 꼽았다. 대신 기준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하다 보니 의사 결정과 실행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변화로 그는 “책임감이 훨씬 커지고, 마음가짐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의료사협의 봉직의가 된 후 가장 큰 변화는 ‘개인 활동을 줄인 것’이다. 개원의였을 땐 저녁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는데 진료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변화다. 조합원들의 주치의로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 건강의 주인이 되도록 안내해주는 평생 친구 역할을 하려 한다. 그는 “약보다는 식습관, 운동, 관계, 성찰 등 건강생활습관 처방을 하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했다.

정다운 의료사협엔 지역의 건강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돌보는 비전이 있다. 조 원장은 마을의사가 찾아가는 건강돌봄 서비스를 관악구보건소와 2018년부터 하며 방문진료를 다녔다. 방문진료를 하면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많이 만났다. 장애인, 홀몸노인 등이 옥탑방, 지하방에 살며 사회와 고립되어 지내고 있었다. 오랜 고립으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자꾸 찾아가 만나다 보면 비언어적인 방식으로도 소통이 이뤄지는 걸 경험했다”고 했다. 조 원장은 “환자의 삶 전체에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방문진료 때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조합원이 함께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사협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조합원의 병원 이용률이 50%를 넘어서야 한다. 조합원을 늘리고, 병원 이용률을 높이는 게 그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가 조합 가입을 권유할 때면 조합원 혜택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의료기관과 내 건강의 주인이 될 수 있어서, 건강을 배당으로 받는다”고 대답한다. 조합원들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건강 자치력을 높일 수 있고, 관계를 통해 건강하게 사는 걸 배운다는 것이다.

“의료사협 병원이 자치구마다 있어야 한다”고 조 원장은 힘줘 말했다. 처음 의료사협이 생길 때 대부분 의사가 작은 흐름 정도로 평가했다. 이제는 의료사협이 대안 의료체계 모델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 원장은 “감염병 확산으로 돌봄 공백이 생겨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데 시골에 홀로 계신 친정엄마가 이웃의 돌봄으로 건강하게 지내듯, 이웃의 돌봄이 있는 경우엔 그나마 타격이 덜했다”며 “의료사협 병원이 많아지면 약자부터 챙기는 건강한 공동체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