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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와 동국대가 만나 ‘젊은 인쇄인’ 꿈을 키운다

등록 : 2021-04-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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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시대 을지로 인쇄산업 거점 공간’ 을지유니크팩토리

동국대 GCS 전공 실습 현장으로 활용해 젊은 인쇄인 양성

동국대생 이보현(왼쪽부터), 변지원, 이준호씨는 지난해 2학기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GCS) 연계전공을 선택해 수업을 들었다. 이들은 을지로4가 을지트윈타워 지하 2층 을지유니크팩토리에서 전공 관련 실습을 진행하며 인쇄산업의 미래를 경험했다. 세 학생이 2일 을지유니크팩토리 인쇄산업 전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참여 학생 “소규모 디자인 수요자-인쇄업체 연결” 부푼 꿈

총 12개 공간에 47종의 장비 갖춰

스타트업도 시제품 생산 등에 활용

“인쇄업계와 상생, 지역 발전 이룰 것

“트렌드에 따라 변화하는 소비자 욕구와 수십 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인쇄 소공인을 연결하는 ‘인쇄 커넥팅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지난 2일 지하철 을지로4가역 을지트윈타워 지하 2층 을지유니크팩토리에서 만난 변지원(22·동국대 경영학과 3학년)씨는 “아이돌 ‘굿즈’ 등을 위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지금은 맞춤 상품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시대”라고 했다. 변씨는 “하지만 이런 추세와는 달리 소량 생산과 판매로 이어지는 소비와 공급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앞으로 소규모 디자인 제작을 원하는 사람과 인쇄업체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변씨가 이용하는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중구 창업혁신공간에 있다. 을지로 일대에 모여 있는 도심 제조업과 제작자(크리에이터)들의 역량을 결합해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창업 생태계 저변을 확대하고 도심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중구가 만들고 동국대 창업원이 운영을 맡은 이곳은 이제 막 개원 6개월째를 맞았다.

변씨는 지난해 2학기부터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GCS) 연계전공(복수전공) 과정을 이수하면서 을지유니크팩토리와 관계를 맺었다.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 연계전공은 2020년 2학기부터 생겼는데, 동국대가 인쇄특별산업지구가 있는 중구에 위치한 게 인연이 됐다. 프린팅·패키징 산업은 전세계적으로 매출 규모 4~5위를 다투는 거대 산업군이다. 동국대는 인쇄업체가 밀집한 중구 지역 사회의 요구에 따라 프린팅·패키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연계전공을 신설했다.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는 예술(디자인)과 경영(광고·홍보·브랜드 매니지먼트), 그리고 공학(프린팅·패키징) 등 다양한 분야가 연계된 학제간 전공이다. 그래픽과 프린팅 관련한 디자인 능력, 프린팅·패키징 상품과 서비스를 사업화하는 능력, 프린팅·패키징 관련 기계·화학·식품공학과 관련한 지식과 기술 능력을 배운다.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 연계전공 학생 13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 팀으로 나눠 을지유니크팩토리에서 첫 실습을 했다. 이들은 실습 기간에 인쇄 상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총 4개 팀으로 나눠 팀별로 아이디어를 모아 포스터와 배너, 웰컴 키트, 달력, 스티커 등을 제작했다.

“대학교 2학년쯤 되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우선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또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변씨는 “중·고등학교 때 아이돌을 좋아하면 아이돌 굿즈를 많이 접하게 된다”며 “아이돌 굿즈를 만드는 게 모두 디자인이고 프린팅인데,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연계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관련이 있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품 기획이나 디자인 작업 등 인쇄 전 단계 작업이 적성에 맞고 괜찮은 것 같아요.”(이준호, 경영학과 4학년)

“전국 최초로 생겨 희소성이 있고, 젊은 사람들이 안 하다보니 경쟁이 덜 치열할 것 같고, 취업할 때도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죠.”(이보현, 국제통상학과 3학년)

이준호(24)씨와 이보현(22)씨도 변씨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2학기부터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 연계전공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같은 팀이었던 이준호씨와 변지원씨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코로나19로 캠퍼스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신입생을 위한 ‘웰컴 키트’(인쇄 상품)를 제작해 실제 판매까지 했다. 웰컴 키트는 학교생활에 유용한 팁을 담은 팸플릿, 기념엽서, 노트 등으로 이뤄졌다. 또한 대학 생활 내용을 담은 만화책 <플랫다이어리> 작가의 허락을 받아 신입생을 위한 글귀가 새겨진 책 띠지도 제작했다.

다른 팀이었던 이보현씨는 책상 위에 세워 둘 수 있는 작은 배너와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보현씨는 “아이디어부터 디자인, 제작 과정을 모두 팀 내부에서 해결했다”며 “신입생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품목을 정하는 것부터 무척 어려웠는데, 직접 이곳에서 회의하며 하나하나 구체화시켜나간 게 좋은 경험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프로젝트 형태로 모든 학생이 실습에 참여했지만, 올해는 새로 개설된 캡스톤 디자인 수업을 듣는 학생 4명만 이곳에서 실습한다. 캡스톤 디자인 수업은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팀을 이뤄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이준호씨와 변지원씨는 올해 1학기에 캡스톤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다.

김유신(왼쪽부터) 을지유니크팩토리 매니저와 동국대생 이보현, 변지원, 이준호씨가 지난 2일 실습 프로젝트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관심이 많은 패키징 분야 쪽으로 진로를 정한 이준호씨는 “올해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인쇄물을 만들어보겠다”며 “먼저 퍼즐을 만들어 직접 판매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이들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 연계전공 학생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대학 스타트업 중에서도 이 팩토리 덕을 보는 곳이 적지 않다.

“저희 같은 스타트업이 구비하지 못한 고가의 장비를 을지유니크팩토리는 갖추고 있어 시제품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회의 장소와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동국대 스타트업 ‘현제작소’는 살아가면서 분명 무언가 ‘필요’하지만, 딱 맞는 제품이 없어서 불편함을 참고 생활하는 사람을 위해 사소하지만 ‘필요’한 제품을 개발해 사람들 생활이 더 편리하도록 돕는 회사다. 현제작소는 컴퓨터 키보드 살균 기능이 있는 모니터 받침대를 개발해 지난 1월 펀딩을 받았다. 이런 현제작소의 제품을 눈여겨봐온 일본 유통업체와 일본 지역 판권 계약도 앞두고 있다. 대표를 맡은 김현수(27·경영학과)씨는 “을지유니크팩토리에서 모니터 받침대에 들어가는 전자회로를 제작했고, 올해 특허개발한, 수저를 식당에서 배분할 수 있는 제품을 시제품으로 제작하는 데도 을지유니크팩토리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지난해 10월 창립 이후 올해 2월까지 총 169회의 교육 강좌를 진행했고, 1641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이용자가 이 정도에 이른 것은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김유신 을지유니크팩토리 매니저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방역을 철저하게 하고 있고, 좋은 장비를 많이 갖추고 있는데다 교통편도 좋아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을지로4가역 을지트윈타워 지하 2층에 644㎡(195평) 규모로 만들어졌다. 창업 인큐베이터 겸 메이커 스페이스(열린 공간)로 제작자들이 아이디어나 설계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갖춘 공동 작업공간을 갖추었다.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제작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 구실도 한다.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시제품 제작실을 비롯해 총 12개 공간과 47종의 장비를 갖췄다. 삼차원(3D)프린팅, 시각적 특수효과(VFX), 사물인터넷(IoT), 레이저커팅, 디지털 평판프린팅(DTP)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6개의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여기에 더해 국제우주정거장 가상체험(VR) 콘텐츠와 같은 실감 기술을 활용한 실감(XR)랩, 홍보전시실, 교육공간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인쇄·영상 인력 양성, 사회적 벤처기업 육성, 넥스트 메이커스 사업 등을 진행한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래픽 또는 시각디자이너와 인쇄인을 대상으로 컬러와 매니지먼트 교육을 하고 있다. 또한 인쇄에 관심있는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인쇄 공정과 애플리케이션 과정을 만들어 교육한다. 지난해 9월부터는 독립출판 작가를 위한 인쇄 실무와 독립출판물 제작 교육도 병행한다.

이 밖에 사회적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및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도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예비창업자 영상 제작 교육도 한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을 대상으로 지역 문제에 기반한 창업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개발하고, 이를 광고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창업·영상 융합교육 프로그램이다.

중구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지역 인쇄인, 유관 기관, 연구기관, 분야별 전문가 자문단 등 인쇄인 50인으로 구성된 거버넌스를 구축해 운영할 계획이다.

김유신 매니저는 “많은 것이 변화하는 4차 산업시대에 을지유니크팩토리는 청년·시니어 창업을 비롯해 지역 인쇄업계와의 상생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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