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대, 2023년 계묘년 ‘행운의 문’을 활짝 열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㉔ 종로구 이화동 쇳대박물관

등록 : 2023-01-12 16:20 수정 : 2023-01-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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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대박물관. 쇳대와 자물쇠, 빗장과 빗장걸이, 열쇠패가 전시된 공간. 사진 왼쪽 위에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쇳대’라는 글씨가 보인다.

‘최가철물점’으로 시작한 최홍규 관장

1980년대 소량 생산 손잡이 인기몰이

쇳대·자물쇠도 관심 가지고 40년 수집

박물관 개관…낡은 쇳대가 보물 변신


조선시대 시집가는 딸에 줬던 열쇠패와

고려시대와 유럽의 쇳대가 한자리에


자물쇠에는 ‘복 기원 문양’이 새겨지고

빗장걸이엔 ‘장수 상징 의미’ 거북 문양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서울의 작은 박물관’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2년 전 스물세 번째 서울의 작은 박물관에 이어 소개하는 스물네 번째 서울의 작은 박물관은 ‘쇳대박물관’이다. 쇳대란 열쇠의 방언이다. 쇳대와 짝을 이루는 자물쇠, 쇳대박물관에 전시된 우리나라와 서양의 옛 쇳대와 자물쇠를 보며 닫힌 것을 열고 소통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랐다. 빗장을 풀고 대문을 활짝 열어 새해의 만복이 세상 모든 사람의 집안에 깃들기를 기원했다. 사람들 모두 막히는 것 없이 다 만사형통하면 좋겠다.


쇳대박물관에 전시된 열쇠패.

철물점에서 쇳대박물관까지

쇠가 좋았다. 쇠로 만든 생활도구부터 예술작품까지 쇠를 보면 그냥 좋았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서 철물점을 시작했다. 상호는 자신의 성을 딴 최가철물점이었다. 쇳대박물관 관장 최홍규씨 얘기다.

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업으로 시작한 철물점이었다. 매일 보고 만지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의 천편일률적인 모양이 아쉬웠다. 그중 여닫고 잡는 손잡이에 마음이 쓰였다. 직접 손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품종소량제작 손잡이’ 전략이 소비자 마음에 들어맞았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연이어 지날 때였다.

철물점과 함께 최씨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게 옛날 쇳대와 자물쇠였고 그것을 모으고 있었다. 철물점이 생활을 풀어가는 열쇠라면 쇳대와 자물쇠는 삶을 풀어가는 열쇠였다.

진짜 가짜가 중요치 않았다. 마음이 움직여 스스로 좋아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됐다. 고미술품에서 생활도구까지, 그에게 쇠는 부드럽고 따듯했다.

옛날 쇳대와 자물쇠를 모은다는 소문이 그 바닥에 자자해졌다. 수집품이 늘어갈수록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고물이었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이었다. 고물값이 보물값이 되는 사정에 변장하고 수집하러 다닌 적도 있었다. 최씨를 만난 쇳대와 자물쇠는 고물에서 보물이 되니 말이다. 쇳대박물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로에 쇳대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 건물을 지을 때였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으로 스님이 불일암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스님이 어느 집안에서 쓰던 쇳대와 자물쇠라며 그에게 내놓으셨다. 법정 스님에게 받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붓에 먹을 묻혀 친히 쓴 ‘쇳대’라는 글자는 쇳대박물관 안팎의 간판과 여러 곳에 쓰이고 있다.


쇳대박물관에 전시된 거북이 모양 빗장걸이.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한다.

빗장을 풀고 문을 활짝 열어 만복을 맞이하기를

조선시대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가는 낙산 이화동으로 쇳대박물관을 옮긴 이유는 소통이다. 600여 년 전 세운 한양도성 성곽과 현재가 소통하며 공존한다. 옛 성곽을 따라 난 길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든다. 옛 성곽과 말없이 교감하는 것이다. 쇳대박물관 앞으로 시야가 훤하게 트인다. 눈길을 주는 풍경이 마음으로 들어와 남는다. 그렇게 풍경과도 주고받고 나눈다. 그곳에서 쇳대박물관은 여러 주제의 전시관을 운영한다. 몸은 박물관에 머물고 마음은 동서고금 세상 속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거다.

처음 들른 전시관은 쇳대와 자물쇠, 빗장, 열쇠패 등을 모아놓은 곳이다. 조선시대에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만복이 깃들고 즐겁게 살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주었던 게 열쇠패였다. 엽전, 좋은 운수를 상징하는 노리개, 예쁘게 꾸민 천과 매듭 등으로 만든 열쇠패는 금속공예, 자수공예, 매듭공예, 천연염색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품이었다. 가정 형편상 여력이 부족했던 집에서는 천에 물들이거나 밀짚에 물들여 만든 열쇠패를 시집가는 딸에게 주기도 했다. 잘사나 못사나 어머니 마음은 다 같았다.

열쇠패에 머물렀던 눈길이 닿은 곳은 동서양의 오래된 쇳대와 자물쇠였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100여 년 전 유럽에서 썼던 쇳대와 자물쇠까지, 동서고금의 쇳대와 자물쇠 하나하나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고려시대에 썼던 금동 용두형 자물쇠의 용머리 장식이 눈에 띈다. 자물통에 새겨진 당초문은 자세히 봐야 아름답다. 같은 시기에 쓰던 금동 연화형 자물쇠에는 꽃잎을 닫은 연꽃 봉오리가 자물쇠 양쪽 끝에 있다. 자물통에는 당초무늬, 구름무늬, 천둥·번개를 상징하는 무늬가 새겨졌다. 자물통에서 꽃도 핀다. 여러 꽃무늬를 새긴 것이다. 북을 닮은 북통형자물쇠, 거북이 모양 자물쇠, 함지박을 닮은 함박형자물쇠, 활 모양의 활형자물쇠 등 자물쇠의 모양이나 새긴 무늬도 여러 가지다. 가구용으로 만든 작은 자물쇠는 물고기 모양이다. 다산과 재물, 복을 상징하는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에서 해학을 보았다. 해학은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작용하는 정신의 숨결이다.

쇠로 만든 쇳대와 자물쇠 사이 한쪽 벽면에 나무로 만든 빗장과 빗장걸이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여닫이 대문을 잠그고 여는 장치가 빗장과 빗장걸이다. 빗장은 대문 안쪽을 가로질러 문을 잠그던 목재 막대이고 빗장걸이는 빗장을 질러 넣을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장치였다. 거북이와 물고기 모양이거나 거북이와 물고기 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 많았다. 거북이는 무병장수를 상징하고 물고기는 재물과 다산과 복을 상징한다.


쇳대박물관에 전시된 와인오프너.

쇠는 따듯하다

쇳대와 자물쇠, 빗장과 빗장걸이, 열쇠패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세 개의 전시품이 있었다. 와인오프너였다. 100~200년 전 유럽에서 쓰던 것이라고 한다. 그 모양이 실용성을 강조한 현대의 것과 다르게 아름답다.

40여 년 전부터 옛 쇳대와 자물쇠를 모아오던 최 관장은 전시 주제를 넓히고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유럽의 오래된 와인오프너와 우리나라의 오래된 석쇠 등을 모았다. 근현대에 사용하던 와인오프너도 있지만, 와인오프너와 석쇠 등 전시품은 100년 정도 됐으며 모두 실제로 누군가 사용하던 것이다.

와인오프너를 전시한 공간을 둘러보고 동서양의 옛 부엌살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1층 유리창과 벽면에 있는 옛 동서양의 부엌살림 가운데 녹슬고 구멍 난 작은 철망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전남 순천 어느 오래된 기와집 수챗구멍 위에 놓여 이물질을 거르던 철망이었다. 당시에 그 용도로 만든 것인지 석쇠로 쓰던 것을 수챗구멍 위에 덮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뜻 보기에 석쇠로 썼던 물건 같았다. 그 오래된 작은 철망 위에 양철로 만든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석쇠 위에 얹힌 생선 같다. 부뚜막에서 저녁밥상에 올릴 생선을 굽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런 석쇠의 공간은 2층에 마련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 쪽에 놓인, 오래전 부엌에서 쓰던 청화백자 양념통이 석쇠의 공간으로 발길을 안내한다.

햇볕 가득한 공간 벽에 걸린 액자 속에 석쇠가 있다. 어느 지방 어느 집에서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모든 석쇠는 오래전 누군가의 어머니 손에 길이 든 것일 테다. 100년 정도 된 석쇠라고 한다. 모양이 다 다르다. 손잡이 끝부분부터 철망 매듭까지 허투루 만든 곳이 하나 없다. 막 만들어내는 지금의 석쇠가 아니다.

녹슬고 그을리고 삐뚤빼뚤하지만 오히려 그 세월의 느낌이 좋다. 오래전 어느 집 부엌 부뚜막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저녁밥상에 올릴 고등어를 굽던 어머니의 손길에 쇠가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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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관람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10시. 금·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1시. 겨울에는 유동적.

휴관일: 휴관일 없음

음료교환권: 7천원. 음료교환권 구입 뒤 입장. 해당 음료도 마시고 전시관 전시품도 관람할수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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