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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언급된 우물에서 영감을 얻은 ‘열린 우물’. 가압장의 윗부분을 헐어 하늘을 받아들인 공간은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일본 후쿠오카형무소를 연상하게 한다.
참 맑은 사람, 맑아서 순수한 사람, 순수해서 강한 사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서시’ 중) 기도하며 자기에게 스스로 겨누었던 각성의 칼끝에서 자라난 시들….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서시’ 6행)하고자 했던 마음을 배운다.
22살 청년 윤동주 앞에 열린 ‘새로운 길’
1938년 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학교 기숙사(핀슨홀. 1922년 완공. 기숙사로 사용했다. 지금은 법인사무처로 사용한다. 건물 2층에 윤동주기념관이 있다)에서 생활했다. 윤동주의 방은 3층 다락방이었다.
그가 생활했던 3층 다락방은 볼 수 없지만 기숙사 책상을 재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연희전문학교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책상과 물품 등을 재현한 것이다.
윤동주기념관은 그의 생애와 작품, 작품에 얽힌 이야기, 문우와 지인 등이 증언하는 윤동주에 대한 기록과 사진 등을 전시한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학적부와 성적표, 윤동주가 태어난 집의 기와도 볼 수 있다. 윤동주기념관 앞 솔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
10대부터 문학의 꿈을 키우고 동시와 시를 써오던 윤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관문이었다. 그에게 새로운 길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1938년 5월10일 쓴 시 ‘새로운 길’ 2연 1행) 길이었다. 연희전문학교 입학 1년 뒤인 1939년에 윤동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시 ‘자화상’을 쓴다. 시에 나오는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을 담고 있던 그 우물의 흔적은 지금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서 볼 수 있다.
10대부터 문학의 꿈을 키우고 동시와 시를 써오던 윤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관문이었다. 그에게 새로운 길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1938년 5월10일 쓴 시 ‘새로운 길’ 2연 1행) 길이었다. 연희전문학교 입학 1년 뒤인 1939년에 윤동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시 ‘자화상’을 쓴다. 시에 나오는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을 담고 있던 그 우물의 흔적은 지금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서 볼 수 있다.
‘서시’와 ‘별 헤는 밤’
1941년 봄 윤동주는 기숙사에서 나와 소설가 김송의 집(지금의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우리은행 골목으로 접어든다. 대오서점과 50년 역사의 중국음식점인 영화루를 지나면 길 가운데 정자가 하나 보인다. 정자 옆 이정표 중에서 수성동계곡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수성동계곡으로 가는 길에 윤동주가 살았던 하숙집 터가 있다. 집과 주변 풍경이 다 바뀌었지만 그가 살았던 집을 알리는 안내판이 벽 한쪽에 붙어 있다.
윤동주 하숙집 터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수성동계곡이 나온다. 수성동계곡은 조선시대 안평대군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며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배경무대이기도 하다.
커다란 바위가 계곡을 이루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른다. 윤동주도 아마 이 계곡을 거닐며 사색하고 시를 구상했을 것이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마지막 1년이기도 했던 그때 ‘십자가’ ‘또 다른 고향’ ‘서시’ ‘별 헤는 밤’ 등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를 썼다.
일제강점기 말기 우리의 말과 글, 정신까지 빼앗으려는 일제의 광폭한 식민지 정책 앞에서 개인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의 고뇌와 다짐이 고스란히 시에 드러난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1941년 5월31일에 쓴 시 ‘십자가’ 중)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1941년 11월5일 쓴 시 ‘별 헤는 밤’ 마지막 연)
언덕에 내려앉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수성동계곡 위로 올라가면 차들이 오가는 도로(인왕산로)를 만난다.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해서 걷는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을 지나 윤동주문학관 방향으로 간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오른다.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를 바위에 새겼다. 시가 적힌 목책을 따라 걷는다. 매화와 산수유꽃이 피어난 길 앞에 한양도성 성곽이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시처럼 서 있다.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간다. 윤동주문학관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2012년에 만들었다.
제1전시실은 시인의 생활이 담긴 사진과 친필원고 영인본을 전시했다. 특히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수리할 때 나온 목재 널판을 볼 수 있다.
제2전시실은 청운수도가압장의 물탱크였는데 하늘을 가리고 있던 윗부분을 없앴다.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고일 것 같은 그 마당은 윤동주가 태어난 고향집 마당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제3전시실은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남겨둔 곳이다. 빛 들어오는 작은 구멍을 천장에 뚫어놓았다. 시인이 죽음을 맞이한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의 그 감옥이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은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됐고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윤동주문학관을 나와 다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오른다. 해 지는 하늘에는 노을이 피어나고 매화 향기 담은 바람이 불어가는 어둠 속에서 별이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한다.
※글에 실린 시는 문학사상사에서 1995년에 발행한 윤동주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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