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원초적 생명력’과 예술의 ‘해학’ 꿈틀대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㉖ 종로구 가회동 명인박물관

등록 : 2023-03-16 16:20

크게 작게

명인박물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게흐-와베족의 탈. 신분이 높은 사람이 쓰던 것으로 보인다. 탈 전체에 보 이는 하얀 소품은 산에서 구한 조개다. 바닷속에 있던 산이 융기했다는 증거다.

이무웅 관장, 90년대 아프리카 탈 만나

파리 벼룩시장서 본 탈에 마음 빼앗겨

아프리카 오지 등 찾아서 1400점 수집

“부족이 살던 곳 알아야 탈 온전히 이해”


원주민 간절한 바람 속 ‘명인’ 마음 찾아

학자 고증 거쳐 2008년 박물관 문 열어


아프리카 탈, 단순·단호한 생명력 ‘물씬’

한국 탈에선 상‘ 징의 어퍼컷, 해학’ 발견

자연의 거친 생명력이 꿈틀댄다. 작품으로 승화된 원초적 본능이자 또 다른 시공간에서 창작된 예술작품의 뿌리를 본다.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명인박물관의 탈과 조각품들 이야기다. 우리의 탈은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서 모은 1400여 점의 작품 중 100여 점이 전시됐다. 100년 전 아프리카 어느 부족 누군가의 목숨을 지켜줬던, 누군가의 삶을 빛나게 해줬던, 누군가의 하루 끼니를 위해 쓰였던 것들이라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더 세다.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작용하는 정신의 숨결, 해학도 느껴진다. 원초적 자연의 생명력에서 해학으로 승화된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보았던 명인박물관 이야기.


첫 인연

‘명인: 어떤 분야에서 기예가 뛰어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

명인의 사전적 뜻이다. 명인박물관 관장 이무웅씨는 ‘명인’이란 말에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사람을 보살피고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뜻을 얹는다. 그것이 신으로, 자연으로, 어떤 물건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어머니 아버지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무웅씨는 명인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을 이렇게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바로 명인입니다.’

명인박물관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세계 구석구석에서 살아온 옛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혼이 담긴 탈과 조각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부처상, 예수상, 민간신앙의 상징물, 끼니를 얻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썼던 탈과 조각품들이다. 1400여 점의 소장품 중 100여 점이 전시됐다.

명인박물관 관장 이무웅씨와 탈과의 인연은 1990년대 초반 시작됐다. 사업차 프랑스에서 지내던 시절, 파리의 한 벼룩시장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의 탈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돈을 치르고 손에 쥔 아프리카 탈은 그에게 물음표를 선물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표가 도착한 곳은 벨기에 브뤼셀 성 미카엘 성당 주변 거리였다. 브뤼셀의 몽마르트르라고 불리던 그 거리에 즐비한 아프리카 탈과 민속품 등을 파는 가게들과 아프리카 탈과 민속품을 전시한 왕립미술관은 그에게 보물단지였다.


명인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계단 끝에 놓인 작품. 인도네시아 다마섬에 살던 어느 집안에서 쓰던 의식용 제단이다. 나무판에 양각된 여인상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명인을 찾아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발길이 향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이 살던 땅의 흙냄새와 바람의 결, 햇빛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껴야 그들의 땀이 배고 혼이 담긴 탈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아프리카 어느 부족이 사는 깊은 곳으로 찾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풍토병과 치안보다 오래된 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유럽의 식민지였다. 당시 그 나라에 살던 유럽 사람들이 오래된 탈들을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갔다. 아프리카 콩고는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그의 발길은 그렇게 세계 구석구석으로 향했다. 히말라야를 찾아갔을 때 일이다. 명목상으로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간 거였지만, 실제는 해발 3천~4천m 고지에 사는 어느 부족의 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고원에 고립된 마을이었다. 수천 미터 되는 산을 넘어야 옆 동네가 나오는 곳이었으니 마을마다 생활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제례 때 사용하던 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실제로 현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탈에 가치를 두었다. 현지 사람들의 생활풍습과 바람의 냄새, 피부에 닿는 햇볕의 질감 같은 자연환경도 탈에 서사를 입히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했다.

오래된 가뭄 앞에서 비를 바라는 간절한 농부의 마음, 병을 앓는 부모와 자식의 쾌유를 비는 가족의 간절한 마음, 끼니 걱정에 조상의 영령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탈, 명인들을 찾는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 욤베족 지도자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탈.

명인박물관, 문을 열다

그렇게 모은 600여 점의 수집품을 놓고 그는 고민에 빠졌다. 박물관 개관을 앞둔 때였다. 그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자들에게 고증을 부탁했다. 조금이라도 확실하지 않으면 개관 전시품에서 제외했다. 2008년 명인박물관의 문은 그렇게 열렸다.

2015년 부산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특별전 ‘MASK–영혼의 교감, 탈’을 열었다. 명인박물관 소장품 200여 점도 선보이는 자리였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대륙별로 탈을 고르고 고른 게 200여점이었다. 2017년에는 고려대 박물관에서 ‘주술·상징·예술 세계의 가면 문화’라는 특별전을 열었는데 사립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명인박물관이 참가했다. 멜라네시아 타푸아누 탈,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브와족의 탈, 나이지리아 겔레데족의 탈, 가봉의 팡족 쿠엘레족 푸누족의 탈, 앙골라 초크웨족의 탈, 콩고 욤베족 등 여러 부족의 탈, 스리랑카 콜람의 왕비 탈 등 76점을 전시했다.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명인박물관을 찾았다. 지하에 있는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사람 모습의 조각품 두 점이 보였다. 그 중 한 점이 인도네시아 다마섬에서 사용하던 의식용 제단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조상신이 깃든 작품으로 배 모양의 곡선 형태 나무판에 양각된 여성의 모습은 다산을 상징한다.

인도네시아 어떤 부족 어느 집안의 다산과 풍요를 빌던 조각품의 마중을 받으며 들어선 박물관의 첫인상은 꿈틀대는 자연의 생명력이었다. 박물관 소장품 1400여 점 가운데 반 정도가 아프리카 것이며 전시된 100여 점 중에도 아프리카 작품이 많았다.


1700년 전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병산탈.

원초적 본능, 자연의 생명력 그리고 은유와 상징의 어퍼컷, 해학

‘아! 아프리카.’

명인박물관 전시품을 본 첫인상은 딱 그 한마디다. 탈과 조각품에서 꿈틀대는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보았다. 간절하게 단순하고 단호하게 쓰였다. 원초적 생명력은 그렇게 드러난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사냥했던 아프리카 어느 부족 용맹한 젊은이의 간절한 소망은 사냥 대상이 되는 동물을 닮은 탈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 부족의 안녕을 비는 제례에 쓰이던 탈은 그 부족이 믿는 신과 접속하는 매개이자 그 땅에 사는 부족의 사령이다.

아프리카 가봉 쿠엘레족의 심장 모양 테두리 안에 사람 얼굴이 들어 있는 탈은 전염병이 도는 등 마을에 큰 시련이 닥쳤을 때나 성인식, 장례식 때 쓰던 것이다. 나무와 금속, 깃털, 동물의 뿔 등으로 장식한 콩고 욤베족의 탈은 부족의 족장 등 최고 통치자가 쓰던 것이다. 자기 부족을 위협하는 병과 삿된 기운을 물리치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흑단으로 만든 탄자니아의 검은 예수상, 수백 년 풍화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부처상, 죽은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담은 콩고의 조각품,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조각상, 희생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바로 근현대 유럽 예술의 뿌리가 된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최대 부족인 모씨족의 철제 조각에서 이탈리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보였다. 어떤 전시품에서는 피카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전시관 한쪽에 우리의 탈도 전시됐다. 그 중 가장 오래된 탈이 ‘병산탈’이었다. ‘병산탈’의 제작연대를 알기 위해 방사성탄소연 대측정을 한 결과 1700년 전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산탈’ 옆에 하회탈이 전시됐다. 지배계층의 악업과 탐관오리의 횡포를 풍자하던 놀이 중 하나가 탈놀이였다. ‘병산탈’의 안동군 병산리 바로 옆이 안동 하회마을이다. 병산탈 옆에 전시된 오래된 하회탈을 본다.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작용하는 정신의 숨결, 해학이 느껴진다. 악업을 일삼는 지배계층과 탐관오리를 향해 날리는 은유와 상징의 어퍼컷, 해학.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