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지키는 문화유산을 찾다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 3호 권진규 아틀리에

등록 : 2016-11-18 14:47 수정 : 2016-11-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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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전경
성북동 126번지. 오래된 대문 앞에 멈춘다. 벽면의 현판 때문이다. 빼곡한 글자들이 꼭 호위병의 대열을 보는 것 같다. 집을 지키는 시민들의 이름이다.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이 작은 한옥은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고 마지막 숨을 내쉰 집이다. 주인은 떠났지만 주민들은 오늘도 ‘최순우 옛집’이라 이른다.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

유족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은 2002년. 한옥이 헐린다는 소문이 났다. 최순우 선생 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벗들이 달려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읽은 독자들도 찾아왔다. 평생 ‘한국의 미’에 취해 한국 문화를 탐구했던 선생의 흔적이 안채에 용자살 그림자로, 정원에 달항아리로 남아 있었다. 집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최순우 옛집의 심지혜 연구원은 “집을 구해야 한다며 십시일반 모금을 시작했는데, 6개월 동안 약 8억 원을 모았어요. 이 돈으로 위약금을 물고, 집을 사고,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만들어져 최순우 옛집을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했습니다. 그 운동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현재는 직원 넷이 상주하며 기금을 운영한다. 시민들이 문화재를 지킨다는 말에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부터 ‘우리가 직접 나서서 우리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이 찾아와 힘을 보탰다. 현재 8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해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최순우 옛집 안채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지켜내다

자원봉사자들의 몫도 크다. 이들은 최순우 옛집에서 정원의 풀을 뽑고 물확을 청소하고 방바닥에 윤을 낸다. 한옥을 갉아먹는 흰개미에 대해 배우고 현판에 쓰인 글자들을 익힌다. 툇마루에 앉아 볕을 쬐던 정운필(22) 씨도 자원봉사자다. 고등학생 때 왔다가 한옥의 정취에 이끌려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역사 과목을 유독 좋아하던 중에 여기서 먼저 자원봉사하시던 선생님이 추천하셨어요. 우리 문화재에 대해 배우고 바로 ‘도슨트’ 활동을 시작했어요.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죠.” 옆에서 이경은(23) 씨도 거든다. “서울에서 이 느낌을 간직한 곳은 여기뿐이에요. 일할수록 장소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 연구원은 ‘자원봉사자’가 곧 미래 인력이라 큰 힘이 된다며, 덧붙여 최순우 선생의 한 글귀를 인용했다. “생전에 ‘사무치는 고마움’이란 말씀을 하셨죠. 계절마다 풍경과 사람이 달라서 아직까지 ‘와!’ 하며 감탄하는 날이 많아요. 빠듯한 운영이지만 고인의 흔적을 지키고 이 집에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그런 보람으로 일하는 것 같습니다.”

일손을 모아 해마다 ‘음악회’ ‘낭독회’ ‘전시회’와 답사, 체험 행사를 연다. 시민들의 사랑채로 거듭나고 있다. 개관 10년째였던 2014년까지 약 11만 명이 다녀갔다. 노란 수국차 한 잔 들고 뒷마당에 앉아본다. 11월30일까지 개방하고 집은 곧 겨울잠에 들어간다.

권진규 아틀리에 작업실

시민문화유산 3호, 권진규 아틀리에

시민문화유산 3호 ‘권진규 아틀리에’는 동선동 언덕배기에 자리했다. 구불구불 가파른 길, 대문 너머 그의 작업실과 살림채가 아담히 놓였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59년 귀국한 권진규 조각가는 안채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손수 지은 아홉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흙을 빚고 구웠다. 1973년 작업실에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독했던 삶의 흔적은 최순우 옛집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공간을 유유히 흐른다. 권진규 아틀리에는 한 달에 한 번 개방해 손님을 맞는데, 천재 조각가로 알려진 예술가의 자취를 좇는 이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많은 것을 묻고 간다.

작업실은 선생이 생전 쓰던 물품을 최대한 간직했다. 가마와 우물, 벽에 남은 아리송한 메모도 그대로 보존했다. 작품의 일부도 복제해 두었다.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유족들은 집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해 관리를 맡겼다. 그 후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대여해 운용하고 있다. 오는 26일 문을 연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품은 도시 서울은 그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아직 세월의 더께는 얇지만 보전가치가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도 부지기수다. 서울시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그러나 100년 뒤 보석이 될 만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 상세한 정보를 온라인(futureheritage.seoul.go.kr)으로 알리고 있다. 시민이 함께 지정한 372개(10월 말 기준)의 서울미래유산은 뜻밖에 내가 사는 곳과 가까이 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서울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보자.

권진규 아틀리에 전경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기부·증여를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 주도로 관리하는 운동이다. 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했다. 한국은 ‘그린벨트 해제 반대운동’을 계기로 2000년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출범한 후, 2004년 최순우 옛집을 출연 자산으로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되어 역사적인 가옥과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 문화유산과 관련된 문화 기반 확충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한다. 현재 ‘최순우 옛집’(2004년), ‘나주 도래마을 옛집’(2006년), ‘권진규 아틀리에’(2006년)를 순서대로 ‘시민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그 외 종로구 ‘고희동 가옥’을 업무 협약해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후원 또는 자원봉사 문의: 재단법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cafe.naver.com/ntchfund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시 안내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을 오는 12월31일까지 만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박물관에서 평생을 보낸 혜곡 최순우(崔淳雨, 1916~198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다. 달항아리, 반가사유상 등 생전 최순우가 좋아했던 작품을 그가 남긴 글로 안내한다. (문의 02-2077-9483)

글·사진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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