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마음 글로 풀면, 곤한 내 삶은 ‘쉼터’를 만난다”

현대인을 위한 힐링 ⑥ 치유의 글쓰기 : 한경은 통합예술심리상담연구소 나루 대표

등록 : 2023-06-15 16:02 수정 : 2023-06-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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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글쓰기 전문가인 한경은 ‘통합예술심리상담연구소 나루’ 대표가 지난 2일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치유의 사진관 ‘사진온실’에서 자신의 저서 <이츠 마이 라이프>를 펼친 채 자서전 쓰기가 지닌 치유적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살기 위해’ 춤 등 많은 테라피 경험하고

심리 관련 자격증도 여럿 획득했지만

정작 30대 초반 치유의 글쓰기 만나고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 고백하게 돼


“글 쓰는 동안 응어리진 감정 정화하고

고쳐 쓰기 하면서 다시 자신 되돌아봐”


‘가장 안전한 자기 노출 방식’ 평가받고

문맹률 1% 시대 누구나 접근 가능해

“글쓰기는 감정과 인지, 그리고 무의식까지 관여하기 때문에 치유 효과가 높습니다.” 지난 2일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치유의 사진관 ‘사진온실’(대표 이상재)에서 만난 한경은(48) ‘통합예술심리상담연구소 나루’ 대표가 강조한 말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한 대표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최근 ‘치유의 자서전 쓰기’ 책인 <이츠 마이 라이프>(박미라·한경은 공저, 그래도봄 펴냄)를 출간한 글쓰기 전문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 대표가 그 누구보다도 ‘다양하고 깊은 치유의 여정’을 거쳐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20~30대 때 춤, 요가 수행, 동작, 신체심리치료, 위파사나 명상 등 안 해본 테라피가 없었다”고 말한다. 모두 “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치유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사진학과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작품활동을 했는데, 2016년에는 ‘케이티앤지(KT&G)상상마당’이 선정한 올해의 최종작가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통합예술심리지도사 1급’ ‘사진심리상담사 1급’ ‘연극심리지도사 1급’ ‘영화치료전문강사’ 등 다양한 심리치료 관련 자격증을 가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런 한 대표가 높이 평가하는 글쓰기 치유는 사실 다른 예술치료에 비해서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다.

한경은 대표가 책을 보면서 30대 초반 치유의 글쓰기를 만나면서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고 고백했던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인 아이라 프로고프(1921~ 1998)가 1966년 ‘집중 저널 치료’를 발표한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카를 융 심리학’ 전문가였던 프로고프는 일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정 문제를 훨씬 더 빨리 해결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집중 저널 치료’를 개발했다. ‘집중 저널 치료’는 자기 인생에 대한 글쓰기를 돕는 터닝포인트와 꿈 등 16가지 부문으로 글쓰기 치유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집중 저널 치료’는 이후 꾸준히 발전해나갔고, 그 밖에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DSD)를 글쓰기로 치유하는 ‘쓰기 노출치료’(WET) 등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한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프로고프가 글쓰기에서 치유 효과를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고프의 치유 프로그램 이전까지 글쓰기 목표는 대부분 ‘치유가 아닌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문맹률 추이를 살펴보자. 문자가 탄생한 것은 기원전 33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이었지만,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중세 유럽까지도 성직자들에 의해 겨우 명맥이 유지돼왔다. 높은 문맹률은 근대에도 이어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당시 중국의 문맹률은 80% 이상이었고, 1945년 해방 당시 우리나라 문맹률도 78%였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미국 문맹률의 경우 1969년에 1%로 낮아질 정도로 글을 읽고 쓰는 문화가 확산했다. 1900년 미국 문맹률이 10.9%였던 것을 고려하면, 문자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게 다가왔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문맹률이 빠르게 낮아진 것이 ‘글쓰기의 치유 기능’을 발견한 토대가 된 것은 아닐까?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한경은 대표가 자서전 쓰기 책인 <이츠 마이 라이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로 와보자. 이렇게 상대적으로 늦게 발전된 ‘치유의 글쓰기’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한 대표는 “한국에서는 2006년에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가 치유 글쓰기 워크숍을 시도한 것이 처음”이라며 “저는 그 워크숍 3기생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이전에 여러 치유 과정을 경험했던 한 대표지만, 박미라 대표의 글쓰기 철학을 접한 뒤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글쓰기가 자신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글쓰기의 치유 효과가 뛰어난 것은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응어리진 감정을 정화하고, 쓴 글을 다시 보거나 고쳐 쓰기를 하면서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객관화를 통해 자기를 파악하면 자신의 감정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다. ‘자서전 쓰기’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 대표는 “박미라 대표와 제가 진행하는 치유적 자서전 쓰기의 경우,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한편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김보근 선임기자가 한경은 대표의 저서 <당신은 그때 최선을 다했다>를 펼친 뒤 한 문장을 가리키며 글쓰기의 치유 원리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어 글쓰기 작업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치유한 한 30대 여성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전해줬다. 이 여성은 성적 수치심이 너무 강해 타인과의 스킨십 자체도 무척 힘들어했고 이에 따라 애인을 만나도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자신의 수치심에 ‘뾰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뾰족이에게 묻고 뾰족이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수치심의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지닌 수치심을 딸인 그녀가 자기 것으로 내면화한 것이었다. 대화 글쓰기, 편지 쓰기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면서 무의식을 자극해서 멀리 있는 근본 원인을 찾은 것이다.

한 대표는 글쓰기 치유 효과는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류가 현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의식이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글쓰기 치유가 늦게 개발된 원인 중 하나인 문맹률은 이제 글쓰기 치유에서는 ‘축복’이 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이미 1% 이하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누구나 글쓰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또한 “글쓰기는 가장 안전한 자기 노출 방식”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치유 글쓰기는 평가받는 글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글이다. 내면이 이끄는 대로 썼지만 혹시 글을 갖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면 찢어버리거나 삭제해도 괜찮다.” 그리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필기구 외에 다른 도구가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치유의 글쓰기는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큰 장점은, 펜 끝에서 나와 종이에 적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치유의 언어로 뚜렷이 남아 다시 볼 때마다 아픈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점이다.

“자서전 쓰면 ‘인생 가치’가 새롭게 다가와”

한경은 대표가 들려주는 ‘이츠 마이 라이프’ 사용법

“나이에 상관없이 자서전을 써보세요.”

한경은 ‘통합예술심리상담연구소 나루’ 대표는 “자서전 쓰기는 파편적으로 인식돼온 자신과 삶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성찰적 글쓰기”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이 무가치한 게 아니며 나름 잘 살아왔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최근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와 함께 펴낸 <이츠 마이 라이프>(그래도봄)는 누구나 쉽게 치유의 자서전 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안내서 겸 다이어리다.

책은 1부에서 치유의 글쓰기를 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① 내 얘기를 잘 들어줄 따뜻한 독자를 떠올리고 ② 다짜고짜 시작하고 ③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쓰고 ④ 객관적 사실과 감정, 생각을 고루 기록하고 ⑤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추지 말고 ⑥ 솔직히, 뜨겁게 쓰는 것이 핵심이다.

2부에서는 책을 산 사람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자신을 되돌아볼 6개의 질문을 던진다. ‘내 인생의 열두고비’ ‘사소하고도 아름다운 일상’ ‘나의 성취’ ‘인생의 뿌리, 부모’ ‘내 인생의 사람들’ ‘마음의 역사’ 등이 그것이다. 두 치유의 글쓰기 전문가가 제시한 6가지 화두에 솔직하게 답하는 글쓰기를 이어가다보면 조각조각 난 듯이 보였던 삶의 파편이 어느새 의미를 갖고 다가오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면, 이제는 2부의 마지막 주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키워드로 글을 쓸 차례다. 한 대표는 이런 자서전 쓰기를 통해 “삶의 어둡거나 밝은 측면 모두를 끌어안게 되고, 결국 긍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긍정적 자아상이 만들어지면 미래도 밝게 설계하게 된다. 3부 ‘미리 보는 이츠 마이 라이프’에서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100살이 된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어느새 현재의 자신이 용기와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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