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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이러저러한 고생이 많았지만 사라진 입맛을 찾는 일도 고역이었다. 유일하게 입맛 당기게 하는 게 고추였다. ‘롱그린’ 품종의 고추는 맵지 않지만, 아삭하게 씹혀 식감도 좋고, 맛도 좋아 밥 한 그릇 비우는 데 효자 노릇을 해주었다. 고추에 비타민 C도 많다고 하니, 여름을 이기는 반찬으로는 그만이었다.
외국 신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고추를 많이 먹는 국가에 관해 설명하면서 1위가 멕시코, 2위 페루, 3위를 태국으로 꼽았다고 한다. 한국이 빠질 리가 없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우리는 놀랍게도 고추를 고추소스(고추장)에 찍어 먹는 나라를 발견했다”는 필자의 마무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의 고추 사랑에 나도 톡톡히 기여를 한 셈이다.
간단 동치미는 일주일이면 숙성
가을이 돼서도 나의 고추 사랑은 끝이 나지 않았다. 끝물 고추가 쏟아져나올 때 고추장아찌를 담갔다. 이때 담근 간장고추장아찌, 된장고추장아찌는 내년 여름까지 밑반찬으로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리고 소금물에 고추를 삭혔다. 삭힌 고추는 멸치젓갈이나, 밴댕이젓갈에 무쳐 먹어도 맛이 그만인데, 예전 같으면 먹지도 않았던 음식이 갈수록 좋아진다. 나도 이제 어른의 입맛을 갖게 된 건가 싶다.
내가 만든 지고추(첫서리 전에 익지 않은 푸른 고추를 따서 소금물에 겨우내 삭혀 만든 것)로도 성이 차지 않아, 농산물 직거래장터에 가서 거창 고랭지밭에서 딴 첫물 고추를 유기농 볏짚을 깔고 소금물 부어 돌로 눌러 삭힌 고추를 샀다. 지고추 2㎏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삭힌 고추에 고춧가루와 마늘, 매실액과 통깨를 넣어 무쳤더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양념에 묻힌 고추지가 지겨울 때쯤 시장에 동치미 무가 쏟아져 나왔다. 지고추가 있으니 동치미도 담갔다.
작고 단단해 물러지지 않는다는 천수무는 동치미를 담그기에 그만인데, 무청은 삶아서 겨우내 국거리로 먹을 것이고, 시원하게 담근 동치미는 고구마와 함께 먹어도, 국수를 말아먹어도 잘 어울린다. 항아리도 없고, 보관도 힘들고, 동치미 무를 썰어서 먹기도 귀찮으니 이럴 땐 간단 동치미가 답이다. 찹쌀풀을 쑤지 않고, 국물 간만 잘 맞추면 지고추의 알싸한 맛이 동치미의 맛을 한결 살려줄 것이다. 일주일 안에 시원한 동치미를 먹을 수 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작고 단단해 물러지지 않는다는 천수무는 동치미를 담그기에 그만인데, 무청은 삶아서 겨우내 국거리로 먹을 것이고, 시원하게 담근 동치미는 고구마와 함께 먹어도, 국수를 말아먹어도 잘 어울린다. 항아리도 없고, 보관도 힘들고, 동치미 무를 썰어서 먹기도 귀찮으니 이럴 땐 간단 동치미가 답이다. 찹쌀풀을 쑤지 않고, 국물 간만 잘 맞추면 지고추의 알싸한 맛이 동치미의 맛을 한결 살려줄 것이다. 일주일 안에 시원한 동치미를 먹을 수 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새알심은 인절미로 대신해도 별미
동치미가 있으니 팥죽 생각이 난다. 올해 팥 값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동짓달에 팥죽 한번 먹지 않으면 그 또한 허전한 일 아닌가. 붉은 팥은 잡귀와 부정을 막아준다고 하니, 더더욱 먹어야겠다. 팥 500g이면 큰 냄비가 넘치도록 팥죽을 끓일 수 있어 여럿이 나눠 먹어도 좋겠다. 팥을 삶고, 체에 내려 부드럽게 끓이다가 쌀알을 넣거나 새알심을 넣어도 좋고, 입맛에 따라 설탕을 넣어 단팥죽으로 먹어도 좋다. 새알심 대신 인절미를 넣어도 별미다.
날씨가 추울수록 작은 것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 그 맛은 배가 된다. 주말마다 촛불 드느라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에도 그만이겠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잘 보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달콤한 단팥죽과 지고추가 띄워진 동치미를 나눠 먹고 싶다. 올 한 해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고 우리들이 만들어갔던 촛불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지고추, 동치미, 팥죽… 이게 다 고추 덕분이다.
글 윤혜정 아이쿱시민기자
사진 이지나 서울아이쿱 생협 조합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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