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김명자 판소리치유센터 센터장이 지난 6일 대학로에 있는 센터에서 판소리 ‘흥보가’를 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판소리는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탄생했을 것”이라며 “탄생부터가 백성의 치유와 관련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민족극 계열 ‘극단 아리랑’서 사회 첫발
‘또랑광대콘테스트 우수상’ 계기 독립
‘판소리 치유적 성격’ 주제로 박사 받고
치유프로그램 체계화 뒤 센터 문 열어
판소리, 임진왜란 상처 보듬으며 출현 “현대인 화병은 간에 노기 쌓여서 발생
‘오장육부 쥐어짜는 발성’ 치유 효과 커” 문학·연극 요소도 ‘투사’ 통해 치유 도와 “현대인의 화병에는 판소리 치유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일 대학로에 있는 판소리치유센터에서 만난 김명자(57) 센터장은 판소리의 치유 효과를 이렇게 ‘꼭 집어서’ 얘기했다. 조선 후기 탄생한 판소리는 우리의 ‘흥’과 ‘한’을 담아 발전했지만, 현대인의 ‘화’를 치유하는 데도 탁월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이 판소리의 이런 치유 기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간 김 센터장은 1990년 혜화동에 있는 민족극 계열 연극단체인 ‘극단 아리랑’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 센터장은 당시 극단 대표였던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뒤풀이 자리에서 부른 ‘쑥대머리’를 듣고 판소리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그 뒤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판소리를 익혔다. 당시 극단의 공연 뒤풀이 등에서 김 센터장이 자주 부른 ‘캔디 타령’은 명성을 얻어 금성출판사 등에서 발행한 중고등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캔디 타령’은 일본 애니메이션 <들장미소녀 캔디>의 주제가를 판소리로 바꾼 것이다.
판소리, 임진왜란 상처 보듬으며 출현 “현대인 화병은 간에 노기 쌓여서 발생
‘오장육부 쥐어짜는 발성’ 치유 효과 커” 문학·연극 요소도 ‘투사’ 통해 치유 도와 “현대인의 화병에는 판소리 치유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일 대학로에 있는 판소리치유센터에서 만난 김명자(57) 센터장은 판소리의 치유 효과를 이렇게 ‘꼭 집어서’ 얘기했다. 조선 후기 탄생한 판소리는 우리의 ‘흥’과 ‘한’을 담아 발전했지만, 현대인의 ‘화’를 치유하는 데도 탁월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이 판소리의 이런 치유 기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간 김 센터장은 1990년 혜화동에 있는 민족극 계열 연극단체인 ‘극단 아리랑’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 센터장은 당시 극단 대표였던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뒤풀이 자리에서 부른 ‘쑥대머리’를 듣고 판소리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그 뒤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판소리를 익혔다. 당시 극단의 공연 뒤풀이 등에서 김 센터장이 자주 부른 ‘캔디 타령’은 명성을 얻어 금성출판사 등에서 발행한 중고등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캔디 타령’은 일본 애니메이션 <들장미소녀 캔디>의 주제가를 판소리로 바꾼 것이다.
김명자 센터장이 ‘판소리치유센터’ 간판앞에 섰다. 김 센터장은 박사 논문 ‘판소리의 음양오행론적 분석과 치유적 성격 연구’를 쓴 뒤 판소리의 치유적 기능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김 센터장은 2001년 열린 ‘제1회 또랑광대콘테스트’에서 창작 판소리 <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로 우수상을 받으며 판소리계에서 더욱 이름을 알렸다. 슈퍼마켓을 하는 아줌마가 김치냉장고를 타려는 욕심에 씨름대회에 나갔다가 2등을 했지만, 자식들은 2등 상품인 컴퓨터를 더 좋아해서 기뻐했다는 얘기를 담은 이 작품에 관객이 열광했다. 전국에서 <슈퍼댁…> 공연 요청이 이어지면서 김 센터장은 결국 연극인 활동을 마감하고 본격적으로 판소리꾼 활동을 시작했다.
김 센터장은 판소리꾼으로 활동하며 두 가지 큰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하나는 소리를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 소리 실력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의 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첫째 목표를 위해 김 센터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민혜성 명창에게 2010~2020년 ‘흥보가’ ‘심청가’ ‘춘향가’를 사사했다.
김 센터장은 두 번째 목표를 위해 건국대 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판소리를 주제로 석사·박사 논문을 썼다. 김 센터장은 박사 논문 ‘판소리의 음양오행론적 분석과 치유적 성격 연구’를 통해 판소리의 치유적 기능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판소리를 음양오행론으로 분석하면서 명리학에도 능하게 돼 현재 판소리치유센터에서 사주 보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김 센터장이 2020년 현재의 판소리치유센터를 연 것은 판소리를 향한 그의 끊임없는 구애와 탐구의 결과물이었다.
김 센터장이 판소리를 할 때 사용하는 북과 부채.
김 센터장은 판소리의 치유 기능이 판소리의 탄생과도 깊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판소리의 탄생과 관련한 문헌적 기록은 없다. 판소리에 대한 최초 기록은 1754년(영조 30년) 조선 후기 유학자 유진한(1711~1791)이 지은 한시로 된 ‘춘향가’다. 이를 가지고 많은 학자가 판소리의 근원을 추정할 뿐인데, 김 센터장은 “임진왜란 뒤 혼란기에 여러 문화적 요소가 섞이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문화적 시도가 생겨나면서 판소리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본다. 탄생부터가 “당시 춥고 배고팠던 백성의 치유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여러 가지를 종합해볼 때 판소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약 80년 뒤에 즉위한 숙종(재위 1674~1720) 때 즈음해 출현했을 것”으로 본다.
김 센터장은 이런 판소리의 출현 배경, 음양오행적 원리, 그리고 판소리의 음악·문학·연극적 요소를 활용해 현대인을 위한 판소리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판소리의 음악·문학·연극적 요소를 살펴보자. 우선 음악적으로 볼 때 판소리의 가창이 치유적 성격을 갖는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판소리의 가창은 ‘단전호흡’과 ‘통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서양 음악보다 치열한 발성법”이라며 “특히 자신의 몸 전체를 울림통으로 삼아 오장육부를 쥐어짜듯이 내지르는 ‘통성’은 치유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통성은 비유하자면 높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칠 때와 같은 발성법이다. 김 센터장은 “현대인의 화병은 음양오행론으로 볼 때 간에서 발생하는 노기가 억눌려서 적체된 ‘억울’(抑鬱)로 인해 생긴다”며 “오장육부를 쥐어짜듯 통성을 내지르면, 인체의 근원인 장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심신에 강한 기(氣)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이런 기적 변화는 속 시원한 느낌과 함께 막혔던 기의 소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신체 내부를 다시 조화로운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판소리치유센터의 활동을 소개한 팸플릿.
김 센터장은 또 “판소리가 가진 문학적·연극적 요소도 화병 치료에 큰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김 센터장은 “판소리의 내용에 해당하는 사설을 통해 내 인생 속 설움을 되돌아보게 된다”며 “특히 몇백 년 동안 친숙해진 캐릭터들이어서 내 마음 안으로 쉽게 융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판소리 가창을 통해 ‘옥중에 갇힌 춘향’에게 내 마음을 투사하기 쉽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자신이 만든 치유 프로그램의 성과를 2020년 한국구비문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구비문학연구> 제58권에 ‘판소리 가창을 통한 화병 치유 사례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상자기사 참고)
김 센터장은 “현대인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안락해졌지만, 마음의 문제만큼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일수록 인간성을 상실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판소리가 가진 치유적 기능을 판소리계에서도 더욱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나타냈다.
사실 김 센터장이 끊임없이 판소리를 창작하는 이유도 치유와 무관하지 않다. 김 센터장은 오는 8월4~5일 저녁 7시30분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창작 판소리 <음~메 기살아!>를 공연한다. 황혼육아 5년차인 이덕분씨가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판소리 발성을 배워서 육아로 쌓은 화를 날마다 소리로 풀어내지만, 어느 날 사위와 딸의 지적질에 더는 못 참고 육아 퇴직 선언을 하는 얘기다.
김 센터장은 새로운 창작 판소리 공연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판소리가 과거의 판소리 5마당(춘향·심청·흥부·수궁·적벽가)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뤄야 한다”며 “그럴 때 사람들이 판소리의 치유적 효과를 비롯해 판소리를 더욱 친근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는 8월 4~5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진행되는 김 센터장의 창작 판소리 공연 <음~메 기살아!> 포스터. 김명자 센터장 제공
“판소리 호흡과 발성으로 우울증 치료”
김명자 센터장, 치료 사례로 논문 발표
‘판소리 치유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까?’ 김명자 판소리치유센터장의 논문 ‘판소리 가창을 통한 화병 치유 사례 연구’를 통해 살펴보자.
논문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김 센터장이 2019년 3~6월 진행한 한 판소리 치유 프로그램 참석자 ㄱ씨다. 당시 40살이던 ㄱ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24년 동안 해마다 두드러기로 병원을 찾아야 했고 매일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원인은 너무나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태도였다.
김 센터장은 이런 ㄱ씨에게 판소리 호흡과 발성을 소개했다. 우선 ① 기가 통할 수 있도록 단전 두들기기 등을 한 뒤 ② ‘취취취취 호흡법’을 한다. 김 센터장이 개발한 이 호흡법은 배꼽에 손을 얹고 ‘취-’소리와 함께 호흡을 내뱉되 4번째 마지막 장단에서는 숨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내뱉고 항문을 막는다. ③ 다음은 발성으로 서양식 음계의 라에 해당하는 높이로 ‘아~’ 소리를 내뱉되 목소리가 끝난 이후의 남은 숨을 끝까지 내뱉는다. ④ ‘통성’ 발음 연습으로 단전에 힘을 주고 항문을 막고 오장육부를 쥐어짜면서 높은 소리를 통으로 지르게 한다.
김 센터장은 호흡 연습 뒤에는 ㄱ씨에게 판소리 <춘향전>의 ‘사랑가’를 가르쳤다. ‘사랑가’가 목과 화의 기운을 가져 치유에 가장 적합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효과는 놀라웠다. ㄱ씨는 그해 두드러기가 생기지 않았고 판소리 사설을 따라서 누구에게 명령도 해보고 방긋 웃으면서 애교도 부려보는 등 마음의 여유도 되찾았다.
ㄱ씨는 치유과정을 마친 뒤 “소리를 하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시원해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며 “하루를 시작할 때 ‘사랑가’를 부르게 됐다”고 변화된 자기 모습을 소개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