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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전시실.
자수 가치 일찍 알았던 고 허동화 선생
평생 모은 5천 점 박물관에 모두 기증
고려 때 화분 모양 수놓은 ‘사계분경도’
아버지 저녁 밥상 덮던 보자기 등 ‘눈길’
지난여름 폭염을 피해 들렀던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반가운 것을 보았다. 밥상보가 전시돼 있었다. 옛날에 밥상보가 덮인 밥상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보자기와 자수품을 하나하나 살피며 보았다. 그날 본 것을 밥상머리를 함께 나누는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두 번째 발걸음을 했다. 보자기와 자수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에 세 번째 발길을 놓았다. 평생 자수품과 보자기를 수집하고 국내외에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린 고 허동화 선생의 아들 허원실씨가 들려준 이야기와 서울공예박물관에 소개된 이야기를 적었다. ‘사전가 직물관 자수·보자기 전시실’에서 ‘사전가’는 자수 병풍과 보자기 등 5천여 점을 기증하고 2018년 유명을 달리한 허동화 선생의 호다.
혼선(왼쪽 아래)과 활옷에도 수를 놓았다.
수집에서 창작으로 2018년 서울공예박물관에 5천여 점의 자수품과 보자기 등이 기증됐다. 기증된 작품에는 국내에 알려진 자수 병풍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는, 고려시대에 만든 ‘사계분경도’도 있었다.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평생 마음을 쏟아 자수품과 보자기를 수집하고 한국자수박물관을 설립해서 한국 자수와 보자기의 아름다움 속에 깃든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알린 허동화씨가 기증자였다. 그는 2018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헌신으로 이룩한 자수품과 보자기의 모든 것을 기증했다. 1960년대 자수품 수집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수집 애호가들이 도자기, 고미술품, 오래된 민속품 등에 눈길을 돌릴 때 그를 자수품의 세계로 인도한 건 아내와 민화연구가 조자용씨였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집에 묵혀 있던 고미술품과 오래된 민속품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좋은 작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달려가 보았다. <구운몽> 이야기의 한 장면을 표현한 자수 병풍 ‘구운몽도’는 10년가량 마음을 써서 샀다. 어린 신선 100명이 뛰어노는 장면을 수놓은 ‘백동자도’는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온 평양 출신 할머니가 마음을 달래던 벗이나 다름없었다. ‘사계분경도’는 외국인에게 팔리기 직전 어렵게 손에 넣었다. 작품은 돈으로만 얻는 게 아니었다. 시간과 진심이 필요했다. 작품만 모으는 게 아니었다. 작품에 담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얻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은 수집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전시공간을 처음 마련한 건 1971년이다. 1976년 설립한 한국자수박물관의 출발점이었다. 1974년에는 사전자수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수품과 보자기에 관련한 학술회의를 여는 등 연구에도 정성을 들였다.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우리나라 자수공예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보자기로 수집 영역을 확대한 건 그의 안목이었다. 자수품을 포장한 보자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100여 회의 전시를 통해 우리 자수와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자수품과 보자기를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그는 1990년대부터 창작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오랜 세월 자수품과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그가 창작의 길로 들어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평생을 마음에 두고 모았던 자수품과 보자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농기구를 재구성해서 만든 작품, 오래된 옷감을 배접해 만든 직물화, 조각보자기 이미지를 담은 브로치와 아크릴화, 철 소조 작품 등을 만들고 전시했다.
자수 매화도 병풍.
자수전시실을 수놓은 아주머니들의 웃음
자수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옷이며 댕기 같은 의류 소품, 베개, 쌈지는 물론, 혼인할 때 신부 얼굴을 가리던 혼선, 아이 돌 때 만들어 쓰던 돌띠, 바늘주머니, 보자기, 방석, 경대보, 향주머니, 노리개, 활 쏠 때 활을 잡은 팔의 소맷자락이 활시위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는 활팔찌 등 천이 들어간 일상생활용품에는 대부분 수를 놓았다.
나비 무늬는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행복을 상징하며 고양이와 함께 표현되면 장수를 의미한다. 복을 상징하는 박쥐 모양도 수놓았다.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는 복되게 오래 잘 살라는 의미다. 베갯모에 수놓은 봉황 한 쌍과 여러 마리 새끼 봉황은 화목한 가정을 의미한다. 돌띠에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의 글자나 무늬를 수놓았다.
자수에 담긴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는 사이 자수전시실에 아주머니들이 들어왔다. 자수품을 보며 여고 때 자수를 배우던 수업시간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여고생으로 돌아간 듯 이야기 속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수 병풍 앞에서 감탄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검은색 직물 위에 노란색 실로 수놓은 매화도 병풍은 가지마다 피어난 매화를 표현하기 위해 꽃무늬 안쪽에 속수를 놓았다. 병풍 자체의 크기도 놀랍지만 커다란 나무와 꽃을 수놓은 섬세한 마음을 읽고 감탄한다.
자수 묵죽도 4폭 병풍은 먹으로 그린 그림 1폭과 자수로 표현한 3폭이 하나의 병풍으로 구성됐다. 왼쪽 둘째 폭은 이병직이 먹으로 그린 그림이고 나머지 폭은 청나라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의 그림을 수놓아 표현했다.
화분을 표현한 분경 무늬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작품 사계분경도에 잘 나타나 있다. 오른쪽 첫째 폭부터 봄을 묘사한 다섯 꽃잎의 꽃, 겨울을 상징하는 매화와 동백, 여름을 대표하는 연꽃, 가을을 의미하는 포도가 수놓였다고 설명한다. 꽃과 새를 표현한 자수 화조도 10폭 병풍도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은 보자기 전시실로 향했다.
자투리 천을 이용해서 만든 조각보자기.
보자기, 추억 보따리
보자기 또한 추억의 보따리다. “함 사세요, 함 사세요.” 함진아비는 동네가 떠나갈 듯 ‘함 사세요’를 외쳐댔다. 신붓집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이 함진아비를 집까지 모셨고 함진아비가 지고 온 함을 받은 신붓집에서는 팥시루떡이 담긴 시루 위에 붉은색 보자기를 덮고 그 위에 함을 올려놓았다. 함 속에는 옷감과 폐물, 사주단자를 넣는 경우도 있었다. 함을 싼 것도, 떡시루 위를 덮는 것도, 옷감을 싼 것도, 사주단자를 싼 것도 다 보자기였다. 결혼이라는 의례를 치르는 방식이었고 집집이 내려오는 생활이었다.
보자기 전시실에 전시된 예단 보자기, 사주단자 보자기를 보며 함 팔던 오래전 어느 날을 생각했다. 밤공기가 참 싱싱한 날이었다.
조각보자기는 평범한 어머니들이 만든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몬드리안을 알 길 없었던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옷과 생활용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이어 붙여 만든 보자기가 조각보자기다. 전시된 19~20세기 조각보자기가 만든 선과 면의 분할은 몬드리안을 뛰어넘는다. 천을 짠 실의 질감마저 고스란히 느껴지며 새로운 심미안을 찾게 된다.
자수단자보자기, 날염보자기, 누비보자기, 노리개보자기, 가락지보자기, 이불보자기, 결혼 때 주고받던 나무 기러기를 감싼 보자기는 물론, 천 조각을 이어 아이들 장신구로 만든 괴불, 아이들 색동두루마기 섶과 소매에 천 조각을 이어 만든 무늬가 도드라진 까치두루마기…. 보자기는 추억을 선물하여 마음을 다독인다.
보자기 전시실을 나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보자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에 달동네 가난한 집에도 밥상보 하나쯤은 있었다. 저녁때를 놓치고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 저녁 밥상을 덮고 있던 밥상보는 어린 눈에도 포근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발걸음이 골목부터 들리면 어머니는 부엌에 나가 찌개를 데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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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박물관 입장 마감 오후 5시30분) 휴관일: 매주 월요일(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2조에 따른 공휴일인 경우는 운영함). 1월1일. 관람요금: 없음 문의전화: 서울공예박물관 02-6450-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