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주요 수출품 비단엔 여인들 고된 삶 ‘올올이’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㉝ 성북구 성북동 성북선잠박물관

등록 : 2023-10-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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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선잠박물관 3층에서 열리는 소장품특별전에 전시된 한복들.

고려 비단인 ‘고려단’의 명성을 이어서

조선, 궁궐에 뽕나무 심으며 양잠 장려

선잠제 지내던 성북동에 세운 박물관

‘누에 쳐 풍요’ 바라던 조선의 마음 가득

누에가 뽕잎을 먹고 자라 고치를 만들면 사람들은 고치에서 실을 뽑는다. 그 실이 명주실이다. 명주실로 짠 천이 비단이다. 비단은 고려시대 주요 수출품이었다. 고려의 비단을 고려단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왕명으로 궁궐에 뽕나무를 심고 선잠례를 지냈으며 왕비가 양잠을 선보이는 친잠례도 지냈다.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양잠의 역사, 선잠의 문화가 성북선잠박물관에 가득하다.

성북구 성북동 성북선잠박물관

선잠단지와 누에 뽕잎 먹는 소리


한성대입구역에서 만해 한용운의 임종을 지킨 심우장으로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서 뽕밭을 만난 건 오래전이었다. ‘여기에 뽕밭이 왜 있지?’라며 궁금해했는데, 의문은 금세 풀렸다.

뽕밭은 선잠단지였다. 선잠단은 양잠의 신으로 여기는 서릉씨를 받들어 나라에서 선잠제를 지내던 곳이다. 예로부터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로 여기던 의식주 가운데 입을 것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양잠이었으니, 양잠의 신을 모시고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잠제를 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곧,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선잠제는 고려시대에 시작해 1908년까지 이어졌다. 일제가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에서 배향하게 하면서 중단됐다.(1993년부터 선잠제를 재현해 지내고 있다.)

이후 선잠단지 주변에 집이 들어섰다. 선잠단지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동네 아줌마들이 빨래를 널고 고추를 말리는 곳으로 쓰이기도 했다. 도로를 내면서 선잠단지 일부가 도로 아래 묻히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선잠단지를 알리는 비석을 세웠다. 뽕나무를 심은 것도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선잠제를 지냈다는 것을 알리려는 뜻이었다.

누에의 발육 과정과 누에고치에서 나온 명주실.

2016년 선잠단지 복원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선잠단지 유적 발굴 조사 때 뽕밭은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지금도 선잠단지 홍살문 주변에 뽕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선잠단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들어선 성북선잠박물관 1층에 가면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는 선잠제, 친잠례, 선잠단의 역사를 글과 옛 지도, 사진, 축소 모형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성북선잠박물관을 선잠단지 바로 옆에 지으려 했으나 민가가 많아서 포기하고 성북구 시설물인 노인정과 청소년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건물을 고쳐 지어 박물관의 문을 열게 됐다.

성북선잠박물관은 1·2·3층에 전시실이 하나씩 있다. 3층 전시실부터 보기로 하고 도착한 전시실 입구에서 만난 건 소리였다. 마른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오래된 마른 종이 구겨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뭇잎에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그 소리의 정체는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들리는 공간에는 400년이 넘은 창덕궁 후원의 뽕나무를 그린 그림이 빛을 받고 있었다.

매듭장 김은영씨가 기증한 모본단 귀주머니. 주머니에 잠자리 매듭이 달렸다.

궁궐의 뽕나무와 왕비의 친잠례

누에 뽕잎 먹는 소리와 창덕궁 뽕나무 고목 그림에 마음이 움직여 창덕궁을 찾은 건 다음 날이었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뽕나무 고목은 천연기념물이다. 조선시대 창덕궁에 뽕나무가 1천여 그루 있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뽕나무 고목은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며 백성에게 양잠을 권장했던 ‘친잠례’의 그 뽕나무가 아닐까?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조선 태종 임금은 창덕궁에 뽕나무를 심게 했으며 성종 임금 때는 왕이 승정원에 양잠의 중요성을 말하며 후원에 뽕나무를 심게 했다. 후원에서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제를 올렸다는 ‘친잠례’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총 8번 친잠례가 열렸다.

영조 43년(1767년)에 경복궁 옛터에 선잠단을 본뜬 친잠단을 만들어 왕비인 정순왕후가 직접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후 친잠례까지 거행했다고 한다. 영조 임금은 정순왕후의 친잠을 기념하기 위해 <친잠의궤>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에 기념 비석(정해친잠비)을 세우게 했다. 왕의 명으로 궁궐에 뽕나무를 심고, 선잠제를 지내고,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시연과 함께 제를 올리며 백성에게 양잠을 권장했던 조선시대 이야기가 성북선잠박물관에 가득하다.

박물관 1층 전시실은 ‘터를 찾다’라는 주제로 선잠제와 선잠단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층 전시실은 ‘예를 다하다’라는 주제로 선잠제와 친잠례 등을 소개하고 있다.

1912년에 작성된 누에사육표준표. 누에에게 뽕잎을 주는 양과 시간을 기록했다.

누에치기, 베날기, 다듬이질…비단에 담긴 수많은 노동

3층 전시실에서는 ‘풍요를 바라다’라는 주제로 소장품 특별전이 열린다. 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며 수집한 근대 한복과 전통 장신구, 양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기증품이 전시됐다. 매듭장 김은영씨가 기증한 세조대가 눈에 띈다. 세조대는 도포 등 겉옷에 매는 가는 띠를 말하는데, 끝에는 딸기술(딸기 모양으로 만든 술)이 달려 있다. 귀중품이나 소품 등을 담아 휴대하는 주머니였던 ‘모본단 귀주머니’를 장식한 잠자리 모양의 매듭도 신기하다.

오랫동안 우리의 색을 찾아 자연염색을 연구해온 이승철 교수의 자연염색 비단 견본은 비단에 물들인 전통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가장 선명한 노란색 염료인 황벽, 붉은빛에 가까운 노란색 염료인 치자, 붉은 색조의 염료인 꼭두서니, 파란 쪽빛 염료인 쪽, 붉은 보랏빛 염료인 지초 등 수많은 자연 염료로 낸 우리의 자연색은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은은하지만 처지지 않는다.

누에에게 뽕잎을 주는 양과 시간을 기록한 누에사육표준표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봄에 작성한 것이다. 1942년 조선총독부 농림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잠사업> 책자는 당시 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책이다. 생산량을 늘리는 게 목적이었다.

전통 베틀로 직물을 짜는 모습.

전통 베틀로 직물을 짜는 아주머니, 전통 방식으로 베날기를 하는 아주머니들, 다듬이질하는 아주머니들…. 수십 장의 사진엽서에 담긴 옛 여인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누에를 쳐서 실을 뽑고 비단을 짜던 한 올 한 올의 고단한 시간을 보았다.

그 시작은 누에치기다. 누에 알에서 시작해서 1령~5령 누에의 시기를 지나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누에고치 중 얼룩지거나 실을 뽑을 수 없는 고치를 골라낸다. 누에고치를 솥에 넣고 삶으면 실이 풀어져 나온다. 가는 나무로 휘저으면 아주 가는 실이 생긴다. 그런 실 여러 가닥으로 실 한 가닥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실 한 가닥을 왕채에 감아 실타래를 만든다. 왕채에서 꺼낸 실타래를 돌꼇에 걸고 실 한 가닥을 뽑아 실꾸리에 걸어 물레를 돌린다. 물레를 돌리면 실꾸리가 따라 돌면서 실꾸리에 실이 감긴다. 그렇게 만든 실꾸리 10~20개를 날틀에 걸고 일정 거리에 박은 말뚝에 걸어 날실의 길이를 일정하게 만드는 걸 베날기라고 한다. 베날기를 마친 날실을 바디(촘촘한 틈이 있는 도구)에 끼워 직물의 폭을 결정한다. 그다음 과정은 날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풀칠하고 도투마리에 감을 때 실끼리 붙지 않게 하는 도구를 끼워 넣는다.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에 걸고 잉아(날실을 한 가닥씩 교차해서 틈을 만드는 도구)를 발로 당겨서 작동시킨다. 그 사이로 씨실을 매단 북을 통과시키며 베를 짠다. 베틀에서 내린 비단의 풀기를 뺀다. 다듬이질해서 구김살을 펴고 반듯하게 만든다.

한 개의 고치에서 나오는 실의 길이는 1300~150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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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 마감 오후 5시30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추석 연휴

관람요금: 200~1천원

문의전화: 02-744-0025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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