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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관리사 손은자씨.
집안 형편 어려워 중학교 입학 못하고
결혼해 아이 둘 낳고 키우며 지내다가
남편 오토바이 사고로 생업도 도맡아
98년 남편 사망 뒤 다시 검정고시 도전
피부관리 일하며 ‘얼굴경영학과’ 입학 노인 1천 명 턱 사진 모아서 ‘졸업논문’
손님 인상 보고 ‘건강검진’ 조언해주면 고객이 감사 인사…“공부는 내 나침반” “남편이 떠나고 검정고시 공부를 한 과목씩 했어요. 그래서 둘째랑 같은 해인 2008년 대학에 입학했어요.” 피부관리사인 손은자(62)씨는 그렇게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에 들어가 노인 1천 명의 얼굴을 분석해서 관련 논문을 썼다. 어린 시절 손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모님께 닷새를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공장에 취업하고 학업을 이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비닐하우스 학교에 다니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교복값이 없어 입학을 못했다. 손씨는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채로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1992년 손씨의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다. 당시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27개월이었다. 의사는 환자가 뇌를 다쳐 회복하기 어렵다며 손씨에게 남편을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손씨는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손씨는 남편을 간병했다. 병원비는 전세보증금을 빼서 준비했다. 손씨는 남편의 팔다리 운동을 꾸준히 시켰고, 손씨의 보살핌 덕에 남편은 하루하루 좋아졌다. 입원 5개월 만에 남편이 한 발짝 걸음을 뗐다. “큰 것을 바라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살면 또 살아지더라고요. 게으르지만 않으면 돼요.”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이웃 등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의사들이 ‘아줌마는 웃고 다니니 보기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웃고 살아도 한평생이고 울고 살아도 한평생이잖아요.”
피부관리 일하며 ‘얼굴경영학과’ 입학 노인 1천 명 턱 사진 모아서 ‘졸업논문’
손님 인상 보고 ‘건강검진’ 조언해주면 고객이 감사 인사…“공부는 내 나침반” “남편이 떠나고 검정고시 공부를 한 과목씩 했어요. 그래서 둘째랑 같은 해인 2008년 대학에 입학했어요.” 피부관리사인 손은자(62)씨는 그렇게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에 들어가 노인 1천 명의 얼굴을 분석해서 관련 논문을 썼다. 어린 시절 손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모님께 닷새를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공장에 취업하고 학업을 이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비닐하우스 학교에 다니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교복값이 없어 입학을 못했다. 손씨는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채로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1992년 손씨의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다. 당시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27개월이었다. 의사는 환자가 뇌를 다쳐 회복하기 어렵다며 손씨에게 남편을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손씨는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손씨는 남편을 간병했다. 병원비는 전세보증금을 빼서 준비했다. 손씨는 남편의 팔다리 운동을 꾸준히 시켰고, 손씨의 보살핌 덕에 남편은 하루하루 좋아졌다. 입원 5개월 만에 남편이 한 발짝 걸음을 뗐다. “큰 것을 바라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살면 또 살아지더라고요. 게으르지만 않으면 돼요.”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이웃 등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의사들이 ‘아줌마는 웃고 다니니 보기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웃고 살아도 한평생이고 울고 살아도 한평생이잖아요.”
피부관리실 벽면에 붙어 있는 손은자씨가 딴 자격증들.
1994년 남편이 퇴원했는데 당장 살 집이 없었고 통장엔 10만원뿐이었다. 마침 들어둔 보험에서 장애위로금이 나왔다. 그 돈으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6만원짜리 방을 구해 온 가족이 들어갔다. 손씨는 돈을 벌어야 해서 낮에는 남편을 근처 선교원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선교원에 가본 남편은 그곳에 가길 거부했다.
결국 네 살이던 둘째가 남편을 돌봤다.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가 도리어 아빠를 돌봤던 상황을 설명하는 손씨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때 제가 사람들에게 많이 했던 말이 ‘명 긴 사람이면 살고 명 짧은 사람은 죽을 거야’였어요.” 손씨의 남편은 조금씩 좋아져서 간단한 집안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손씨는 남편이 이 정도로 회복된 것도 기뻤다. 하지만 1998년 남편이 감기로 입원하더니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손씨는 평생 한이었던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2000년 손씨는 잠을 자려 누우면 숨이 막혔다. 응급실에 가서 영양제를 맞고 영양제가 다 들어가면 주삿바늘을 직접 빼고 일하러 갔다. 그런 날이 스무 날 계속됐다. 지금 생각하니 공황장애였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지내는데 고1인 첫째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첫째가 학교를 결석하고 있다고 했다. 첫째는 친구 없이 입학한 학교에 적응을 못했고 왕따까지 당하고 있었다. 전학하려고 알아보니, 온 가족이 해당 지역으로 이사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첫째를 위해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다.
손은자씨가 딴 원광디지털대 학위증.
손씨는 피부관리사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2004년 그간 모은 돈과 보험 약관 대출을 받은 돈으로 피부관리실을 개업했다. 틈틈이 검정고시 공부를 했던 손씨는 2008년에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학기에 원광디지털대 한방학과에 입학하려 했는데 자리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얼굴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음 해 전과하라고 권했다.
손씨는 일단 얼굴경영학과로 입학해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수업을 한 번 들어선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손씨는 매 강의를 다섯 번씩 듣기로 마음먹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쪽잠을 자며 공부 시간을 확보했다. 얼굴경영학과 전공 수업을 듣다보니 손씨의 피부관리실 운영에도 도움이 됐다.
이렇게 2년을 공부하니 어느 정도 공부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그는 한방미용예술학을 복수 전공으로 신청했다. 4학년이 되어 논문을 써야 해서 노년의 행복지수와 턱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잡았다. 논문을 쓰려니 사례로 분석할 노인 1천 명의 턱 사진이 필요했다. 노인 사진을 찍기 위해서 노인이 있는 곳이면 종교시설이든 상점이든 어디든 찾아다녔다. 하지만 1천 명의 턱 사진을 찍는 것은 예상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졸업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학교를 한 학기 더 등록해야 했다. 이런 노력과 지도교수인 주선희 교수의 도움으로 손씨는 ‘턱과 노년 행복지수의 상관관계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손은자씨가 쓴 졸업논문.
손씨의 피부관리실 벽면엔 그가 그동안 시간과 돈을 들여 딴 자격증이 붙어 있다. 경략요법사와 스포츠 트레이너 지도사, 스포츠 테이핑 등 8개의 자격증이 보인다. 지금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책장에는 관련 분야 책들과 영어책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손씨는 손님을 맞을 때 피부 상태와 얼굴 인상, 체형 등 전반적인 손님의 상태를 살핀다. 그러다보면 손님의 건강이 어떤지 대략 보인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이고 인상과 건강도 하나예요. 사람의 신체는 모든 것이 연결됐기 때문이에요.” 손씨가 건강검진을 권해서 병을 빨리 찾은 손님도 여럿이다. 그리고 손씨는 손님에게 ‘맞춤형 건강관리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건강해진 분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 손씨는 무엇보다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
피부관리실의 책장.
손씨의 피부관리실에 오는 고객 대부분은 단골손님이다. 그래서 홍보를 위한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손님 중에는 대기업 임원도 있고 오래전에 피부관리를 받았던 손님이 다시 연락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이민 가는 손님이 친한 친구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새롭게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손씨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여기까지 온 동력도 공부였고요.” 공부는 손씨에게 언제나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던 거 같다.
과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손씨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손씨는 어려움이 닥칠 때 절망하기보다 비를 맞으면서도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손씨의 낙천성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그의 삶을 이끌어온 가장 큰 힘이라 생각된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손은자씨를 응원한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