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모나미 컨셉스토어 DDP점
“진짜 예쁘네!” 10대 소녀부터 중년의 남성까지 한목소리를 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먼저 찍는 이들도 보였다. 지난 토요일. ‘모나미 컨셉스토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점 풍경이었다.
2016년 문을 연 공간은 문구업체 ‘모나미’가 만든 필기구 전시장 겸 체험장이다. 부슬비를 헤치고 온 10여 명의 손님이 진열된 필기구를 하나하나 써보고, 직접 만들어보고 있었다. 제임스 워드는 문구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과 발명을 근거로 ‘도구적 존재’로서의 인간사를 그의 책 <문구의 모험>에 풀어내었다. 더 나은 필기구를 향한 끝없는 열정이 인류를 키웠다는 것이다. 서울에도 문구여행자들이 제법 늘어난 추세다.
펜을 만들고 간직하는 사람들
홍대 앞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각각 문을 연 ‘모나미 컨셉스토어’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나만의 볼펜’을 직접 조립하는 디아이와이(DIY) 코너다. 12가지 색깔의 볼펜심과 톡톡 튀는 14가지 색상의 볼펜대(바디), 볼펜머리(헤드), 똑딱이(노크), 스프링을 조합해 볼펜을 만드는 방식인데, 나오는 수는 최대 3만여 종이나 된다.
디디피 지점에서 만난 이현영(43)씨는 초등학생인 두 자녀와 디아이와이 코너만 두 번째 왔다고 했다. “아이들이 장난감처럼 볼펜을 만들고, 자기가 만든 펜으로 그림 그리고 글자 쓰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학창 시절 모나미를 썼던 세대여서 이런 공간이 추억처럼 반갑고 신선했어요.”
한 자루에 500원. 저렴한 편이다. 직접 만들어봤다. 간단한 방식인데 30여 분이 훌쩍 지났다. 색을 조합하는 재미와 완성 후 ‘딸칵’하고 작동되는 방식에 묘하게 중독됐다. 현재 컨셉스토어에서 ‘153 DIY 볼펜’은 하루 평균 500자루 이상 팔린다고 한다.
한 자루에 500원. 저렴한 편이다. 직접 만들어봤다. 간단한 방식인데 30여 분이 훌쩍 지났다. 색을 조합하는 재미와 완성 후 ‘딸칵’하고 작동되는 방식에 묘하게 중독됐다. 현재 컨셉스토어에서 ‘153 DIY 볼펜’은 하루 평균 500자루 이상 팔린다고 한다.
모나미 컨셉스토어 홍대점
모나미에서 내놓은 1만~2만원대 고급 볼펜들도 골고루 인기 있었다. 지난해 8월 선보인 ‘153 네오빈티지’(1만원), 올해 2월 나온 ‘153 ID 지오메트릭’(1만8000원) 등의 고급 라인은 필기감 만족도가 높았다. 일찍이 2015년 한정판으로 제작했던 ‘모나미 153 리미티드’는 출시한 날 1만여 개의 제품이 품절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고유 디자인은 그대로, 몸체를 금속으로 복각하고 품질을 끌어올려 정가를 2만원으로 정했는데, 출시 3년 차인 현재 7만~10만원대 가격으로 중고시장에서 거래된다.
모나미 컨셉스토어 홍대점을 찾은 임선교(26)씨는 자기가 쓸 것을 포함해 선물용으로 ‘153 플라워 5종 세트’(3000원)를 3세트 샀다. 지난해 11월부터 에스엔에스(SNS)에서 입소문을 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던 볼펜이다. 임씨는 “디자인을 하며 컴퓨터를 많이 쓰고 신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큰 편이지만, 평소에는 노트에 손으로 필기하고 드로잉하는 것을 좋아해 다양한 펜을 수집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균형을 잡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을지로 ‘만년필 연구소’에서 박종진 소장이 의뢰받은 만년필 펜촉을 수리하고 있다.
수리비는 잉크 한 병 값, ‘만년필 연구소’
같은 날 오후, 을지로의 ‘만년필 연구소’도 문을 열었다. 올해 11년 차 된 만년필 연구소는 3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온라인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의 거처이자, 비정기적으로 문을 여는 만년필 수리소다.
을지로 골목을 굽이굽이 걸어 수상한 건물로 들어선 뒤, 좁은 복도를 탐험하는 긴 여정이지만, 문을 여는 날이면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도 꽤 많을 정도로 붐빈다. 건물 바깥까지 줄이 이어진 날도 있다. 부품이 사라지거나 낡아서 못쓰게 된 만년필부터 30~40년대 빈티지 만년필, 수백만원대의 고급 만년필들까지 이곳을 거치면 멀쩡히 살아나는 덕이다.
수리비는 잉크 한두 병 값이면 족하다. 닙(펜촉) 교정 등 간단한 수리는 무료다. 새 부품이 필요하면 부품비만 받는다. 만년필 연구소의 박종진 소장은 회원들의 신뢰를 받는 ‘펜후드’의 회장이자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펜쇼’의 운영위원장이다. “우리는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만년필이라고 생각해요. 꼭 필요한 부분만 남았을 때, 인간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만년필은 불필요함을 제거해나간 역사나 마찬가지거든요.”
만년필 연구소가 개방하는 날이면 만년필만 위해 역사, 전쟁사, 고전철학까지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직하게 만년필을 얘기한다. 회원들은 “펜 얘기로 1박2일 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올해만 약 120명의 신입 회원이 동호회 문을 두드렸다.
펜의 진화, 나를 알아주는 ‘펜’을 찾아서
만년필 연구소의 박 소장은 펜촉에 나만의 길이 드는 것을 ‘꽃이 피었다’고 표현했다. “처음 쥐었어도 내 손에 편하게 안기는 펜도 있어요. 내 손이 펜을 쥐고 글자를 쓰는 게 아니라 펜이 내 손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인데, 굉장히 특별하죠.” 그러한 전설 속의 펜 한 자루를 인생에서 한 번 만나는 것이 회원들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특정한 인물에게 펜을 헌정하는 일은 빈번했다. 해마다 문학가들에게 펜을 선사하는 몽블랑사의 ‘라이터스 에디션’이 예다. 작가만의 집필 특성을 펜에 섬세히 반영하고, 친필 서명을 새겨 넣는 방식이다. ‘나만의 펜’을 갖고 싶은 이들은 이처럼 펜에 ‘각인’을 한다. 핫트랙스 광화문 지점에서 새로 볼펜을 산 40대 남성은 “이름을 새겨서 귀하게 오래 쓰고 싶다”며 각인 신청을 했다. 각인 대기자가 60명이 넘었다.
독일 라미(LAMY)사의 신제품 ‘룩스 만년필’을 산 임유리 씨 역시 각인 서비스를 신청했다. “오래 고민해서 골랐는데, 이름을 넣으면 더 ‘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라미사의 관계자는 “2030 젊은 세대가 많이 찾아와 시필을 요청한다. 두세 번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펜’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종이와 직접 만나는 볼펜과 만년필, 연필 외에 전문가들을 위한 캘리그라피용 붓펜, 수술실에 오르는 피부 마커용 펜, 주방용 펜, 네일아트용 펜까지 범위가 넓다. 2D 한계를 벗어난 3D 펜은 3차원의 입체 공간을 허공에 그릴 수 있게 해준다. 플라스틱과 비슷한 소재(PLA, ABS 등)가 펜 안에서 열로 녹아 잉크처럼 나오는데, 원하는 모양을 그리면 그대로 굳어 형태가 된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3D 펜으로 드론까지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오로지 문방 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이 호사를 부리면 부릴수록 고아하다.’ 옛사람들의 한결같은 예찬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지 모른다. 새학기를 앞둔 주말, ‘나만의 펜’을 찾아 서울을 여행해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더 다양한 필기구들이 ‘나만의 주인’을 기다린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울& 인기기사
-
1.
-
2.
-
3.
-
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