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하게 되는 곳, ‘시간박물관’

서울의 작은 박물관 ㊳ 노원구 공릉동 타임뮤지엄

등록 : 2024-02-29 16:10

크게 작게

100~200년 전 유럽의 시계들.

미국·영국 등 세계에서 모은 시계 보면

1분1초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해시계·물시계 등 시계 발전 모습 보면

“가족과 함께할 남은 시간 더욱 소중해”

타임뮤지엄은 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 왔다가 감동을 받고 나왔다는 한 관람객의 관람 후기는 지난 30여년간 전시품을 모아온 최승운 관장이 박물관을 연 뜻과도 같다.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알게 해주는 전시품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곳에 있었던 시간 자체가 아름다웠다.

노원구 공릉동 타임뮤지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감동의 통로, 타임뮤지엄


‘1분1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꼬옥’ 안아주고 한 번 더 안아주는 시간 가질 겁니다.’ ‘소중한 시간 가족과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자. 흘러가버린 시간에 후회하지 말고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길.’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들른 타임뮤지엄, 시계를 감상하다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나에 대해, 사랑하는 당신에 대해, 우리에 대해 생각하다 맘이 찡해졌어.’

타임뮤지엄을 관람하고 난 사람들이 남긴 글이다. 쪽지에 적힌 글에 감동이 가득하다. 감동, ‘느끼어 움직이다’. 박물관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그것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타임뮤지엄 최승운 관장이 박물관을 연 뜻도 이와 같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자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꼬옥’ 안아주고 싶은 마음, 전시된 시계를 보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그 시간 속에서 나와 당신과 우리에 대해 아는 것. 시간은 곧 나와 당신, 우리를 엮어주는 씨줄 날줄이며 그렇게 엮어가는 관계에 무엇을 담고 남겨야 옳은가에 대한 마음까지 생각이 확장되는 것, 이것이 살아 있는 박물관이고 최 관장이 박물관을 연 뜻이다.

래리 프랜슨의 매달려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

최 관장은 처음부터 외국의 아름답고 신기한 시계에 매료됐다. 처음 한 개 두 개 사 모을 때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신기해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정도 모으다 보니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깃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오감으로 느껴졌고, 그 느낌은 감동으로 깊어졌다. 박물관을 만들어 그 마음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 마음은 작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유효했다. 수학자이자 미국국립시계협회 특별회원인 래리 프랜슨의 ‘매달려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을 구할 때였다. 커다란 자전거 모양의 시계라서 흔히 ‘자전가 시계’라고도 불리는 작품이었다.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고, 전자우편도 수차례 보냈으나 그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미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함께 그를 찾아가 직접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몇 차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고, 래리 프랜슨은 마음을 열게 됐다. 그는 그 작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집에 혹은 마을 박람회에 전시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최 관장의 마음도 자신과 같다는 걸 알고 그는 마음을 열었다.

최 관장은 그렇게 미국의 38개 주를 직접 자동차를 몰고 작품들을 찾아다녔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든 브랫 작가의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록.

물음표를 던지는 시계들

현대 작가의 시계를 모아놓은 전시실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 동작조형물 작가인 고든 브랫의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록’(Grandfather Sevenman Clock)은 1990년 세계 시계 명장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7개의 동작인형을 통해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표현했다. 관점에 따라 시계의 톱니바퀴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을 표현한 ‘우울한 시계’로 보이기도 하고 시간을 생산적, 역동적으로 만들어간다는 ‘활기찬 시계’로 보이기도 한다.

재활용품을 활용한 시계 예술작품으로 유명한 로저 우드, 이른바 ‘자전거 시계’의 작가 래리 프랜슨. 모든 부품을 나무로 직접 만든 수공예작품 ‘그랜드 우드 기어 클록’(Grand Wood Gear Clock)을 제작한 게리 존슨은 목공예가로서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약 1년이 걸린다고 한다. 30년 동안 33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목공예가 제프 펑크하우저의 ‘메가 볼 클록’(Mega Ball Clock)은 타임뮤지엄 전시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된 작품이다. 속도와 무게의 정교함과 공의 다양한 위치 변화에 의해 시각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유수와 같다는 의미를 담은 제임스 보든의 수공예 시계 작품도 눈에 띈다.

시간에 대한 철학이 담긴 현대 작가들의 시계 작품에 매료된 최 관장은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시계를 찾아 요즘도 작가들을 찾는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과 시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줄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제임스 보든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며 시간은 유수 같다라는 의미가 담긴 작품.

시계의 진화, 시간의 역사

타임뮤지엄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보여주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전시관을 기차 6량으로 만들었다. 흐르는 시간과 여행의 의미를 담기에 기차만한 게 없을 것이다.

우주와 지구가 생기고 인간이 등장한 뒤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 생활을 위해 시간을 알 필요가 생기면서 시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로 전시는 시작된다. 시간 측정을 위해 사람들은 일정하게 움직이는 걸 찾았고, 그게 해였다. 6천여 년 전 이집트에서 해시계가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해시계 파편이 발견됐고, 전시관에서 그 모조품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 해시계 모형과 유럽의 정원용 해시계도 있다. 해가 없는 시간을 위해 물시계를 만들었다. 해시계 이후 물시계가 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2600여 년이라고 한다. 물질이 타는 속도를 이용한 연소시계도 있다. 전시된 양초시계, 오일시계는 서양의 것들이고, 향시계는 동양에서 사용한 것이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바람의 화원>이라는 사극에 향시계가 등장하기도 했다.

향시계.

자연의 힘이 아닌 동력을 이용한 시계의 처음은 분동시계였다. 추를 이용해 동력을 얻어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시계다. 진자운동의 원리를 발견하고 시계에 접목한 게 진자시계다. 진자와 추를 결합해 만든 게 괘종시계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진자시계 모형을 보고 발걸음이 멈춘 곳은 크로노미터라는 항해용 시계였다. 옛 소련 해군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이 사용했던 크로노미터가 전시됐다. 시계의 혁명이라는 평을 받는 수정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계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소형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등장한 세슘원자분수시계는 시간의 오차를 100만 년에 1초 이하의 범위로 좁혔다고 한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는 유럽의 100~200년 전 시계를 볼 수 있다. 시계와 예술의 조화, 아름다운 시계를 바라보는 시간도 아름답게 흘러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대리석 시계. 1880년대 작품이다.

19세기에 대리석과 금장 처리방식으로 만든 시계, 1880년대에 검은 대리석에 금장을 입힌 프랑스 시계, 1860년대 프랑스의 도자기에 그림으로 장식한 금장시계, 1880년대 사자가 끄는 마차를 탄 사람을 형상화한 청동 합금 시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1880년대 대리석 시계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 현대 작가의 시계 작품을 보고 기차의 마지막 칸에 도착하니 30년 뒤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생사진관, ‘당신의 시간을 계산해드리겠다’는 시간계산기가 관람객을 배웅한다. ‘당신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