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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칭저우시의 운문주업유한공사 주창 안에 있는 운문춘예술관. 이곳 술의 역사 자료, 생산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향 기준 12가지로 구분되는 바이주 중
장향형, 향 짙고 여운 남는 마오타이형
원래 중국 북쪽에는 없었던 술이지만
저우언라이가 1970년대 북‘ 방 이동’ 추진
당송 8대가 구양수가 술맛 자랑한 곳 칭저우서 1974년 장향형 바이주 개발
운문주업, ‘마오타이 주창’ 10차례 연수 마오타이, ‘중국 북방 최고 장향술’ 평가 기억하는 독자가 계실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초 이 지면에 중국 바이주(白酒·중국 소주) 기행을 연재했다. 주로 허난성 일대의 유서 깊은 주창(양조회사)을 방문해 그곳에서 생산되는 바이주의 맛과 유래, 술에 얽힌 그 지방의 역사, 문화, 인물 등을 소개했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이번 바이주 답사는 산둥(山東)성 편이다. 산둥반도와 한반도는 바다 건너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만큼 가까운 곳이다. 문명이 생긴 이래 두 지역은 황해를 내해삼아 하나의 문명권을 이뤄왔다. 산둥반도는 동이족 문화의 발상지이자,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번영했던 제나라의 땅이다. 현재는 중국 행정구역상으로 남한의 1.5배 크기에 1억 명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수많은 지역마다 제각각의 바이주가 있지만, 짧은 일정상 성도 지난시 동쪽 지방으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웨이팡(濰坊)시와 바다에 면한 칭다오(靑島)시의 주창을 선정해 답사했다.
당송 8대가 구양수가 술맛 자랑한 곳 칭저우서 1974년 장향형 바이주 개발
운문주업, ‘마오타이 주창’ 10차례 연수 마오타이, ‘중국 북방 최고 장향술’ 평가 기억하는 독자가 계실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초 이 지면에 중국 바이주(白酒·중국 소주) 기행을 연재했다. 주로 허난성 일대의 유서 깊은 주창(양조회사)을 방문해 그곳에서 생산되는 바이주의 맛과 유래, 술에 얽힌 그 지방의 역사, 문화, 인물 등을 소개했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이번 바이주 답사는 산둥(山東)성 편이다. 산둥반도와 한반도는 바다 건너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만큼 가까운 곳이다. 문명이 생긴 이래 두 지역은 황해를 내해삼아 하나의 문명권을 이뤄왔다. 산둥반도는 동이족 문화의 발상지이자,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번영했던 제나라의 땅이다. 현재는 중국 행정구역상으로 남한의 1.5배 크기에 1억 명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수많은 지역마다 제각각의 바이주가 있지만, 짧은 일정상 성도 지난시 동쪽 지방으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웨이팡(濰坊)시와 바다에 면한 칭다오(靑島)시의 주창을 선정해 답사했다.
운문춘예술관 안 기념물. 글씨 ‘제노제일장’(齊魯第一醬)은 제나라와 노나라 땅(현재의 산둥 지역) 최고의 술이란 의미이다. 장향 바이주의 원조 귀저우마오타이 쪽에서 선사한 찬사이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웨이팡시 소속 현급시 칭저우(靑州)의 운문주업유한공사(운문주업 주창)이다. “북방의 마오타이”를 자임하며 1970년대 이래 장향(醬香)형 바이주를 생산하는 주창이다.
청두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30분쯤 서쪽 내륙으로 달리면 칭저우에 도착한다. 산둥성의 거의 중앙부이다. 칭저우는 고대 중국 강역을 뜻하는 ‘구주’(九州)의 하나이니 도시의 역사를 짐작할 만하다. 청색은 동방을 상징하는 색이니, 칭저우는 9주 중 가장 동쪽 땅이란 뜻이다. 지금은 작은 소도시이지만 칭저우는 고대부터 청나라 때까지 이 지방의 군사·행정 요충지로 기능했다. <삼국지>의 조조가 동지를 모으고 황건적을 토벌해 몸을 일으킨 곳이다. 이곳 향토사가들은 조조의 유명한 시 ‘단가행’이 적벽대전 때가 아니라 이때 쓰인 것으로 본다. 지금도 남아 있는 칭저우 고성(古城)이 그 옛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술을 들고 노래하자. 인생이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로 시작되는 단가행 첫머리의 ‘술’이 바로 칭저우 술이라는 논리다.
운문장주 등 운문주창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종류의 바이주들.
칭저우 사람들은 이곳 술을 대개 운문춘(雲門春)이라고 부른다. 운문은 이 지역 대표 명산인 운문산에서 취한 이름이다.
조조가 마신 운문춘은 지금의 바이주 같은 소주가 아니라 발효술이었다. 산둥 지방 바이주는 대략 원명(元明)시대를 출발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청나라 강희제 때 “칭저우의 청향(淸香) 바이주가 좋다”는 기록으로 보아, 운문춘은 청향 계통이었던 것 같다. 맑고 강렬한 남성적인 맛의 청향은 산시와 허베이 등주로 북방 계통 바이주의 특징으로 본다.
그런데 와서 보니 운문주업 주창은 장향(醬香)형 바이주인 ‘운문장주’를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회사 소개에도 ‘북파장주 자원운문’(北派醬酒 自源雲門: 북방의 장향형 술은 운문에서 비롯한다)이라고 하여 자신들이 중국 북방 지역 장향 바이주의 종주임을 자부하고 있다. 장향은 간장 장(醬) 자를 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마치 간장을 졸인듯한 특유의 향이 짙고 긴 여운을 남기는 술로, 중국 서남쪽 구이저우(貴州)성의 마오타이(茅台)가 원조 격이다. 추운 북쪽 지방에 장향형 명주가 있다는 소리는 여기 와서 처음 들었다.
운문주창 양조장 내부 전경.
바이주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으나, 향으로는 대략 12가지로 구분한다. 마오타이의 장향을 기준으로 향이 좀 더 농밀한 것을 농향(濃香), 맑고 청량한 청향, 쌀로 빚어 단맛이 도는 미향(米香) 등 4종이 주종이고, 여기서 지마(芝麻·참깨)향 등 8가지 향형이 파생한다. 누룩의 종류, 고량과 쌀 등 원료와 첨가물, 증류와 저장 방식의 차이에서 주종의 특징이 발생한다. 종류가 많아도 바이주의 70% 이상은 가장 대중적인 농향형이다. 산둥성 술도 대체로 농향과 북방의 청향이 주류를 이룬다.
칭저우의 운문춘이 청향 바이주에서 장향으로 대표 얼굴을 바꾼 데는 마오타이를 좋아한 한 혁명가의 ‘애민 정신’(정확히는 자신을 포함한 일부 상층부만 마시는 게 미안해서일 것이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타이를 특히 사랑한 당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주은래)는 “좋은 술을 전 인민이 맛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마오타이의 북방 이동에 나선다. 이 사업 결과, 1974년 칭저우에서 처음 장향형 바이주 개발에 성공해 “북쪽에는 장향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운문주업은 1980년을 시작으로 근래까지 총 10차례나 구이저우 마오타이 주창을 찾아가 현지 연수를 받으며 꾸준히 기술력을 키웠다. 2003년에는 바이주 저장에 적합한 환경의 자연 계곡에 3개의 동굴을 파 술을 저장하는 동장(洞藏)시설도 갖추었다. 이런 국가적인 지원과 노력 끝에 2016년 ‘원조’ 마오타이 쪽으로부터 “중국 북방 최고의 장향 술”이란 뜻의 ‘제노제일장’(齊魯第一醬)이란 휘호를 받으며 북방 종주의 자리에 ‘등극’한다.
중국 혁명가 저우언라이(1898~1976). 운문주창의 주종을 청향형에서 장향형 바이주로 바꾸게 한 인물이다.
운문주업은 자사 술의 특징을 “4고(高) 2장(長) 1대(大)”로 요약한다. 4고는 고온 제곡, 고온 퇴적, 고온 발효, 고온 증류, 2장은 1년 이상 발효, 3년 이상 저장, 1대는 사용 누룩 최대다.
양조 원료 곡물로 장향 계열에는 고량과 소맥, 농향 계열에는 고량, 소맥, 대미, 옥미, 수미 등 5가지를 쓴다. 누룩은 산둥 평야에서 나는 양질의 월동밀로 단오절에 누룩을 띄워 중양절에 묶는다. 이 시기가 고온 미생물 생장 활성에 적합하다고 한다. 섭씨 63도 이상에서 완성된 누룩은 황금색을 띤다. 이렇게 만든 누룩을 다시 6개월 이상 저장한 뒤 당화 발효제로 사용한다고 한다.
칭저우 사람들이 술 자랑을 할 때 빼놓지 않는 시인으로는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1007~1072)와 중국 문학 사상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평가되는 이청조(1084~1155 무렵)가 있다. 청주 태수를 지낸 구양수는 취옹이라는 호를 쓸 만큼 술을 사랑했고, 칭저우에서 20년을 산 이청조 역시 술을 좋아해 시편 곳곳에 칭저우의 술을 묘사하고 있다. 구양수는 칭저우 고성에 기념관이 있고, 이청조는 자신이 살던 집 자리에 기념관과 사당이 있다.
운문주창 안에 서 있는 중국 혁명가 천이(진의, 1901~1972) 동상. 1948년 군사령관으로 칭저우에 주둔하면서 운문주창을 창설했다.(왼쪽) 운문주창 안에 세워진 송나라 때 시인 이청조 동상.
이곳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양수 시는 칭저우가 등장하는 칠언절구다. 문답형식의 시인데, 앞의 두 구에서 묻는다.
“취옹은 이르는 곳마다 취해 계십니다. 도대체 칭저우에선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醉翁到處不曾醒,問向青州作麽生) 뒤의 두 구는 답이다.
“공은 퇴근하시면 관사에 머물며 늘 좋은 술을 칭찬하시고, 술에서 깨면 베개에 기대어 산을 바라보신답니다”(公退留賓夸酒美, 睡余依枕看山横)
칭저우 사람들은 시에 등장하는 좋은 술과 아름다운 산이 운문춘과 운문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시는 구양수 시로 소개되지만 후대 시인 양만리(1127~1206)가 구양수를 추모하며 쓴 것이다.
이청조는 당쟁에 밀려 수도 카이펑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23살 때 남편 조명성의 고향인 칭저우로 내려와 40대 초까지 살았다. 인생 후반에 온갖 풍상을 겪다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하직한 그녀의 생애에서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 그녀도 시인답게 술을 좋아해 “술잔이 깊다고 탓하지 마라. 호박같은 술 너무 짙어서 취하기도 전에 혼이 빠진다”(莫許杯深琥珀濃 未成沈醉意先融)와 같은 구절을 남기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짧은 시 안에 웅혼한 필치로 영웅의 기개를 노래한 것이 있어 그녀의 문명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칭저우의 대표 명소인 칭저우 고성.
“살아서는 세상의 호걸이 되고/ 죽어서는 또 귀신의 영웅이 되어야지/ 이제 항우를 생각하는 것은/ 강동으로 건너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生當作人傑/ 死亦爲鬼雄/ 至今思項羽/ 不肯過江東)
금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도망가 굴욕적인 정권을 유지한 남송의 조정을 항우의 최후에 빗대어 신랄하게 풍자한 명작이다.
중국에는 좋은 술을 가리키는 말로 ‘청주종사’(靑州從事)라는 말이 있다. 좋은 술은 마시면 단번에 배꼽까지 내려간다는 뜻이다. 칭저우는 제군(齊郡)을 포함하고 있는데, 고을 이름 제와 배꼽을 뜻하는 제(臍)가 발음이 같은데서 착안한 비유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유의경(403~444)이 쓴 <세설신어>에 나온다. 이로부터 ‘청주종사’는 칭저우 사람들의 것이 됐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풍광이 수려하고 물이 좋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에 운문산(雲門山)이 있다. 청도 술맛이 궁금하다.
글·사진 이인우 저술·번역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