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로 출발, ‘새 시민단체 모델’ 가능성 제시

청년, 사회 앞에 서다 ③ 기후변화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 김민 대표

등록 : 2024-03-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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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는 스스로를 커뮤니티라고 규정하지만 청년들의 자발성에 기초해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시민단체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민 대표가 지난 8일 성동구에 위치한 빅웨이브 사무실에서 빅웨이브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기후위기 피해자’ 청년이 주체 되도록

개인의 필요성·자발성 높이는 데 최선

기후위기 프리즘으로 사회 ‘치열 관찰’

‘시민 없는 시민운동’ 속 새바람 기대도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는 스스로를 시민단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일 성동구에 위치한 커뮤니티 오피스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만난 김민(32) 빅웨이브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가 말한 ‘커뮤니티’와 ‘시민단체’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빅웨이브는 ‘개개인의 작은 물결(웨이브)들이 모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큰 파도(빅웨이브)를 만들자’는 활동 목표를 가지고 있다. 빅웨이브는 지난해 3월 졸속으로 진행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립 등에 대한 공청회’장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에 참여하는 등 연대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단체의 커뮤니티성을 강조한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빅웨이브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나’들이 모여서 서로를 토닥이고 북돋워주면서 조직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빅웨이브는 2016년 1월 초 청년 5명의 모임에서 출발했다. 2015년 12월12일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이었다. 현장에 참가한 청년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청년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다. 초기 멤버들은 이를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개개인이 가진 문제의식을 키워갔다.

당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4학년이던 김민 대표도 그즈음 모임에 합류했다.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는 곧 빅웨이브 활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만이 아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1) 등의 활동이 널리 소개되면서 회원도 크게 늘어 한때 500여 명까지 늘어났다. 김 대표는 이렇게 회원이 늘어나는 것도 청년들의 현재 처지와 관련해서 설명한다.

“지금은 소수 정치 고관여층이나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결정하는 것에 따라서 청년이 살아갈 미래가 결정되는 상황이잖아요. 청년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청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암울한 것 같아요.”

빅웨이브가 커뮤니티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조직은 커졌지만 ‘고민하는 청년들이라는 동질성’이 출발점으로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상황과 준비 정도 등에 따라 참여 정도가 다를 수 있기는 하다. 빅웨이브는 이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회원 제도도 청년들의 준비 정도를 고려해 다원화하고 있다.

김민 대표가 자신의 자리에서 ‘탈석탄 운동 방향 모색 전략 워크숍’ 자료를 읽고 있다.

회원 제도와 관련해서 현재 빅웨이브 누리집(bigwave4cc.org)에 올라와 있는 ‘2024 상반기 정기 멤버모집’ 팝업을 살펴보자. 청년들이 빅웨이브 멤버가 되는 방식은 ‘네트워크 멤버’와 ‘활동 멤버’ 두 가지가 있다. ‘네트워크 멤버’는 “온라인 채팅방을 중심으로 기후 관련 정보와 소식을 공유하면서 때때로 활동에 참여하는 멤버”다. 반면 ‘활동 멤버’는 “오프라인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거나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싶은 멤버”다. 네트워크 멤버는 회비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활동 멤버는 ‘6개월에 3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김 대표는 ‘네트워크 멤버’와 ‘활동 멤버’의 구분이 “자신의 결 수준에 따라 빅웨이브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회원이 늘고 활동도 확대되면서 빅웨이브는 2022년 단체를 사단법인화했고, 김민 대표 등 두 사람이 상근을 시작했다. 현재는 상근자가 모두 5명이다. 현재 회원은 400여 명으로 이 중 100명가량이 활동 멤버다. 김 대표는 “이렇게 조직이 커졌지만 빅웨이브는 여전히 커뮤니티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필요성과 자발성이 빅웨이브를 유지하는 기본 동력”이며 이에 따라 “상근자들의 주 임무는 회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빅웨이브는 20~30대에 초점을 맞춰서 청년이 조금 더 주체성을 갖고 본인 스스로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단체입니다. 그러다보니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동기부여를 계속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좀더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환경단체가 ‘환경보전’ 등의 큰 담론을 중심으로 하향식으로 구성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렇다면 빅웨이브는 정말 시민단체가 아닌 것일까? 이를 위해 우선 김민 대표가 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전에는 몰랐는데 (빅웨이브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경제적인 보수의 크기를 떠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이 하는 일이 정말 똑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요. 뛰어난 역량을 가진 활동가들이 정말 뜻있는 일에 몰두하는 그 모습 자체가 멋있는 것 같아요.”

노트북을 켜고 자료를 살피는 김민 대표. 노트북 겉면에 빅웨이브 로고 등 다양한 환경단체들의 로고가 붙어 있다.

그런데 빅웨이브 활동이 풍성해지면서 김 대표에게서도 점점 이런 ‘시민단체 활동가적 면모’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김민 대표를 비롯한 빅웨이브 상근활동가들도 기후위기라는 프리즘을 통해 사회를 치열하게 관찰하고 있다.

“사실 기후위기가 사회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 19명이 이른바 ‘청소년 기후소송’을 제기한 이후 지금까지 기후소송 헌법소원 6건이 제기돼 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환경·사회·투명경영(ESG)도 재난이 심해지고 홍수가 나면 우리 자산 가치가 하락 위기에 있는 거 아니냐는 투자자의 우려에서 출발한 거잖아요. 노동 측면에서도 앞으로 야외에서 노동하는 분들의 경우 폭염이 심해지면 노동조건이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또 석탄 발전이 전국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인데, 그렇다면 거기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지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후위기만큼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끼치는 주제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라는 프리즘으로 사회를 치열하게 관찰하는’ 빅웨이브 또한 매우 폭넓은 자신만의 시각을 형성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가 자신이 경험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일로 ‘사람의 변화’를 꼽은 점도 ‘시민단체 활동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김 대표는 “빅웨이브 활동을 통해서 함께하는 회원분들이 삶에 영감을 받고 진로나 삶의 방향을 바꿔나가는 걸 볼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빅웨이브에서 활동하다 환경교육 관련 사회적기업을 창업한 회원이나 마케터로 활동하다 빅웨이브와 인연이 된 뒤 활동가로 변신한 선이은씨의 사례 등을 꼽았다.

빅웨이브는 커뮤니티일까, 시민단체일까를 따지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빅웨이브는 이렇게 커뮤니티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민단체의 모습에 접근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에 대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회원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빅웨이브와 김민 대표의 실험’이 어쩌면 새로운 시민단체의 씨앗이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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