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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민쓰 주창의 가사협과 <제민요술> 기념상. 6세기 사람으로 서우광 출신 관리였던 가사협은 당시 중국 전래의 양조기법 등을 기록한 중국 최초의 종합농서 <제민요술>을 저술했다. 서우광시 치민쓰 주창은 “만민을 고르게”라는 가사협의 편찬 정신을 본받아 술 이름을 지었다.
고대 술 고장 맥 이은 도시의 ‘신’ 바이주
중국 최초 농학서 ‘제민요술’서 이름 따와
90년대 개혁개방 흐름 타고 만들어진 술
원주 등 9종 시음 바이주 체험 인상적
‘중소 주창 할거’ 지명도 낮은 점 보완 위해 ‘산둥제일주창’ 징즈주업에 흡수 합병
징즈주업의 경양춘, ‘무송타호’ 상표 유명 웨이팡 부호 개인 정원 ‘십홀원’ 들러볼 만 칭저우 운문주창 방문을 마치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고장은 웨이팡시 서북쪽 도시 서우광(壽光)이다. 태산 동쪽 줄기 이산(沂山)에서 발원한 물맛 좋은 강인 미허(彌河)가 칭저우를 지나 발해로 흘러드는 강 하류의 고을이다. 이 일대는 북신, 대문구, 용산문화 등 고대 중국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선사시대부터 양조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1979년 대문구 유적 조사 때는 발굴 유물의 45% 이상이 술과 관련 있는 기물이었다고 한다. 또 이 일대에는 후진(侯鎭)이란 군사요충지가 있었는데, 웨이팡시 남쪽 안추(安丘)시의 징즈전(景芝鎭)과 더불어 예로부터 산둥 지방에서 술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현재 서우광 지역의 대표적인 바이주는 치민쓰주업유한공사(치민쓰 주창)가 생산하는 치민쓰주(齊民思酒·제민사주)이다.
‘중소 주창 할거’ 지명도 낮은 점 보완 위해 ‘산둥제일주창’ 징즈주업에 흡수 합병
징즈주업의 경양춘, ‘무송타호’ 상표 유명 웨이팡 부호 개인 정원 ‘십홀원’ 들러볼 만 칭저우 운문주창 방문을 마치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고장은 웨이팡시 서북쪽 도시 서우광(壽光)이다. 태산 동쪽 줄기 이산(沂山)에서 발원한 물맛 좋은 강인 미허(彌河)가 칭저우를 지나 발해로 흘러드는 강 하류의 고을이다. 이 일대는 북신, 대문구, 용산문화 등 고대 중국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선사시대부터 양조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1979년 대문구 유적 조사 때는 발굴 유물의 45% 이상이 술과 관련 있는 기물이었다고 한다. 또 이 일대에는 후진(侯鎭)이란 군사요충지가 있었는데, 웨이팡시 남쪽 안추(安丘)시의 징즈전(景芝鎭)과 더불어 예로부터 산둥 지방에서 술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현재 서우광 지역의 대표적인 바이주는 치민쓰주업유한공사(치민쓰 주창)가 생산하는 치민쓰주(齊民思酒·제민사주)이다.
62도 농향형 치민쓰주. 치민쓰 주창의 대표적인 술이다. 상표에 징즈(景芝)가 들어간 것은 치민쓰 주창이 최근 산둥성 최대 주창인 징즈주업에 합병돼 ‘한 지붕 두 회사’가 됐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은 산둥성 정부의 ‘지역 주창 대형화’ 전략의 일환이다.
본래는 웨이팡시 남쪽 안추시의 징즈(景芝)주업유한공사(징즈 주창)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뜻밖에 징즈주업의 자회사 격인 치민쓰 주창으로 방문지가 변경됐다. 징즈 주창은 우리나라 바이주 팬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술인 경양춘(景陽春)을 생산하는 곳이다. 산둥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고 규모도 큰 주창이라 직접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현지인도 맛보기 어렵다는 지방 주창의 특색 있는 명주를 경험하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회사 사정’이었다.
칭저우에서 버스로 약 50분 걸려 도착한 치민쓰 주창은 그런 바이주 답사단의 기대를 십분 충족시켜줬다. 술맛은 나중에 안 것이고, 먼저는 독특한 주창 이름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치민쓰(齊民思·제민사)는 말 그대로 “만백성을 고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에 많은 바이주가 있지만 이런 고상한 정치이상(?)을 내건 술은 별로 보지 못했다.
남교장소과(南校場燒鍋) 유적. 안추시 징즈전에 있는 근세 양조장 건물로, 약 400㎡ 면적에 72개의 술 저장고가 있다고 한다. 산둥성 문화유적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술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주창 안쪽에 고대 서적을 배경으로 세워진 대형 인물 조각상이 곧바로 풀어줬다. 주인공 가사협(賈思勰)은 6세기 때 이곳 서우광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그가 저술한 <제민요술>은 중국 최초의 농업전문서이다. 이 책은 당시의 농업지식과 함께 각종 양조 기술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고대 중국 전통술의 제조역사를 오늘에 전하고 있다. 1992년 주창이 새롭게 민영화할 때 “만백성을 고르게”라는 <제민요술>의 편찬 정신에 따라 술 이름을 짓게 됐다고 한다.
서우광은 예부터 주로 농향형 바이주를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개혁개방 흐름에 따라지마(참깨)향, 청향, 장향 등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 1945년 서우광에 진주한 중국인민군의 군영 주창에 기원을 둔 현재의 치민쓰 주창은 2000년 무렵부터 현재 같은 주창 체제를 갖췄고, 2010년 30년 이상 원주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완비했다. 2017년 산둥성 정부의 주창 대형화 전략에 따라 산둥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징즈 주창에 흡수합병됐다.
치민쓰 주창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답사단을 위해 회사 쪽이 마련해준 시음회였다. 치민쓰 술 박물관과 저장고 관람을 마친 일행은 저장고에 딸린 시음장에서 주창이 저장하고 있는 주요 제품의 원주와 완제품을 고루 맛볼 기회를 가졌다.
치민쓰 주창 저장고의 술 항아리들.
알코올 도수는 53도에서 최고 72도까지, 양조 연도는 1980년부터 2022년까지, 향형으로는 농향, 지마향, 장향 등 세 종류였다. 각 향형별, 도수별로 독자적인 개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2022년 양조한 72도짜리 지마향 원주는 고도수 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저장 기간으로는 44년 된 1980년산 66도 농향형을 시음해본 것도 특별한 체험이었다. 향형과 도수의 조합에 따라 저장 기간에 따라 향미와 품질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세밀한 차이까지 구별해낼 능력은 없으나 각각의 특색이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나름 체감할 수 있었다. 시음잔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욕심내다간 한 방에 훅 취할 수도 있겠다 싶어, 병아리 오줌만큼씩 따라 혀와 코를 사용해 맛과 향을 찾아보려 했다.
일행의 많은 분이 주창에서 특별염가로 파는 술을 사기도 했는데, 22년짜리 68도 농향형과 20년산 62도 지마형, 그리고 12년짜리 53도 장향형이 인기가 높았다.
산둥 사람들도 대개 동의하는 말이라는데, 품질과는 별개로 지명도 면에서는 전국적인 술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산둥에는 전체 17개 시에 140여 개의 바이주 브랜드가 “군웅할거”하고 있다. 중국 전체를 통틀어도 한 성에 이처럼 많은 브랜드가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곳은 산둥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생산량이나 물류 등의 규모 면에서 전국적 경쟁력을 가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이것은 개인적 견해지만, 현대 바이주의 명성이 대부분 1948년 중국 공산화 이후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산둥 등 동북부 지역이 공산당 내에서 비교적 비주류였다는 점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치민쓰 주창 시음회. 완제품의 기본이 되는 원주를 중국 주창에서는 기주(基酒)라고 하는데 시음장에서는 62도에서 최고 72도까지 5종의 기주를 맛볼 수 있었다.
아무튼 2017년 산둥성 정부가 징즈 주창과 치민쓰 주창을 합병시킨 것은 생산과 유통 규모를 대형화해 전국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바로 이웃 지방인 장쑤성이 대표 주창인 양하대곡(洋河大曲)에 경쟁사를 합병시켜 중국 최대 규모급의 대형 주창으로 몸집을 키운 것도 자극됐을 것이다.
이런 흐름을 생각할 때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징즈 주창의 명주를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징즈전은 징즈 주창이 있는 안추시의 옛 지명이다. 이곳은 원나라 이래 중국 고량소주(옛 바이주) 발원지의 하나이다. “십 리 길에 살구꽃(술을 상징한다)이 비처럼 흩날리고, 주막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十里杏花雨, 一路酒旗風)는 소리를 들었다. 중국 공산화 이후 70여 개 민간 양조장을 ‘국영화’해 징즈 주창을 만들었다고 한다.
징즈 주창의 대표 바이주는 경양춘이다. 과거 우리나라 중국집에서도 볼 수 있던 호랑이 상표 ‘빼갈’이 바로 이 바이주이다. 소설 <수호지>에서 주인공 무송이 18잔의 경양춘을 마시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무송타호’(武松打虎) 이야기를 가져와 브랜드 이미지로 삼은 것이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웨이팡시에 있는 개인 정원 십홀원(十笏園). 청대 말에 이 지역 부호가 지은 것으로 중국 북방지역 정원을 구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원이다. 2천㎡ 공간에 20여 개의 건물이 미로처럼 배치돼 있다.
징즈 주창의 술로는 경양춘 말고도 지마향의 일품(一品)징즈, 청향의 징즈바이간(白干)이 유명하다. 징즈 바이주는 청나라 때는 청향, 신중국 건설 뒤인 1950년대에는 지마향이 대표 주종이었으나, 1970년대 정부의 바이주북방 이동 정책에 따라 쓰촨(四川)성 이빈의 유명한 우량예(五粮液) 주창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해 5곡 원료의 농향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홍콩에 수출돼 동남아 시장에서 유명해진 경양춘이 산둥을 대표하는 농향형 바이주이다.
치민쓰 주창이 마련한 점심 자리에서 산둥 요리에 신제품 고급 장형 바이주인 치민장(醬)을 맛보는 호사까지 누린 뒤 돌아오는 길에 중국 북방의 대표적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십홀원(十笏園)을 돌아봤다. 웨이팡에 들렀다면 빼놓지 말고 감상해보길 권한다. 정원도 예쁘지만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정판교(1693~1765)를 비롯한 유명 화가, 서예가의 명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청나라 말기에 이 지방 부호가 개인 정원으로 재건축했다고 하는데, 손에 쥐는 홀(명판의 일종) 10개 정도의 크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약 2천㎡ 공간에 20여채의 개성적인 건축물이 밀도 있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보니, 외려 겸손하게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집주인의 인품이 보인다. 주인이 일하던 사무실과 가문의 사당에는 의미 있는 글귀도 많이 걸려 있었다. “근검은 황금의 근본(勤儉黃金本), 시서는 품격의 뿌리(詩書丹桂根)” “대의를 위해 돈 쓰는 것을 아까워 말라”(不惜金錢倡大義) 등은 숱한 동란 와중에도 이 집이 건재했던 이유를 짐작게 한다.
글·사진 이인우 저술·번역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