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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시민단체 활동가인 인권재단 사람의 김경희 활동가가 지난 4월1일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인권센터‘스테이션 사람’에서 개관을 축하하는 시민들의 응원 사진과 문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3월 개관한 ‘스테이션 사람’은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실과 함께 활동가를 비롯한 인권옹호자들이 함께 인권을 배우고 교류하는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보며 시민단체로
법·제도 개선 활동 때 ‘성장’ 경험했지만
인권 중요성 깨닫고 인권단체로 옮겨
플랫폼 영향력 강화에 위기감 느끼며
‘접촉과 연대 강화 중요성’ 다시 깨달아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
10년차 시민단체 활동가인 김경희(33)씨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이다. 김경희 활동가는 2015년 4월 참여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2021년 4월부터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1일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인권센터 ‘스테이션 사람’에서 만난 김 활동가는 “10년 가까운 시민사회 활동을 거치면서 인권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더 넓어지고 상상력은 더욱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김 활동가는 “대학 졸업 무렵인 2012년 정신병원으로 실습을 나간 것이 인권에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정신병원 입원환자라는 생각에서 선택한 실습이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는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환자가 원한다 해도 퇴원이 안 됐고, 퇴원해도 지역사회 정착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자꾸 재입원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법적 제도화를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즈음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도 그의 이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김 활동가는 이듬해인 2015년 참여연대에서 활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7년간의 시간은 ‘성장과 보람’을 함께 경험한 기간이었다. 김 활동가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를 거쳐 미디어홍보팀과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사회복지위원회에서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활동 등에 함께했다.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가족의 소득이 자격기준이 되어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부양의무제는 일부 개선됐지만, 인권시민단체들은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경희 활동가에게 그 기간은 한편으로는 “‘시민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존재들’이 자꾸 눈에 밟힌 기간”이기도 했다.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여론을 만들어야 해요. 법은 어쨌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 등의 얘기를 들어야 하죠. 또 입법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사실 함께할 수 있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한 김 활동가는 “대학 졸업 무렵인 2012년 정신병원으로 실습을 나간 것이 인권에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정신병원 입원환자라는 생각에서 선택한 실습이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는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환자가 원한다 해도 퇴원이 안 됐고, 퇴원해도 지역사회 정착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자꾸 재입원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법적 제도화를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즈음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도 그의 이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김 활동가는 이듬해인 2015년 참여연대에서 활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7년간의 시간은 ‘성장과 보람’을 함께 경험한 기간이었다. 김 활동가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를 거쳐 미디어홍보팀과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사회복지위원회에서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활동 등에 함께했다.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가족의 소득이 자격기준이 되어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부양의무제는 일부 개선됐지만, 인권시민단체들은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경희 활동가에게 그 기간은 한편으로는 “‘시민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존재들’이 자꾸 눈에 밟힌 기간”이기도 했다.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여론을 만들어야 해요. 법은 어쨌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 등의 얘기를 들어야 하죠. 또 입법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사실 함께할 수 있어요.”
인권재단 사람의 소식지를 들고 있는 김경희 활동가.
김 활동가는 유아교육법 등 여러 법률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의 역할을 충분히 잘했지만, 그걸로 채워지지 못하는 어떤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가령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국회 내에서 법 제정 등으로 반영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정말 ‘사람이 사람으로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활동가는 이런 문제의식이 2022년 자신을 ‘인권재단 사람’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2004년 출범한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 활동가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누구나 인권을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단체”라는 비전을 가지고 활동한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아직 제대로 관심을 주지 못하는 인권 관련 영역에서 “먼저 나서서 싸우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단체의 핵심 사명이다.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처는 ‘다정한 기부팀’ ‘용감한 사업팀’ ‘든든한 운영팀’으로 구성돼 있다. 다정한 기부팀은 다양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후원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용감한 사업팀은 지원이 필요한 단체에 대한 지원사업과 함께 새싹 인권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인큐베이팅 사업도 진행한다. 든든한 운영팀은 재단 운영 업무를 맡고 있다. 김 활동가는 지난해 말까지 다정한 기부팀에서 활동하다 올해부터는 용감한 사업팀에서 교육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가끔 ‘인권재단 사람의 경우 기획안을 잘 써도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어요. 그건 저희가 ‘성과가 나오는 활동’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활동’을 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가령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 ‘이주민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 등이 긴급한 사업을 꾸릴 때가 있어요. 지금 당장 어떤 현안이 발생해 대응하는 경우인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업이다보니 예산 등에서 문제가 될 때가 있잖아요.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그런 사업들을 지원해요.”
김 활동가는 올해 시작한 인큐베이팅 사업도 ‘성과가 아닌 필요에 의한 지원’이라는 인권재단 사람의 정신이 배어 있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지금 인큐베이팅을 진행하는 곳 중 ‘한국농인LGBT플러스(+)’가 있어요. 농인이면서 성소수자인 이 단체 회원들은 농인 사회에도 소속되기 어렵고 성소수자 사회에서도 교류하기가 어려운 ‘이중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이런 단체들이 내부 체계와 홍보 역량을 갖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 활동가도 2년 가까운 모금팀 경험을 토대로 모금활동을 어떻게 할지 자문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활동가가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인권 관련 소식 등을 점검하고 있다.
김경희 활동가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모금활동을 하면서 희망과 불안을 함께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연대의 마음으로 기부하는 분들이 조금 더 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희망적인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과 관련한 모금도 네이버나 다음 등 플랫폼의 영향을 점점 더 강하게 받는 듯한 현실에서는 불안감을 느낀다.
“일반 사람들은 모금 캠페인에 대한 정보 자체를 플랫폼에서 얻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 언젠가는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서는 모금 자체도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 경향이 늘어날 것 같아서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이런 현상을 무섭게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들’을 제약하는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희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 활동가를 지원하는 모금 메시지를 플랫폼에 내려 했는데, 거부됐어요.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또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은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위한 모금’은 안 된다고 해요.”
김 활동가는 이런 ‘무서움’을 줄이고 ‘희망’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들’과의 접촉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활동가가 홈리스 당사자 중심 운동을 강조하는 ‘홈리스 행동’의 회원이 되고, 이 단체에서 진행하는 ‘인권지킴이’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인권지킴이 활동은 매주 한 번씩 서울역 인근을 돌아다니며 홈리스 당사자분들을 만나 그분들이 직접 어떤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주거 지원 등도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활동이에요. 자신이 홈리스인 분들이 인권지킴이 활동에 참여해 다른 홈리스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움을 해소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강렬한 감동을 느껴요.”
인권지킴이 활동은 그가 인권재단 사람으로 자리를 옮기고 시작했으니 벌써 만 2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 활동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주거권 밴드’를 만들어 투쟁 현장을 방문하거나 단체들의 행사에 참여해 공연하는 등 연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질문에도 김 활동가는 “그냥 가까운 미래에 다양한 인권 현장을 더 많이 경험하고 연대하는 것을 일단 1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답했다.
재단 활동이라는 ‘씨줄’과 함께 활발한 그의 연대 활동이 ‘날줄’이 되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한 그의 상상력이 앞으로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