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모인 ‘다양한 세계’, 다문화의 가치를 외치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㊶ 은평구 불광동 다문화박물관

등록 : 2024-05-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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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m 길이의 이탈리아 베네치아 곤돌라. 곤돌라가 길어서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다.

1층부터 5층까지 가득한 각국 전시품

서양부터 동양까지 ‘삶의 흔적들’ 밝혀

요르단 경찰 제복과 네덜란드 신발 등

세계로 날아가고픈 꿈을 한껏 키워줘

지구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호기심은 관심으로 이어졌고, 마음 가는 대로 다른 나라를 알아갔다. 학창시절 부교재인 사회과부도로 배우는 게 다였지만 그것도 재미있었다.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도 엄격히 금지됐던 시절이었다. 다문화박물관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지구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마음으로 다문화박물관 1층부터 5층 전시관까지 놀며 배우며 돌아봤다.

은평구 불광동 다문화박물관

11m 길이의 곤돌라를 통째로 전시관에 넣는 하나의 방법


언어는 얼을 담는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에는 그 나라의 고유문화가 담겨 있다. 말에서 문화를 배우고 문화를 알면 말이 품은 더 깊고 풍부한 그 나라를 느낄 수 있다. 시작은 호기심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다문화’는 ‘세계문화’다. 나라와 민족이 다르듯 문화도 다 다르다.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 모든 나라의 문화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선입관과 편견 없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보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다문화박물관 김윤태 관장이 박물관을 연 이유다. 그가 박물관을 열기 전부터 마음 쓰고 있던 게 문화 교류다. 다문화박물관은 그가 품은 여러 뜻 중 하나다.

박물관 건물 1층부터 5층까지 전시품이 가득하다. 전시하지 못한 소장품도 많다. 80%는 직접 수집했고, 20%는 기증받은 것이란다. 처음에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봇짐 하듯 모았다. 문화 교류의 일선에 다문화박물관을 두고 있다는 그의 뜻이 알려지며 뜻을 나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이 그를 도왔다. 10여년 전 15개 나라를 알리는 유튜브 15편을 제작하기도 했다. 각 나라 대사관에 한글 현판을 만들어주는 행사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 3층에 전시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명물인 곤돌라를 국내로 들여와 전시관에 안치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현지에서 곤돌라를 사서 국내로 들여오는 데 9개월이 걸렸다. 길이 약 11m인 곤돌라를 통째로 박물관 3층 전시관에 들여놓는 게 문제였다. 궁리 끝에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창문을 통해 넣기로 했다. 작업은 시작됐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 보는 곤돌라도 신기했지만 크레인으로 곤돌라를 들어 올려 창문으로 들여놓는 과정은 그야말로 구경거리였다. 이른바 ‘하늘을 나는 곤돌라’였다. 김 관장의 휴대전화에는 당시 그 장면이 저장돼 있다. 박물관 3층 전시실에 가면 ‘하늘을 나는 곤돌라’를 볼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경찰 제복.

다른 나라의 의식주를 보고 듣고 즐기다

박물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5층 기획전시관부터 돌아봤다. ‘세계 경찰 제복 전시’다. 왕립 오만 경찰은 오만 술탄국의 주요 법률 및 명령 기관으로 오만의 긴 해안선을 지키는 임무도 수행한단다. 나이지리아 경찰대는 1820년 처음 창설됐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경찰 깃발의 파란색은 사랑·충성심·단결, 노란색은 규율과 지략, 녹색은 에너지와 삶을 뜻한다는 안내 문구를 읽었다. 제복은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네킹이 입고 있는 여러 나라의 경찰 제복 가운데 요르단과 오만의 경찰 제복이 가장 눈에 띈다.

1~4층은 상설전시관이다. 4층으로 내려갔다. 아프리카 의상과 탈, 다양한 악기 등으로 아프리카의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아프리카 문화체험관이 있다. 의상관은 브루나이,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헝가리, 멕시코, 불가리아, 아제르바이잔, 체코, 니카라과,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등 수십 개 나라의 의상이 전시된 곳이다. 기후와 풍습, 의례에 따라 만들어진 각 나라의 옷들이 다 다르면서 독특하고 화려하다. 그곳에서 본 옷은 전통과 문화의 날개였다.

몽골의 게르.

몽골에 게르가 있다면 키르기스스탄에는 유르트가 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통 이동식 천막집이 유르트다. 가장 귀중한 가정용품 중 하나인 시르닥 카펫도 보았다. 아크칼팍은 남성용 흰색 전통 모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몽골의 이동형 전통주택인 게르 안에 말 머리 모양의 현악기인 마두금, 몽골 전통모자인 말가이 등이 놓였다. 말가이는 다른 사람과 바꿔 쓰지 않으며 모자를 거꾸로 다루지 않는단다. 게르 옆 전시품 중 실제 말 이빨과 그것으로 만든 조각들이 전시됐다.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볼 수 있는 음식체험관도 있으니 사람 사는 데 중요한 세 가지, 의식주 문화가 4층에 모여 있는 셈이다.

네덜란드 전통 신발인 클롬펜과 풍차 조형물.

베네치아 가면 축제와 곤돌라, 그리고 아랍의 커피 문화

3층 전시관에서 11m 길이의 이탈리아 베네치아 곤돌라를 보았다. 전시관에 설치된 몇 개의 계단을 올라 바닥에 놓인 곤돌라를 내려다본다. 100개가 넘는 섬, 그 섬들을 연결하는 더 많은 다리, 섬과 섬 사이 물길로 곤돌라가 떠다닌다. 그곳이 베네치아다. 전시된 곤돌라는 베네치아 장인이 직접 만들었단다. 직원 말에 따르면 베네치아에서는 자격증을 딴 사람만 곤돌라를 만들 수 있다. 11m 길이의 곤돌라는 흔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베네치아 가면 축제도 유명하다. 1162년 시작됐고 매년 사순절 전까지 10여 일 동안 열린단다. 육지의 적이 베네치아 여자를 납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 베네치아 남자들이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여자로 위장해서 적진에 들어가 여자들을 구해왔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가면을 쓰고 축제를 벌인 게 베네치아 가면 축제의 유래라고 한다. 축제 기간 동안 가면 뒤에 신분과 지위를 다 숨기고 평등하게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3층 한쪽에는 걸프협력회의기구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전시관도 있다. 자세한 안내 문구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의상과 소품들을 볼 수 있다. 2023년에 열린 특별기획전 ‘아라비아반도의 보물’ 팸플릿에 커피(coffee)의 어원이 아랍어라고 적혔다. 아랍사회에서 커피를 대접한다는 것은 손님을 환대한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부터 주인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대접하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 전시실의 얼굴상. 실제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떨어져 나온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천상의 세계와 현실 세상을 잇는 멕시코 강아지를 만나다

2층은 중국, 타이(태국), 이집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진시황 조형물과 병마용갱의 일부를 재현한 것 등을 볼 수 있다. 타이의 작은 배에 열대과일이 가득 담겼다. 이집트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실제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떨어져 나온 돌로 만든 사람 얼굴 조각상이다.

1층에서 처음 만난 건 인도네시아 민화의 주인공 ‘자타유’였다. 악마 라바나에게 납치된 여신 시타를 구하다 부상을 입고 죽기 직전에 사람들에게 여신의 위치를 알려 여신을 구하게 했다는 인도네시아 옛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진돗개 대접을 받는 멕시코의 개를 형상화한 조형물. 천상과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네덜란드 전통 신발인 ‘클롬펜’도 있다. 바다보다 땅이 낮아 진흙땅이 많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옛날에 신었던 나막신이다. 발을 감싸는 구두 모양으로, 들판에서 일할 때 발을 보호하려 노동자들이 신던 신발이기도 했다.

트로이목마 이야기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 다리 사이에 전시된 멕시코의 크고 작은 인형들 가운데 커다란 강아지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진돗개 대접을 받는 멕시코의 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천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멕시코 추수감사절에 천상과 현실의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한단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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