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병’ 다루는 법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지만
죽는 건 아냐’

등록 : 2024-06-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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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화, 질병 그리고 가족의 죽음, 여기에 더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점이라 여겼던 타고난 육체적인 한계까지, 그렇게 병은 우리와 가까이 있다. 그런데 크고 작은 병에 노출될 때 많은 사람은 그것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1931년생의 일본 현역 작가인 소노 아야코는 수필집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지만 죽는 건 아냐>(책읽는고양이 펴냄)에서 그러지 말라고 조언한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겪게 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병은 우리의 삶을 즐겁게도 하고 괴롭게도 하기 때문이다.

소노 아야코는 소설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선천적인 고도근시를 앓던 그는 50대에 이르러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위기를 맞는다. 좋지 않은 눈 상태에 중심성망막염이 더해져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한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경 없이도 또렷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본다.

이렇게 다양한 육체적 약점과 질병, 그리고 치료를 경험한 저자는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자로서 육체의 한계를 다정하게 맞아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더 나아가 단점이라 여겨온 것들을 자신의 특성으로 녹여내는 반전의 시각을 선보인다. 나이 들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육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느긋하게 대면할 수 있는 한 수 위의 지혜를 전한다.

가령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기저기 안 아픈 곳 없지만 그렇다고 죽는 건 아니다’ 부분을 살펴보자. 저자는 80살 가까이 됐을 때 셰그렌증후군(류머티즘 등 관절 등의 결합조직이 변성돼 아교 성분이 늘어나는 병)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이 병은 약도 없고 낫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죽지도 않는다”라고 얘기한다. 저자는 이런 진단을 받고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함을 느낀다. ‘통증과 불편이 따랐지만, 아무튼 죽지 않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선천적인 고도근시도 긍정적으로 보려한다. “그래서 화가는 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시각적인 표현이 아닌 글로 표현하는 작가가 되었다.”

병은 불편하다, 아프다. 그러나 소노 아야코와 같이 병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응할 때 치유의 길로 가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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