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나 자각하며 사는 삶’ 만난 건 행운이에요”

청년, 사회 앞에 서다 ⑦ 평화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김은주·박하영·이기은·이기훈·이우성 청년 활동가

등록 : 2024-07-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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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 각기 다른 20~30대 청년들

평화로운 한반도 이루는 주체로 ‘우뚝’

통일 생각할 기회도 없는 청년세대에

교육·네트워크 통해 애정의 손 내밀어

지난 5일 서대문구에 있는 평화시민단체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젊은 활동가 5명이 사무실에 함께 모였다. 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기훈·박하영·김은주·이우성·이기은 활동가.

“한반도에서 동맹 문제와 핵 문제에 대해 전문적·실천적으로 대응하는 단체는 저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유일하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5일 서대문구에 있는 평화시민단체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의 젊은 활동가 5명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김은주(35), 박하영(31), 이기은(25), 이기훈(26), 이우성(30, 이상 가나다순) 활동가는 길게는 12년에서 짧게는 3년 동안 평통사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최고’였다.

문규현 신부와 고 홍근수 목사(1937~2013)가 1994년 함께 만든 평통사는 ‘평화는 통일을, 통일은 평화를 여는 길’이라는 모토로,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 과도한 국방비 삭감, 평등한 한-미 관계 구축 운동 등을 펼치고 있는 평화시민단체다. 현재는 2026년 미국 뉴욕에서 열 계획인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개최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5명의 청년 활동가가 평통사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모두 다르다. 현재 영상제작과 홍보 등을 맡은 이우성 활동가는 2012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때 ‘강정 지킴이 활동’을 한 뒤 평통사와 인연을 맺었다.


2016년 활동을 시작한 이기훈 활동가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여자축구 4강전에서 남북 팀이 펼친 경기를 비디오로 보고 “가슴이 뛰어” 평통사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주요 현안을 모니터링하고 기자회견이나 집회 준비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에서 10년 동안 살다 2018년에 귀국한 박하영 활동가는 취직 전에 시민사회 활동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2019년 평통사를 찾았다가 현재 6년차 활동가가 됐다. 박 활동가는 평통사에서 국제연대와 디자인을 맡고 있다.

김은주 활동가는 20대에 대학원 공부, 공동육아 강사, 영화 관련 대중 활동 등을 하다가 2020년 30살이 되면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평통사를 찾았다. 현재 소식지 만들기 등 평통사 홍보와 2002년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이·미선이 기념사업을 맡고 있다.

대안학교 출신인 이기은 활동가는 고3 때 경남 합천을 방문해 원폭 피해자분들을 만나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평통사 후원회원이 됐다. 이후 인턴과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대학 4학년 때 “평통사 활동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현재 대학생 동아리 운영과 청년들 교육사업을 주로 맡고 있다.

이들 5명은 각각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이들이 평통사 활동가가 되게 한 공통된 욕구가 하나 눈에 띄었다. 바로 “‘세계 속에 존재하는 한반도, 그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다. 이기은 활동가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를 알고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청년 세대가 될수록 더욱더 줄어드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확대로 인한 경쟁의 격화 탓이 클 것이다.

청년 활동가들은 “평통사를 만난 게 굉장히 행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아마도 어쩌면 평생 갇혀 지냈을지도 모를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청년 활동가들은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평통사에는 창립 초기부터 단체를 지켜온 50~60대 활동가들이 서울과 부산·대전 등지에 10명 더 존재한다. 청년 활동가들은 이들과 함께 거의 한달 간격으로 모여 공부를 한다. 보통 온종일 진행되는 공부를 통해 청년 활동가들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패권국가의 의도 등을 포함해 세계적 차원에서 살펴보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구상하고 동료 활동가와 같이 실천해나갈 힘을 갖춰간다.

그런 그들이 볼 때 ‘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동료 청년세대’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요즘 청년·청소년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회라든가 변화된 사회를 상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이기은 활동가)기 때문이다.

청년 활동가들이 청년 온라인 네트워크 ‘평화똑똑이’의 마스코트인 ‘평또기’를 농구 골대에 올려놓은 뒤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평또기는 박하영 활동가가 직접 디자인했다.

이 활동가는 더 나아가 “요즘 청년들은 통일이라는 주제를 생각조차 안 하고, 이에 따라 통일이 청년들 사이에서 논란조차 안 되는 것 같다”며 “그런 가운데 정부가 주도하는 ‘사실상의 흡수통일’인 통일 담론이 무비판적으로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주입된다”고 진단했다.

청년 활동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는 우리 사회의 능력’조차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평통사 청년 활동가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통일교육과 청년 네트워크를 확대하려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은주 활동가는 특히 중고등학교 대상 통일교육에 애정을 갖고 있다. 김 활동가는 “저희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1년에 20~30번 정도 교육을 나간다”며 “그때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반응을 볼 때 정말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최근 전북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진행한 통일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3학년 친구들이 통일에 대해서 찬반 토론을 사전에 진행했는데, 통일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적 경향성이 강했다고 들었어요. 저희 평통사 청년 활동가들이 왜 평화통일 운동에 나서게 됐는지를 설명했는데, 끝난 뒤에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노력이 하나하나 모여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시간이었다’는 긍정적 피드백이 많았다고 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었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어요.”

박하영 활동가가 ‘평화똑똑이’라는 이름의 청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정성을 쏟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청년들이 소셜미디어에 더 자주 접속하니까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서 인스타그램 계정(@peace.knocknock)도 만들었고, 거기에 라이브 방송이라든가 영상, 웹툰, 카드뉴스 콘텐츠 등 다양하게 올리고 있어요. 이를 통해 평통사의 활동을 좀 더 쉽게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풀어내고 있는 거예요.”

박 활동가는 이 과정에서 ‘평화똑똑이’ 캐릭터인 ‘평또기’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특히 뿌듯해한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청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려는 마음을 다해 만든 ‘평또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활동가는 “평또기는 한반도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분단으로 허리가 아픈 게 특징”이라며 “평또기가 청년들이 평화통일에 관심을 갖는 데 기여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기훈 활동가는 “평통사 회원이 3300명 정도인데, 청년 회원은 240여 명”이라며 “청년회원이 더 늘어날 수 있도록 5명의 활동가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우성 활동가도 청년에게 평화통일을 알려나가는 것이 혼자서는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고 밝혔다. 그는 “내 개인의 어떤 역량과 발전도 중요하지만 조직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 사회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평통사 청년 활동가 5명이 똘똘 뭉쳐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활동가의 생각이 다른 청년 활동가에게도 공유돼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지도 모른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서도 5명의 청년 활동가는 각자 가진 ‘꿈’을 공유했다.

“전세계 청년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 등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싶어요.”(이기은 활동가)

“정말 열심히 활동해서 나이가 많아졌을 때 젊은 활동가에게 ‘이렇게 평화통일 됐어’ 하는 얘기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김은주 활동가)

“늘 ‘나 혼자 잘사는 삶을 살지는 말자’고 다짐하는데, 그 마음으로 활동 하나하나를 쌓아가면서 더 단단한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박하영 활동가)

“하루빨리 우리의 자주평화 활동이 실현돼서 좀 더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어요.”(이기훈 활동가)

“더 많은 사람이 평통사의 활동을 알게 되고 또 회원 가입도 해서, 평통사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이우성 활동가)

5명의 활동가가 서로를 버팀목 삼아 자신들의 꿈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평통사 청년 활동가들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입간판을 들고 서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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