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함께 있기에…“시민활동은 가장 안전한 보험”

⑧권력 감시 참여연대 민선영 배움행동팀장

등록 : 2024-07-26 16:06

크게 작게

1994년 창립된 참여연대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참여’·‘연대’를 한다. 활동 5년차인 민선영 배움행동팀장은 그 다양한 활동이 ‘약자들을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민 팀장이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 새겨진 참여연대 로고 앞에 섰다.

대학생 때 ‘가성비 좋은 강좌’ 찾다 인연

청년참여연대 준비위원장 ‘왕성 활동’

의정감시 활동 통해 사회 보는 눈 넓혀

“‘시대 요구 목소리’ 찾는 활동가 될래요”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한 보험을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7일 종로구 통인동 사무실에서 만난 민선영(29) 참여연대 배움행동팀장에게 시민단체 활동가가 된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조금 뒤 그는 “조금 이기적인가요?”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의 이어진 설명은 전혀 이기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1994년 설립된 참여연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단체다. 오는 9월 창립 30돌이 되는 참여연대는 국가권력 남용과 재벌 횡포를 막는 데 ‘참여’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40여 명의 활동가가 권력감시국, 사회경제국, 시민소통국, 정책기획국, 사무국으로 나뉘어 사회 각 분야에서 ‘참여’·‘연대’ 중이다. 민 팀장은 이런 참여연대를 ‘종합병원’에 비유한다.

“응급실에 ‘사건 하나’가 실려 오면 먼저 진찰한 뒤 처치가 가장 필요한 부분을 찾습니다. 그리고 해당 부서에 넘겨 ‘사건’에 대응합니다.”

이런 종합병원식 활동은 참여연대 창립선언문에 담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이라는 목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는 또 민 팀장이 얘기한 ‘시민단체 활동이 가장 안전한 보험’이라는 말과도 이어진다.

“개개의 사람은 각각 수많은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저도 젊은 청년이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때 개인을 이루는 정체성 중 일부가 약자가 되는 순간이 올 수 있어요. 참여연대의 종합병원식 활동은 이런 취약한 순간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 팀장은 “가령 제 안의 약한 정체성이 위기를 맞았을 때,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정부는 아니라고 본다”며 “모든 시민의 권리를 확대하는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내 삶의 안전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활동이 가장 안전한 보험이 되는’ 이유다.

민 팀장은 대학 1학년 때인 2013년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참여연대에서 진행한 6주짜리 청년연수 프로그램에 등록한 게 계기였다. 민 팀장이 참여연대 프로그램을 신청한 주된 이유는 “가성비 좋은 참가비”였지만, 그 프로그램은 민 팀장의 인생 항로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2006년부터 청년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던 참여연대는 청년들의 활동 참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청년참여연대’ 창립을 준비했다. 이때 청년연수 프로그램을 계기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민 팀장이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민 팀장은 또 2015년 10월 청년참여연대가 출범한 이후에도 경제분과장과 운영위원장을 맡아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2017년을 거치면서 ‘번아웃’이 왔다.

민 팀장이 2층 아름드리홀 벽에 붙어 있는 참여연대 역사 사진 중 2015년 청년참여연대 출범식 사진 앞에서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활동했는데, 알바는 3개씩 해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활동까지 겹치니까 좀 지쳤나봐요. 그래서 2018년에 활동을 그만두고 한 ‘유통 플랫폼기업’에 입사하게 됐어요.”

하지만 민 팀장은 1년 뒤에 다시 참여연대에 돌아왔다. 그는 “유통 플랫폼기업에서 가격 정책을 담당했는데, 시장가격을 계속 무너뜨리는 일을 하게 됐다”며 “‘이게 맞나’ 하는 자괴감이 막 몰려오면서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2019년 참여연대 상근 간사 모집에 응시해 합격했다.

민 팀장이 처음 맡은 일은 의정 감시였다.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를 시민의 눈으로 감시해 제대로 일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민 팀장은 지난 2월까지 4년반 동안 국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안에 대해 논평 쓰기, 기자회견과 토론회 준비하기 등의 일과 함께 국회의원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열려라 국회’(watch.peoplepower21.org) 운영 등의 활동을 해왔다.

일은 양이나 질 모두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민 팀장은 의정 감시 활동을 맡은 것이 “축복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정 감시활동은 업무도 비교적 체계화돼 있고 좋은 선배도 많았어요. 그래서 어렵고 힘든 것도 있었지만, 선배들한테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의정감시센터의 실행위원들로부터 얻은 배움도 적지 않았다. 민 팀장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가 어떤 입장을 가지면 좋은지 등에 대해 대부분 교수인 실행위원들에게 자문을 요청한다”며 “이 과정에서도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큰 배움은 시민들로부터 온다고 민 팀장은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특히 민 팀장의 기억에 남는 것은 2023년 4월1일 참여연대 등이 진행한 숙의토론이었다. 국회의원의 적정한 숫자를 논의한 이날 숙의토론에 참석한 시민 패널 38명은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1차 때 늘려야 한다 21명, 늘리지 말아야 한다 9명, 투표 미참여 8명이었지만, 최종 투표 결과 늘려야 한다 26명, 늘리지 말아야 한다 11명, 투표 미참여 1명으로 변했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난 것이다. 민 팀장은 “행사를 기획하고 눈앞에서 의견을 바꾸는 시민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느낌이 왔다”며 “나는 사람들이랑 직접 이렇게 대면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가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민 팀장이 교육기관인 ‘아카데미느티나무’ 포스터를 가리키며 강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민 팀장은 지난 2월 의정감시센터 활동을 마치고 새로 만들어진 배움행동팀 팀장이 됐다. 배움행동팀은 참여연대 조직 중 독립성이 강한 ‘청년참여연대’와 교육기관인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사무기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민 팀장은 “청년참여연대의 경우 기본적으로 청년이 직접 의제를 선정하고, 이 의제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지, 어떤 직접행동을 할지 등의 회의를 한다”고 말했다.

민 팀장은 또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경우 한 학기에 400명 이상이 강좌를 들으러 온다”며 “참여연대를 몰랐던 사람들도 강좌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회원은 물론 비회원도 자주 대면해야 하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민 팀장은 배움행동팀의 두 부서가 “참여연대에 대해 처음 어떻게 인지시킬 것이냐는 맥락에서 유사점이 있다”는 데 주목한다. 민 팀장은 “지난 6월29~30일 파주에서 진행한 ‘참여연대 회원 100인 숙의토론’에서도 ‘회원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회원 확대를 위해 청년들이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면서 “청년참여연대와 아카데미느티나무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요즘 시민사회활동이 위축됐다는 얘기가 많지만 참여연대 회원이 1만6천여 명으로 창립 이래 최대예요. 참여연대 활동과 다양한 인연을 맺으신 분들도 회원가입 권유를 하면 흔쾌히 응해주시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청년참여연대와 아카데미느티나무 활동도 참여연대와의 첫 만남으로 좋은 연결고리가 되도록 힘쓸 예정입니다.” 민 팀장은 그러나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은 시민단체가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세상일을 더 잘 큐레이션 할 때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많은 시민단체가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정보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사회의 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검찰 개혁, 주거 정책, 연금 제도 등 각종 정책·제도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이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시민들에게 심어줄 때 시민들도 더 큰 신뢰를 시민단체에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활동가로서 민 팀장이 가진 꿈도 이런 비전과 관련돼 있다. 그는 “‘활동가’라는 단어가 직업적 측면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때로는 있다”며 “그러나 계속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30년 동안 해왔던 말을 반복해서 주장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이 시점에서 참여연대가 진짜 내야 할 목소리가 뭔지를 찾아내서 전략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며 얘기할 수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민 팀장이, 그리고 민 팀장과 같은 젊은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새롭게 그려나갈 30년 뒤의 참여연대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감을 갖고 상상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