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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아트박물관. 옛날에 학생이 있는 집은 세계지도 또는 지구본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개인 인생’ 추억과 ‘시대 역사’ 증언하는
옛날 연필·공책·지우개 1천여 점 전시
㈜알파 이동재 회장의 문구 사랑 담고
과거 필기구 보며 현재·미래와도 연결
옛날 연필·공책·지우개 1천여 점 전시
㈜알파 이동재 회장의 문구 사랑 담고
과거 필기구 보며 현재·미래와도 연결
옛날 중고등학생들의 전형적인 가방.
모필장 죽파 권영진 선생 기증품.
중구 문구아트박물관 요즘은 널린 게 학용품이고 장난감이다. 게다가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기록의 도구와 오락기기의 대열에서 큰 몫을 하는 세상이다. 문구의 개념이 과학과 기술의 최첨단 기계까지 확장된 셈이다. 이런 세상에 볼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서울시 중구 문구아트박물관에 가면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이 소중했던 시절, 삐뚤빼뚤 써내려간 어린 시절 꿈을 생각나게 하는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추억은 그 꿈을 현재에 다시 쓰게 했다. 어린 시절 공책에 서걱서걱 연필 자국 새겨지는 소리와 함께.
1894년에 미국에서 출시된 타자기.
1950년대 연필.
몽당연필, 공책, 원고지, 연필깎이, 나를 꿈꾸게 한 것들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문구류, 조선시대 주판과 1800년대 후반 미국 타자기, 1900년대 초중반 기계식 계산기, 외국의 유서 깊은 문구 이야기, 여러 분야 작가들이 사용하던 기증품 등 문구아트박물관에 전시된 1천여 점의 전시품은 오래돼 새롭고, 처음 봐서 신기하고, 어릴 때 추억을 담고 있어 반가운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마음속 추억의 방문을 열어준 열쇠는 오래된 연필과 공책이었다.
나라 전체가 가난하던 시절, 새 학기가 됐다고 누구나 새 학용품을 갖는 건 아니었다. 교회의 여름·겨울성경학교에서 탄 연필 한다스, 공책 한 묶음, 24색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다 담은 문구종합선물세트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새 연필을 처음 깎을 때 나던 향기와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연필심을 감싼 나무를 조심스레 깎는다. 나무의 향기가 코끝으로 퍼지고, 연필심이 드러나면 연필심 부러질까봐 마음 졸이며 다듬었다. 연필심 향기와 깎여 쌓인 나무 향기가 어우러져 무엇인가 쓰고 싶은마음이 일게 했다. 그렇게 공책이 채워졌고, 원고지에 마음속 이야기가 담겼다. 연필과 공책, 원고지는 마음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도구이자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그것들은 그렇게 꿈꾸게 했고 꿈과 함께 커갔다.
연필이 작아지면 볼펜대에 연필을 끼워 썼다. 손때 묻은 몽당연필이 볼펜대와 결합한 모습이 흐뭇했다. 전시된 1950~1980년대 연필, 1960~1980년대 공책, 오래된 지우개는 ‘볼펜대 몽당연필’과 짝꿍이었다. 한반도 모양에 산맥을 표시하고 이름을 적어 놓은 작은 플라스틱 문구와 여러 도형 모양을 쉽게 그릴 수 있는 ‘도형자’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1971년 남대문시장에서 6평으로 시작해서 현재를 일군 알파 주식회사 이동재 회장이문구아트박물관을 만든 이유는 문구를 생각하는 남다른 생각 때문이었다. 기록의 도구, 문구. 어떨 때는 숯이나 시대에 따라서는 문방사우라고 불리는 것들도 문구였다. 문구는 예술 분야에서도 작품을 만드는 도구였다. 문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그 소용과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이 회장의 말은 ‘기록’의 관점에서 봤을 때 문구의 범주는 휴대전화와 컴퓨터까지 확장된다는 말까지 이어졌다. 문구는 유산이다. 개인의 인생을 관통하는 추억과 함께 그 문구를 사용하던 당대의 역사를 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기 때문이다.
1960~1980년대 공책.
조선시대 주판에서 북한의 학용품까지
이동재 회장이 문구아트박물관을 생각한또 다른 이유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도 과거의 문구를 통해 시대를 읽고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이 박물관에서는 빛이 난다. 1980년대 중반까지 남녀 중고등학생 가방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곤봉이 놓였다. 1970년대 말까지 초등학교 운동회 때 빠지지 않았던 게 곤봉 체조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운동장에 줄을 맞춰 곤봉 체조를 했다. 움직임에 따라 곤봉 끝에 달린 리본이 운동장 가득 펄럭였다.
1988년 알파에서 사용하던 삼보 286 컴퓨터도 전시됐다. 16비트, 엠에스(MS) 도스 운영체제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붙었다.1980년대 알루미늄 도시락, 교실 청소용 왁스도 보인다.
교실 청소용 왁스 이전에는 집에서 쓰는 양초를 교실과 복도의 나무 바닥에 칠하고 집에서 만들어온 걸레로 나무 바닥이 초를 다 먹을 때까지 문질렀다. 초등학교 때 얘기다.
1960~1980년대 모나미 볼펜과 사인펜, 샤프펜슬 광고도 모아놓았다.
기원전 3000년께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됐다는 주판의 역사를 소개하는 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주판이 일본에서 개량돼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그 아래 조선시대 주판과 1970~1980년대 주판이 전시됐다.
연도 미상의 북한 우표, 수학학습장, 음악 학습장, ‘인민학교’라고 인쇄된 표지의 학습장, 그림학습장, 크레용, 수채화물감, 자, 필기도구, 교복과 가방, 신발, 모자 등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197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린 ‘못난이 인형’이 놓였다. 발바닥을 모으고 앉아있는 더벅머리 인형 세 개가 한 세트인데, 웃는얼굴, 심술궂은 얼굴, 우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아래 하모니카가 보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하모니카를 배웠다. 그 당시에는 하모니카가 유행이었다. ‘도레미솔 솔라솔미 도레미미 레도레(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노래 ‘오! 수잔나’의 첫 부분이다. 그때 외웠던 계이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옛날 산골 마을 나른한 오후 적막한 마당에 하모니카 소리가 고이곤 했다.
펜화가 김영택 선생이 기증한 잉크스탠드.
외국인도 많이 찾는, 문구가 친구가 되는 놀이터 문구아트박물관
펜화가 김영택 작가가 기증한 깃털 달린 ‘깃털펜’, 펜대와 펜촉, 펜촉 긁개, 잉크스탠드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문다. 잉크스탠드는 책상 위에 놓기 알맞은 크기다. 잉크스탠드에 담긴 잉크에 펜촉을 찍으면 펜촉이 소량의 잉크를 머금게 된다. 펜촉의 잉크는 펜이 가는대로 종이에 스며 글씨가 되고 그림이 됐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손끝으로 전달되는 마찰의 미세한 진동은 연필의 그것과는 또 다른 감흥이 일게 했다. 새벽을 밝히는 탁상 전구 주황 불빛 아래 펜으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달동네 단칸 셋방의 젊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기억 속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다.
모필장 죽파 권영진 선생이 기증한 벼루와 먹, 연적, 족제비 털과 말의 털로 만든 붓, 칡뿌리로 만든 붓, 짚으로 만든 붓도 눈길을 끈다.
1922년에 제작된 16.5㎏의, 이동 가능한 수동윤전등사기도 전시됐다. 1761년 설립된 독일의 파버카스텔 등 서양의 유서 깊은 문구류의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글도 볼 수 있다.
광복 이후 사용하던 등사기도 전시됐다. 등사기 보관함 속에 등사판, 등사원지, 롤러등이 수납돼 있다. 등사원지에 철필로 원하는 문서나 그림을 작업한 뒤 롤러로 잉크를 문지르면 글씨가 배어 나오게 되는 원리라는 안내글을 읽었다. 초등학교 시절 팔에 토시를 하고 등사를 하던 선생님이 기억났다. 선생님은 아마도 시험문제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여러 만화작가가 사용하던 펜과 연필, 손때묻은 몽당연필도 전시됐다. 그 뒤에 전시된 만화 작품들은 전시관 옆 갤러리의 문을 연 것을 축하하는 만화작가들의 축하 인사였다.
관람 후기를 남긴 사람 중에 외국인도 많았다. 인도 여행자는 박물관 동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미국 여행자는 오래된 문구에서 한국적인 특이함을 발견했다. 말레이시아 여행자는 옛 문구를 통해 한국의 과거를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내용을 남겼다.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에 놀러온 엄마는 어머니 집에서 보던 물건들도 있고, 지금도 집에서 쓰고 있는 것도 있어서 삼대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후기를 남겼다. 문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개인의 추억과 시대의 역사를 읽을 수 있으며, 세대가 어우러져 문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놀 수 있는 공간, 문구아트박물관을 연 이동재 회장의 뜻이 관람객이 남긴 후기에 녹아 있었다. <끝>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 설·추석 연휴
관람요금: 없음(단체 관람시 예약 필수)
문의전화: 02-3788-9468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