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배움은 없고 기쁜 배움만 있다

어르신 50명 졸업식 거행 영등포구 늘푸름학교 눈길

등록 : 2025-01-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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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중학 과정 50명 졸업의 기쁨
자치구 최초 학력인정 성인 문해교육
삶을 변화시키는 디지털 교육도 인기
등하교 도운 가족 명예학생상 수여

영등포구 늘푸름학교 중등과정 수업 모습(왼쪽). 2024학년도 최고령 졸업생인 93살 김옥순 어르신(오른쪽).영등포구 제공

영등포구가 운영 중인 ‘영등포 늘푸름학교’ 는 배움의 열망을 품은 성인들에게 학창 시절의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교장을 맡은 이 학교는 22일 졸업생과 가족, 재학생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2024학년도 졸업식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초등과정 27명과 중학과정 23명 등 모두 50명의 졸업생과 가족들이 기쁨을 나눴다.

늘푸름학교는 성인 문해교육기관으로는 서울시 자치구 중 최초로 2015년 초등과정과 2018년 중학과정이 교육청으로부터 학력인정 운영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이에 초등·중학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정규 학교 졸업과 동일한 학력을 인정받는다. 지난해 2월 신설된 고졸 검정고시반에서는 6개월 만에 2명이 시험에 도전해 2명 모두 합격하는 결실을 보았다. 지금까지 늘푸름학교 졸업생 중 13명이 대학교까지 진학하는 성과도 냈다.

영등포구가 늘푸름학교를 설립한 데는 배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열망이 컸다. 특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문해교육은 부족한 과거 학력을 채우는 것을 넘어 현재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구의 판단이다. 이곳에서 공부를 시작한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을 되찾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늘푸름학교에는 2024년 기준 초등과정 69명, 중학과정 69명 등 138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들의 배움을 돕기 위해 17명의 교사와 매니저가 함께하고 있다. 초등과정은 전 과목 통합교과서로 진행되며 중학과정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다채로운 과목을 학습한다. 여기에 소풍, 수학여행, 합창제 등 다양한 체험 활동도 포함돼 있어 어르신들에게 학창 시절의 추억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에는 국립과천과학관 소풍과 안성 남사당패 공연 관람, 충남 공주의 도자기 체험 등 특별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한 어르신은 천체관측소에서 영상을 감상한 후 “나는 꿈을 이뤘네. 앉아서 오로라를 보는 꿈같은 일이 내 인생에도 있을 줄이야” 라는 시를 적어 배움의 감동을 전했다.


늘푸름학교는 교실 안 학습에 그치지 않고 어르신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실용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예를 들어 간단한 금융 업무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는 시간을 마련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히 배움의 연장선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림동에 자리잡은 서울시 디지털동행플라자를 방문해 키오스크 사용법, 인공지능(AI) 바둑, 로봇 커피머신 체험 등을 통해 일상 속 디지털 기기를 친숙하게 익히고 있다.

이런 디지털 교육은 특히 어르신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평소 스마트폰이나 현금자동인출기(ATM)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실습을 통해 사용법을 손쉽게 익히게 됐다. 한 어르신은 “이제는 은행에 가는 일이 두렵지 않다. 기계 앞에서도 당당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학생들의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동시에 배움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북돋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늘푸름학교 학생들의 노력은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에서는 한 학생이 교육부 장관상을 받으며 학습의 열매를 맺었다. 그의 작품 ‘내 공부는 내꺼 니 공부는 니꺼’는 자신의 삶을 위한 배움의 소중함을 담아냈다. “나를 위한 공부에 비로소 가슴에 온기가 돌고 세상이 보인다”라는 문구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어르신들의 이러한 성취는 가족과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녀와 손주들에게 배움의 본보기가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이들의 노력이 젊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영감을 준다. 늘푸름학교의 졸업생 중 일부는 문해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데 힘쓰고 있다.

중학과정 최고령으로 이날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발표하기도 한 93살 김옥순 어르신은 “2년 동안 싫은 내색 없이 등하교를 도와준 며느리 김정주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졸업 이후에도 동 주민센터에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좋아하는 영어 공부도 계속해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목표를 실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초등과정 졸업생인 86살 음옥순 어르신은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했지만 학교에 다니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딸인 최선아씨의 도움을 받았다. 딸 최씨는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워서 비가 오면 휠체어에 비닐을 씌워서 오가고 눈이 오면 두꺼운 옷으로 어머니를 꽁꽁 싸매고 매일 등하교시켰다”고 말했다. 소풍을 포함해 학교의 모든 일정을 빠짐없이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딸에게 감동한 학교는 딸 최선아씨의 노력을 치하하기 위해 ‘명예학생상’을 만들어 졸업식에서 수여했다. 명예학생상은 최고령 김옥순 어르신의 등하교를 도운 며느리 김정주씨에게도 함께 수여됐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늘푸름학교의 어르신들이 공부하고 노래하며 새로운 꿈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는다”며 “배움의 끝없는 여정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나가시는 여러분을 앞으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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