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늘 위기였지만 그래도 뜨는 ‘장르 책방’

김작가가 강추하는 동네 전문책방 3곳

등록 : 2017-06-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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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노트
서점은 늘 위기였으며 한국인은 언제나 책을 읽지 않았다. 검색창에 ‘서점’과 ‘위기’를 친 뒤 나오는 뉴스를 검색하면 1990년부터 항상 그랬다.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동네 서점은 더욱 그렇다. 대형 서점 때문에 위기였고,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인해 위기였으며, 도서 할인제 때문에 위기였다.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어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대형 중고 서점 체인으로 인해 또 숨이 막혔다. 디지털 시대와 함께 동네 상권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업종이 레코드 가게와 책방이었으니 지금쯤 동네 서점이란 뭐랄까,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나 등장해야 할 공간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서점은 사라진 적이 없다. 서울의 옛 동네들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새롭게 탈바꿈하듯, 서점도 그렇다. 2000년대 후반부터, 천편일률적인 서점의 개념에서 벗어나 확고한 정체성을 띤 서점들이 생겨났다. 디지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인쇄물로 내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인쇄물을 소장하려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용서나 학습서 등 전통의 베스트셀러는 아예 팔지 않는 그런 서점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이제 동네 서점은 일종의 큐레이션 공간이 됐다. 주인의 취향이 확고하게 드러나거나, 특정 장르만 다루는 식으로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온 지 일주일만 지나도 대형 서점의 판매대에서 사라지는 알찬 책들이 색깔 있는 동네 서점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재평가된다. 물성을 추구하고, 과정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번화가와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책방들이 문을 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보편화되면서 ‘인증’이 생활의 일부가 된 지금은 더 그렇다. 작은 유행이라 해도 좋다. 또렷한 색깔을 가졌기에 동네 주민뿐 아니라 멀리서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책방들이 있다.

라이너 노트 내부
음악 전문

연남동 ‘라이너 노트’

출판 산업도 힘들고 음악 산업도 힘들다. 음악과 출판이 만나면? 제곱으로 힘들다. 음악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내 처지에서 단언컨대, 음악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걸, 아니 그 언저리에라도 머무는 걸 평생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출판사에서도 안 내려고 하는 게 음악 서적이다.


라이너 노트는 그런 고난의 길을 스스로 걷겠다 나선 책방이다. 지난해 5월, 공연 기획사인 페이지터너가 연남동 주택가에 문을 열었다. “저희가 음악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보니, 책을 통해 음악을 소개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페이지터너 박미리새 이사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라이너 노트’(LINER NOTE)는 음반에 들어 있는 해설지를 뜻한다.

누구나 음반으로 음악을 들었던 시절, 해설지는 입문자들의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이제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스트리밍으로 음반의 시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듣는다. 다만 온라인으로는 양질의 음악 정보를, 특히 한국어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 뿐이다.

그런 점에서 라이너 노트는 과거 해설지가 했던 몫을 하고도 남는 공간이다. 다섯평 남짓한 공간에 음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출판물을 구비해뒀다.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커트 코베인 등 위대한 음악가들의 평전, <재즈 피플> <객석> 등의 음악잡지는 기본이요, 음악가들이 쓰거나 아니면 음악에 영향받아 쓴 에세이들이 있다. <재즈 노트> <모던 팝 스토리> <미국 대중음악> 등 음악사에 관심 있다면 꼭 봐야 할 책들도 물론 있다. 거기에 악보와 화보도 있다. 엄선해서 파는 시디와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볼 수 있는 청음 시설도 갖췄다.

음악 전문가들의 강연이 있고 주말에는 공연도 열린다. 그동안 주로 재즈 뮤지션들이 공연을 했고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와 사운드 아티스트들도 무대에 선다. 주말 저녁, 사람들이 북적이는 연남동을 지나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선율과 공기가 섞여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음악을 느끼게 되면, 알고 싶어질 것이다. 읽고 싶어질 것이다.

유어 마인드
독립 출판 서점 원조

연희동 ‘유어 마인드’

유어 마인드는 독립 출판이란 말이 낯설었던 2009년, 서교동에 문을 열었다. 한국 독립 출판 서점의 원조이자 최초의 플랫폼인 셈이다. 단순히 서점에 그친 게 아니라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소규모로 제작되는 책과 음반 시장도 정기적으로 열며 ‘판’을 키워왔다.

유어 마인드
영화로 치자면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해온 유어 마인드는 최근 5년 넘게 몸담았던 서교동을 떠나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촌에 자리 잡은 커다란 단독주택을 카페, 공방 등과 나눠 사용한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5층을 헉헉대며 올라간 게 억울해서라도 뭐 하나는 사야 할 것 같았던 서교동 시절에 비하면 쾌적하기 그지없다.

환경은 좋아졌지만 분위기는 그대로다. 잡지, 개인이 출판한 화보와 사진집이 주로 눈에 띄고 여행기와 그림책도 보인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시대의 대동맥이라면, 유어 마인드를 가득 채운 온갖 파격적이고 개성 있는 출판물들은 모세혈관이다. 이곳에 갈 때마다, 나는 마치 활자와 이미지의 테마파크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고요서사
문학 전문

해방촌 ‘고요서사’

운전이건, 대중교통이건, 걸어서건 영 가기 힘든 동네가 해방촌이다. 한강 이북의 중심인 남산 중턱에 있음에도 해방촌에 갈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오히려 이 접근의 곤란함 덕분이다. 저개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래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이 동네에도 책방이 있다. 해방촌 교회 주변, 빨간 벽돌로 지은 다가구주택 1층에 자리 잡은 고요서사다. 소설가 박인환이 해방 무렵 종로에 세웠던 서점 ‘마리서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요서사 내부
동네만큼이나 가게 내부도 고요하다. 서점에 왔다기보다는 책 좀 읽는 친구의 서가에 들어온 듯하다. 고요서사의 모토는 문학 중심 서점. 소설과 시, 에세이가 책꽂이에 여유 있게 들어차 있다. 혼자 고요서사를 운영하는 차경희씨는 출판 편집자 출신이다. 과거 출판 편집자로 일할 때는 문학을 다루지 않았지만, 책의 기본은 문학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책방을 문학 위주로 채운다. 문학이 중심이지만 지나치게 전문적인 작품보다는 읽는 맛이 좋은 책들을 선호한다. 대중성과 전문성의 사이 어디 즈음, 고요서사의 책들이 찍고 있는 좌표다. 제일 잘 팔리는 책을 물어봤다. 50권 팔면 50권이 다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알 만한 책과 낯선 책이 고루 분포된 고요서사의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책이든 믿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리라.

글·사진 김작가 음악평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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