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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 중 하나인 정동길에서 만나자는 약속. 불혹의 아줌마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근사한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좋다. 굳이 비용을 따지지 않더라도 국밥 한 그릇 먹는 게 더 실속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
추어탕 잘하기로 소문난 한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꾸라지를 갈아 걸쭉하게 끓인 추어탕은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추어탕도 추어탕이지만, 내 입맛을 사로잡은 건 이 집의 반찬이었다. 막 버무린 겉절이에, 얼갈이배추를 된장 양념에 무친 것, 그리고 오이무침. 여름이나 겨울이나 변함없는 이 집의 고정 반찬인데, 추어탕에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라 계속 이렇게 내는 듯했다.
겉절이는 말할 것도 없고, 얼갈이무침은 된장의 좋은 맛만 속속들이 배어 어찌나 맛이 좋은지, 몇 번이나 젓가락이 갔다. 잘 절인 오이에 시지도 달지도 않은 양념, 그리고 아삭거리는 식감의 오이무침은 입맛을 살려 주기에 충분했다. 특별한 양념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고, 그야말로 ‘솜씨’가 좋다고 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집에 돌아와 계속 생각나는 건 오이무침의 맛. 그거 먹자고 또 나가기는 그렇고,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식당의 ‘손맛’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으니 나도 구색은 갖추어야 할 터이다.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부터 찾았다. 모양새부터 비슷한 게 없다. 그 오이무침이 어땠는지 한번 떠올려 본다. 얇게 어슷 썬 오이가 충분히 절여졌고, 그렇다고 소금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고춧가루는 적당했고, 신맛도 단맛도 넘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그 맛을 떠올리며 생협 매장으로 간다. 아직 오이가 비싼 계절이다. 내가 고른 건 유기농 오이다. 오이에 생산 지역과, 생산방식 그리고 생산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쓰여 있다. 지난해 11월엔 가을장마라 할 만큼 비가 많이 내렸고, 일조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추운 겨울을 나느라 오이도 생산자도 애를 썼겠다 싶다. 자신의 이름을 건 오이. 모르긴 몰라도 농부의 발자국 소리만큼, 오이도 있는 힘껏 자란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오이를 사 왔으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맛있는 오이무침을 만들 차례. 마음을 가다듬고 오이를 썰고, 소금을 뿌려 절인다. 왔다 갔다 잘 절여졌는지 확인을 했고, 절인 오이를 눌러 물기를 짰다. 고춧가루로 색을 입히고, 설탕을 조금, 식초도 조금 넣었다. 마지막은 통깨로 마무리. 완성된 오이무침의 모양은 추어탕집의 그것과는 달랐지만 맛은 얼추 비슷했다. 아삭하기도 하고 쫄깃하기도 하면서 양념은 잘 배어 계속 손이 갔다. 맛을 보느라 맨입에 먹어도 충분히 좋았다. 평소 같으면 결코 빛나지 않을 반찬. 오이무침을 만드느라 나름 최선을 다했다. 오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보았고, 맛있게 먹었던 오이무침의 맛을 떠올려 보았으며 또 그것을 만들려고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만든 오이무침은 예전에 만든 것과 확실히 달랐다. 이제 곧 오이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오이무침을 필두로 오이지, 오이소박이, 오이만두 등 오이의 변신은 끝도 없이 이어지겠지. 그때마다 나는 정성껏 오이 반찬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게 먹는 오이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풀꽃>이라는 시를 한번 읽어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았더니 오이도 그랬다. 글ㆍ사진 윤혜정 아이쿱 공식 블로그‘협동으로 랄랄라’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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