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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약령시장’
직장인 박수민(33)씨는 요즘 아침마다 무기력한 증상이 심해졌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것이 원인이다. 지난해 이맘때 냉방병으로 열흘이나 고생해 에어컨도 되도록 멀리하고 있다. “점점 진이 빠져 잠도 못 자는데, 남들처럼 긴 휴가를 내기가 어렵거든요. 틈틈이 보양식과 휴식시간을 챙기며 기운을 차리고 있어요.” 다가오는 주말에는 여름 기력 회복에 좋다는 오미자 등 식재료를 사러 약령시장에 나가볼 예정이다.
동교동 ‘약다방 봄동’
여름 보양식과 약재료 천국, 서울 약령시
장마가 그치고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두자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높은 온도가 오래 유지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온열 질환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제기동 약령시장은 소나기 예보가 있었으나 손님들로 붐볐다. 대로변에 있는 종합약재상점의 상인은 “젊은 여성들은 우엉가루와 히비스커스 꽃잎을 많이 찾아요. 찬물에 쉽게 우러나니까 수시로 마시기 좋고, 기력도 살리고 피부 좋아진다고 해서. 남성들은 피로 해소에 좋다는 헛개나무(지구자) 분말을 꾸준히 찾고요”라고 전했다.
상수동 ‘친구네 허준’
길 건너 인삼·홍삼 골목은 삼을 들고 요리조리 모양을 살피는 중년 여성들로 북적였다. 주부 김아무개(55·제기동)씨는 “비 온다고 식구들 밥을 굶기나요? 말복 오기 전에 닭 한마리씩 멕여야지”라며 목에 흐른 땀을 닦았다. 8년째 장사를 해왔다는 상인은 “초복, 말복마다 치르는 행사”라며 “우리 집은 단골들이 꾸준히 믿고 찾아오기 때문에 얼굴 보며 인사한다”고 했다.
서울약령시는 국내 최대 한방시장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과묵한 약재상들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약재함은 이곳 세월의 무게를 한눈에 보여준다. 거래하는 한약재는 약 250종으로 우리나라 한약 유통 거래량의 70%를 차지한다. 시중 시세보다 20~40% 저렴하게 팔아 해마다 여름이면 여름 보양식 재료를 사러 오는 손님들로,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활기가 돈다. 생닭과 홍삼 등 인삼류·대추·옻·당귀를 비롯한 한약재가 지척에서 팔리고 있는데, 시중 마트에서 1만3000~2만5000원 나가는 4년근, 6년근 인삼 한 근(300g)이 이곳에서는 현재 8000~1만5000원 선이다.
창성동 ‘솔가헌’
그 밖에 한의원과 한약국 등 1000여개의 한방 관련 상가가 밀집해 있어 어디든 들어가 간단히 진료를 받고, 체질에 맞는 약재를 추천받아 값싸게 구할 수 있다. 골목마다 탕제 끓는 향이 진하게 올라 구경하는 재미를 더 쏠쏠하게 해준다. 양손에 두둑한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골목의 한 식당에서 나오던 50대 부부는 “아이들에게 보낼 한약을 지으러 왔다가 음식으로 보양하고 간다”며 “약령시에서 무얼 사든, 다 몸에 좋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약다방 봄동’ 족욕실
족욕과 건강차, 한방카페를 찾는 젊은이들
한의사들이 만든 한방 체험 공간도 한여름에 인기다. 서울 동교동의 ‘약다방 봄동’은 젊은 한의사들이 모여 마련한 한방카페로, 체질별로 기를 돋우거나 독소를 풀어주는 건강차를 소개한다.
약다방 봄동에서는 증상과 상황별로 마시는 여섯 가지 기본 약차 중 한 가지와 생활 면역을 높이는 여덟 가지 약재 중 하나를 조합한 맞춤 약차를 마실 수 있다. ‘차담’을 택하면, 한의사와 1대1로 일과 인간관계, 가족, 주거 환경 중 내게 취약한 요소가 무엇인지 상담받고 내 몸에 필요한 약차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처방받게 된다.
약령시장의 한약재 상가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며 족욕도 할 수 있다. 한증, 열증, 조증, 습증 등 네 가지 증상에 따라 대표 약재를 우린 물로 20분간 족욕을 하며 피로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평일 저녁 족욕을 하러 왔다는 30대 부부는 “족욕하며 차를 마시고 집에 가면, 몸도 노곤해지고 잠도 잘 온다. 여기서 배운 방법으로 집에서도 가끔 족욕을 한다”며 열대야를 이기는 방법이라 추천했다.
‘솔가헌’ 족욕장
상수동 쪽에 자리 잡은 ‘친구네 허준’도 한의사가 운영하는 한방카페다. ‘쉼’과 ‘건강’을 주제로 새로운 데이트 공간을 찾는 20대들의 인기 공간으로 입소문이 났다. 더위를 식혀주는 오미자차 등 여름 건강차를 무한정 마시며 근육마사지기와 지압기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는 꿀과 한방 재료를 섞어 환약을 만들어볼 수 있다. 피부 미용, 피로 해소, 다이어트 등 내게 맞는 주제를 골라 맞춤 환약을 만든다. 남자친구와 함께 체험을 신청했다는 20대 여성은 “국악을 전공하는데다가 평소 한방 문화에 관심이 많아 검색해서 찾아왔다. 기력이 떨어져 피로 해소 환약을 만들고 있는데,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친구네 허준’ 내게 맞는 맞춤 환약 체험 샘플들.
종로구에는 가족들과 함께 찾을 수 있는 전통 한방카페들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서촌의 ‘솔가헌’에서는 녹용쌍화차, 오미자차 등 진하게 우린 건강차 외에 약술도 판다. 족욕이나 쑥뜸을 즐길 수 있고, 한옥의 정취가 고즈넉해 부모님과 함께 찾기에도 좋다. 비 오는 날에는 아담한 중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도 개운해진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허준박물관, 솔가헌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방 체험 ‘허준박물관’
미래의 한의사를 꿈꾸는 아이들과 함께할 곳을 찾는다면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허준박물관’은 어떨까? 강서구 구암공원 일대는 허준이 태어나 ‘동의보감’을 집필하고 세상을 떠난 곳으로 알려져 있어 함께 둘러보며 시간 보내기 좋다. 허준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 외에도 ‘어린이 허준교실’을 통해 8월 한달 ‘한방 과자 만들기’나 ‘약재함 만들기’ 등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이달 19일부터 회당 40명씩 선착순 모집한다. 문의: 02-3661-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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