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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버스환승센터. 서울 중심을 가로지르는 140여개 노선 버스가 하루에도 몇번씩 승강장을 통과한다.
몸과 마음·책을 말리는 시간 필요한
시인은 종종 시내버스 타고 서울 여행
고궁과 골목길, 한강을 잇는 버스 노선
살펴보면 멋진 데이트 코스 즐비
“현주씨, 오늘은 버스 타고 구경 다니다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조금 사자.”
몇년 전 여름, 절기마다 만나 커피 한잔 나누던 한 시인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서울시 지도를 펼쳐 정중앙에 점을 하나 찍으면 그곳에 시인의 집이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밥을 짓고 작업을 일궈가던 여성이었다.
장마철이면 몸과 마음과 책을 말리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 때문에 그이는 햇볕을 찾아 종종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을 여행한다고 했다.
장마철이면 몸과 마음과 책을 말리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 때문에 그이는 햇볕을 찾아 종종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을 여행한다고 했다.
세빛둥둥섬
시인은 버스에 오를 때도 기내용 여행가방(캐리어)을 항상 챙겼다. 벼룩시장에서 내리면 낡은 사진이나 구리 촛대, 구제 옷가지를 모았고, 볕 드는 동네 카페를 지날 때면 주저 없이 들어가 가방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 앉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뒷좌석으로 쏟아지는 오후 햇살, 바쁘게 오르내리는 서울 시민들, 중년의 디제이(DJ)가 진행하는 라디오 소리, 시원한 에어컨 바람, 이 네 박자 조합이 시인의 뮤즈를 깨운 것이다. 그는 곧 가방에서 미완성의 시를 꺼내 소리 내어 읽으며 살을 붙였다. 고궁의 연인들과 광장의 저녁이 창밖으로 너울너울 흘러갔다.
서울 시내버스 여행은 서울 깊숙이 가닿는 재미가 있다. 고즈넉한 경복궁과 덕수궁 돌담길을 누비다가도 금방 신촌과 홍대 거리로 닿아 젊은이들의 버스킹 현장으로 안내한다. 구불구불 남산길을 타고 내려가 한강을 건너면 노을 번진 물결이 오늘 하루 수고했다며 손을 흔든다.
어디든 떠나고 싶지만 주머니 가벼운 날,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여행에 나서 보자. 서울의 얼굴이 익숙한 듯 새롭다. 서울 시내버스 중 알짜배기 노선 번호와 주요 정보를 정리해봤다.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
서울 4대 고궁을 편하게: 272, 1711
272번 버스는 창덕궁, 창경궁, 종묘, 경복궁, 광화문을 거쳐 경희궁 근방까지 거쳐 가는 간선버스 중 하나다. 서울 4대 고궁을 하나로 연결하는 덕에 알아두면 편하다. 29일까지는 경복궁 야간특별관람이, 11월5일까지는 창덕궁 달빛기행 행사가 이어져 고궁에 조명이 드리워진다. 특별한 기념사진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1711번 버스는 국민대에서 출발해 북악산 줄기를 거쳐 내려와 경복궁과 덕수궁, 서울시청을 연결한다. 먹거리 가득한 통인시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사진전을 이어가고 있는 대림미술관을 묶으면 데이트 코스로 손색없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 박자 쉬고, 경복궁 경내까지 둘러보면 하루가 꽉 찬다.
남대문시장 칼국수골목
서울 대표 시장에서 쇼핑 릴레이: 163, 271
163번 버스는 동대문에서 남대문, 명동을 가로지른다. 노선 하나로 웬만한 주요 시장은 다 돌아볼 수 있다. 동대문 패션타운, 동대문 종합시장, 청계천변과 평화시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광장시장과 방산시장까지 두루 구경하기 편하다. 그 밖에 서울의 대표 벼룩시장인 풍물시장도 거쳐 간다. 구제 의류, 상품 등 희소성 있는 물건들 틈에서 보물을 찾아보자.
271번 버스도 종로구를 관통하며 주요 시장마다 정차한다. 24시간 돌아가는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 청량리시장, 한약재만 전문으로 파는 경동시장과 약령시장, 아기자기한 아현시장, 싱싱한 식재료가 널린 마포농수산물시장을 지난다. 특히 먹거리가 유명해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망원시장도 271번 버스로 한번에 돌아볼 수 있다.
홀로 걷기 좋은 부암동
인기 동네를 따라 골목 여행: 7212, 600
7212번 버스는 서울의 인기 동네인 부암동과 익선동을 이어준다. 부암동은 맛집과 조용한 카페가 즐비하고, 환기미술관과 윤동주문학관, 서울미술관과 작은 갤러리가 많아 홀로 어슬렁거리며 하루를 보내기에 좋다. 익선동의 한옥 정취는 젊은 데이트족들에게 인기다. 골목골목 구경하다가 맥줏집 한옥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목을 축이면 한여름 더위도 성큼 물러간다.
문래동을 지나는 600번도 있다. 철공소 밀집 지역을 예술가들이 탈바꿈시킨 후 ‘힙’한 동네로 떠오른 문래창작촌과 여의도 밤도깨비야시장을 잇는 길도 여름날 산책 코스로 인기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한강
버스 타고 한강을 달린다: 463, 405
463번은 한강 다리를 두번 건너는 간선버스다. 양재와 강남, 반포 도심 숲에서 출발해 성수대교를 먼저 건넌 후, 서울역을 거쳐 마포대교를 또 한번 건넌다. 어느 위치에서건 탁 트인 한강 풍경이 시원하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내리면 한강공원이 걸어서 10분 안에 닿는다.
저녁 무렵, 윤슬이 잔잔히 퍼져나가는 물결과 야경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다면 405번을 타보자. 양재에서 반포대교를 지나 남산자락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하는데, 반포한강공원에서 세빛섬의 야경에 취했다가 남산타워로 가는 코스다. 전망대에서 서울 풍경을 한눈에 담기 좋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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