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 입고 외국여행 가요”

한복 입고 히말라야까지 등반, 젊은이들의 한복 여행기

등록 : 2017-10-26 14:30 수정 : 2017-11-0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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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생활한복 입고 오페라 관람

자부심으로 입고 자기만족으로 찍고

‘한복’과 ‘여행’을 콘텐츠로 만들기도

생활한복 회사들도 덩달아 인기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2030 세대로 구성된 전통문화프로젝트그룹 ‘한복여행가’(단장: 권미루)와 개인 여행가들이 제공한 한복 여행 사진.


지난 추석 연휴를 활용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을 다녀온 직장인 이지민(27)씨는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다. 여행객들 중 전통한복과 생활한복을 입은 남녀 또래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제3자가 돼보니까 색다르더라고요. 몇년 전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같은 장소에 갔는데, 일본의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은 봤어도 한복은 못 봤거든요.”

한복 입고 여행 가는 이유, ‘자기만족과 자부심’

한복을 입고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사진 공유 사이트 ‘핀터레스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행한복’을 검색하면 올 한해만 몇천 장의 사진이 뜬다. 쇼핑과 여행·숙박 사이트에서는 한복대여 이용권을 여행 상품에 끼워넣는다.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의 궁궐마다 ‘한복착용자 무료 입장’ 혜택을 내세운 뒤 한복대여점이 잇따라 생겨나고, 한복을 입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도 늘었는데, 이제는 한복을 들고 외국으로 여행가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셀프 웨딩촬영’을 하려고 생활한복을 샀다는 김윤미씨 부부.

직장인 김윤미(34)씨도 지난 7월 예비 신랑과 ‘셀프 웨딩사진’을 찍고자 베트남 호이안 여행을 준비하다가 한복을 한 벌 사서 가방에 넣었다. 웬만한 드레스보다 색과 디자인이 더 곱고 예뻤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여행이니까 특별한 사진을 남기고 싶었어요. 10만원대로 저렴하게 사서 평상시에 입기도 좋구요. 웨딩사진뿐 아니라 신혼여행용 생활한복 정보공유 사이트가 요즘 굉장히 많아요.”

자부심과 격식을 보이기 위해 한복을 입는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지민씨는 여행 중 ‘빈 국립오페라하우스’를 갈 때 인사동에서 산 고급 생활한복을 입었다고 했다. “대학 시절,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차려입으며 격식을 갖추고 오페라하우스에 들어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복도 기모노 못지않게 예쁜데, 나중에 한복을 입고 다시 오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밖에 ‘한복 입고 여행하는 길에 현지인들의 질문과 찬사를 받아 자부심을 느꼈다’는 여행객들의 후기가 줄을 이었다.

생활한복을 입고 유럽 여행을 떠난 이지민씨

젊은 세대들이 한복을 찾기 시작하면서, 활동성을 고려한 생활한복 회사들도 덩달아 인기다. 젊은층의 입소문을 탄 상표는 현재 10여개로, 한복 가격은 한벌당 7만~30만원 정도다. 한복 회사는 모두 에스엔에스를 이용해 젊은층과 소통하고,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이나 여행 커플룩을 계절별로 선보인다.

이 가운데 전북 전주에 본점을 둔 생활한복 회사 ‘리슬’은 지난달부터 목동, 신촌 등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에 ‘반짝가게’(팝업 스토어)를 열어 청년들과 접점을 늘이기도 했다. 리슬 관계자는 “신사동 가로수길 지점 및 서울 반짝가게에는 별다른 광고 없이도 하루 평균 200~500명이 찾아와 한복 옷감과 디자인에 대해 꼼꼼히 묻고 간다”고 전했다.

‘한복’과 ‘여행’으로 새로운 플랫폼도 만들어

‘한복’과 ‘여행’을 콘텐츠로 확장시킨 사람도 있다. 지난 8월 <한복, 여행하다>를 출간한 권미루(37)씨다. 권씨는 2013년 경복궁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한복에 빠졌다. 그 후 한복을 입고 13개국 63개 도시를 여행했고, 4130m 높이의 네팔 히말라야까지 다녀와 화제가 됐다. 그는 “예쁘다는 말, 관심종자란 말, 이러저런 말을 들었지만 ‘한복이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을까’ 실험하고 스스로 옷에서 더 자유로워진 특별한 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생활한복 ‘리슬’의 신사동 반짝가게.

권씨는 여행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2015년 전통문화 프로젝트 그룹 ‘한복여행가’를 꾸렸다. 20~30대 젊은층이 모여 ‘한복’과 ‘여행’을 주제로 콘텐츠를 기획해 실행에 옮긴다. 스태프들은 디자이너, 상담심리사, 사진가, 컨설턴트, 한복 대여업자, 학생 등 출신도 다양하다.

권씨가 2015년부터 기획해 내놓은 ‘한복여행 사진전’은 서울, 수원, 부산을 거쳐 지난해 10월 베트남에서도 열렸다. 그룹은 이를 발전시켜 내년 1월 러시아에서도 ‘한복여행 사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함께 한복을 입고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여행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한복과 여행이 젊은층들의 감성을 잇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경복궁에서 ‘한복여행 사진전’을 열 때는 젊은층의 자발적인 한복여행 사진이 600여장 들어왔어요. 프로젝트 그룹 ‘한복여행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함께하는 소중한 ‘추억’과 ‘여행’에 의미를 둬요. 5년 전만 해도 한복 입고 여행을 다니면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봤는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한복 여행이 젊은층의 ‘버킷리스트’가 되기도 하는 만큼, 한복과 여행을 소재로 더 재밌는 콘텐츠를 기획해나갈 생각입니다.” 권씨의 말이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전통문화프로젝트그룹 ‘한복여행가’와 개인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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