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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3개월간 보수공사 마무리
창덕궁 향나무 후계목 등
70여종 식물이 새로 자리잡아
영국 회사 옛 타일 복원
창경궁 대온실 전경
“아아, 따뜻하다! 조금만 더 있다 나가자.” 영하로 뚝 떨어진 바깥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붉은 뺨을 비벼대는 이곳. 이달 10일 다시 문을 연 ‘창경궁 대온실’(등록문화재 제83호)이다. 2013년에 문화재청 결정으로 관람을 중단했던 창경궁 대온실이 2016년 8월부터 1년3개월 동안 한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민들을 맞이했다.
창경궁 대온실, 온도와 이야기가 머물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본 제국 황실의 식물원 책임자이자 원예학자인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 동양식 온실이 식물 배양과 재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서양식 온실은 전시와 오락 공간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창경궁 대온실 바닥면적은 582㎡(약 160평)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본 제국 황실의 식물원 책임자이자 원예학자인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 동양식 온실이 식물 배양과 재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서양식 온실은 전시와 오락 공간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창경궁 대온실 바닥면적은 582㎡(약 160평)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창경궁 대온실 내부
대온실은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가둬놓고 그를 위로한다며 동물원과 함께 지었으니, 실은 왕궁의 존엄성을 격하시키고자 지은 것이다. 실제 창경궁은 빠르게 위락시설로 전락했다. 1984년 창경궁 복원 계획에 따라 대온실과 창고를 뺀 부속 건축물은 철거되거나 과천대공원으로 옮겨졌다. 대온실은 대한제국 말기에 도입된 서양 건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4년 2월6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재개방한 온실에는 식물 70여종이 자리잡았다.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서울 창덕궁 향나무에서, 경남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63호)에서, 전북 부안 변산면 중계리 꽝꽝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124호)에서 채취한 후계목(엄마 나무의 일부를 떼어내 키운 나무)이다. 그 밖에 식충식물, 고사리류도 볼 수 있다. 분재 형태의 식물이 많다.
대온실 내부에 복원된 영국제 타일.
대온실 준공 때 쓰인 영국제 타일의 원형을 살린 점도 볼거리다. 문화재청은 이번 보수공사에서 타일 제조사인 ‘민턴 홀린스’가 1905년 발간한 책자를 바탕으로 옛 타일을 복원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궁궐 후계목’ 구경하며 소감도 나눠
창경궁 대온실 산책길은 자연스럽게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일제는 창경궁에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을 집어넣으며 창경원으로 바꿔놓는다. 당시 창경궁에 있던 60여채의 전각과 담장, 궁문들이 철거되고 변형됐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던 지맥을 끊어 현재 ‘율곡로’란 이름이 붙은 길을 낸 것도 일제의 발상이다.
아프리카 기린 한 마리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 ‘입주’하는 흑백사진을 보면, 적어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은 눈이 커질 것이다. 때문에 새로 단장한 대온실 앞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춘당지 큰 연못은 식물원이 들어서기 전까진 ‘내농포’ 터로,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정을 살폈던 지대로 알려져 있다. 논에서 잘 자라던 벼를 수장시키고 이국의 식물을 옮겨 심은 대온실을 보면, 온실 속 화초마냥 갇혔던 순종의 처지도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다.
창경궁 대온실에는 천연기념물, 식충식물, 고사리류 등 7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다.
세대를 건너 시민들의 분분한 소감과 기억을 엿듣는 것이 감칠맛 나는 이유다. 창경궁 대온실에서 만난 20대 연인은 입을 모아 “창경궁의 역사를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대온실이 일제 식민지 시절의 잔재라고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 같아 관람 내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옆에서 청년들의 말에 귀 기울이던 고성덕(66)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구경 해봤다는 사람치고 ‘창경원 벚꽃놀이’ 안 해본 사람이 있나? 요즘 젊은이들이 벚꽃 피면 여의도 윤중로로 몰려가듯, 그때 사람들은 여기로 몰려왔다”며 추억에 방점을 두기도 했다.
현재 재개장한 대온실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창덕궁 향나무 후계목’이라는 점도 지난 역사를 가늠케 한다. 1m 남짓한 키지만 파릇한 기세가 야무지다. 우리 궁궐 나무 중 최고령이자 천연기념물인 서울 창덕궁 향나무(수령 750여년)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입소문에 시민들의 휴대전화 카메라 세례를 많이 받는다.
겨울의 길목, 대온실은 새로운 터의 기억을 쌓아가는 듯하다. 창경궁 대온실을 둘러보고 춘당지까지 한 바퀴 걷다가, 내친김에 창경궁에서 종묘까지 걸어 응봉 지맥을 이어가보는 것도 좋겠다. 창경궁 관리사무소에서는 하루 4회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 안내를 한다. (창경궁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문의: 02-762-9514)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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