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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형 시리즈 중. 남서울생활미술관 제공
스무살 무렵부터 그릇 가게를 들렀고, 생활 기자로 십여년이나 일했는데 살림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살림 곰손’이 재미를 붙이려고 터득한 방법이 살림 치장이다. 다만 집도 작고 정리도 못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주렁주렁 지니는 것이 성미에 안 맞아 숟가락, 밥그릇, 냄비 받침 등 필수품을 잘 사서 예쁘게 담아놓고 놀이하듯 밥상을 차린다. 이 사소한 놀이는 가벼운 즐거움이자 살림의 작은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지난해 보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시저담화>라는 전시도 챙겨 보았고, 이번 <별별수저> 전시도 공감하며 반갑게 찾아갔다.
사당역에 있는 남서울미술관은 주로 공예 전시를 연다. 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을 2004년부터 미술관으로 쓰는데, 외진 데 있어 그리 붐비지 않는 데다 근대 건축의 운치까지 흐른다. 정원이나 어느 창가에 기대어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홀로 찾곤 한다.
꽃이 진 창 너머로 초록 잎이 싱그러워 전시관의 숟가락들이 빛났다. 숟가락 구경이나 실컷 하려고 찾은 미술관은 수묵화로 그린 서양식 만찬 테이블, 유근택 작가의 ‘어떤 만찬’이 맞이한다. 보잘것없는 플라스틱 테이블을 꽃분홍으로 감싸 차린 오화진의 ‘생명력이 생명을 살린다’는 죽은 것과 산 것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박주형 작가의 접시를 들추는 듯한 숟가락, 사방으로 숟가락을 꽂은 나무 오브제에는 ‘순간 기쁨’이라는 시리즈명이 붙어 있다.
덕혜옹주의 유품을 재현한 곱고 우아한 금박 수저집이며 숟가락을 만들 때 올려두는 숟가락 물판이라는 신기한 물건도 있고, 무형문화재 이형근의 작업 영상도 돌아간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은으로 만든 가녀린 찻숟가락과 누비 작가 김윤선의 참한 수저집, 울룩불룩 육감적인 디저트 숟가락, 덤덤해서 매력 있는 수저 세트 등 ‘별별수저’들이 펼쳐진다.
전시실 안쪽 방에 걸린 민중화가 김정헌 선생의 ‘흙밥상과 질경이’와 이종구 선생의 가난한 밥상 그림 앞에 서면 숟가락이 목숨이다. 빨대와 숟가락을 두개씩 꽂은 나빈 작가의 아이스라테와 빙수 그림을 보노라면 우리가 친구와 자주 하던 장난이 떠올라 밥상이 곧 일상의 흔적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1층에서 보았던 ‘순간 기쁨’이라는 시리즈는 음식에 숟가락을 댈 때의 환희와 설렘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위가 움찔하는 기대에 찬 첫술, 입에 숟가락이 닿는 감촉, 그 감각을 모르고 산 지 오래다. 첫 아이 이유식을 시작할 때 노련한 점원은 딱딱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무엇이 떠지기나 할까 싶게 얕은 실리콘 숟가락을 권했다. 덕분에 예민한 아이는 생애 첫술을 무난히 넘겼다. 가끔 테두리가 도톰한 머그에 커피를 마시며 푸근함을 느끼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번씩 입술과 혀에 닿는 숟가락의 감촉을 인지한다면 일상이 꽤 감각적일 것 같다. 냉장고에서 차게 식힌 맥주잔이 닿을 때의 청량감을 느낄 날도 있을 테고. ‘별별수저전’은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02-598-6247)에서 5월15일까지 열린다.
이나래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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