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와인과 궁합을 이루는 집

박미향 기자가 다니는 집 락희옥

등록 : 2016-04-29 10:34 수정 : 2016-11-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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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ㅈ은 10년 넘게 같은 불평을 해오고 있다. “없어! 없어! 우리 회사 앞에는 맛집이 없어!” 식도락가인 그는 짧은 점심시간을 불평하며, 자기 회사 근처는 맛의 불모지라고 투덜거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 그의 직장이 있는 광화문 일대는 누구나 알 만한 맛집이 많다.

실제 직장인들은 줄 서는 맛집을 회사 앞에서 보고도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는다고 한다. 상사에게 꾸지람을 한껏 듣고 먹는 점심이 맛있을 리 없다. 명퇴 바람이 부는데 밥이 넘어갈 리 없다. 오후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산더미인데 국이 안 짜면 이상한 거다.

이런 심사 말고도 맛집은 알파고 수준의 실력으로 검색을 하거나 ‘애정하는’ 맛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고생을 애피타이저 삼아 찾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앞 맛집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맛 기자로서 산 지 10여년이 훌쩍 넘은 나조차 친구 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사 선후배들이 물어보면 “회사 근처, 맛있는 데요? 글쎄요…” 하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내 대답은 달라졌다. “버스 서너 정거장 지나서는 어떠신지요?”

 
 ‘락희옥’ 때문이다. 가벼운 한식당인 락희옥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버스 서너 정거장 지난 자리에 있다. 지난해 4월1일(만우절), ‘거짓말’처럼 마포구 용강동에 문을 열었다. 띠링, 띠링. 그맘때쯤 전화 한통을 받았다. 사장 김선희(44)씨였다. “가깝다. 한번 오시라.”


그를 2004년에 취재차 처음 만났으니 우리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2014년 서울 을지로에 락희옥을 열었고, 지난해 두번째 락희옥을 마포에 연 것이다. 마포 락희옥에 애정이 더 많은 그는 “본점 삼았다”라고 말했다. 개화옥 시절보다 제철 재료에 더 집중한다는 그는 푸짐한 성게비빔밥(사진), 넉넉한 도다리쑥국 등을 메뉴에 넣었다. 제철식이 대부분이다.

단아하게 생긴 그는 솜씨까지 품성을 닮았다. 정갈하다. 우리는 식당 주인과 음식 기자로 만났지만 술 애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시나, 락희옥은 40여종의 와인, 30여종의 수제맥주, 이화주 등 기타 주류가 10여종이 넘는다. 그야말로 골고루 구성했다. 와인과 위스키 코키지(잔 사용료)는 없다. 심지어 가져오는 병수의 제한도 없다.

본래 한겨레신문이 있는 마포 일대는 예부터 돼지갈비로 유명했다. 마포대교(1970년)가 개통되기 전 마포나루는 ‘금 따는 콩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돈과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일꾼들이 많았다. 그들은 당시에는 싼 부위였던 돼지갈비를 즐겨 구워 먹었다. 집단촌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1970년 이후부터는 마포 공덕동 철로 주변에 제대로 된 돼지갈비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섰다고 한다. 이 일대는 ‘마포갈비’가 마치 고유명사처럼 들릴 정도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지금은 그 옛날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원조’ 등을 간판에 쓴 고깃집들이 영업 중이다.

지역 맛집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고깃집들이 맹주처럼 자리 잡은 마포에 락희옥은 반가운 존재다. 저녁나절 들여다보면 와인 잔에 차돌박이보쌈, 메밀전병 등을 안주 삼아 먹는 애주가들이 많다. 마포에서 ‘와인과 한식’은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이었다. (마포구 용강동 494-56/02-719-9797/4000~4만원)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요리 담당 기자

mh@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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