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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즐비한 을지로 골목길은
약방거리로 유명한 구리개길
약재 대신 커피를 받으러 줄 서
길의 속성은 여전히 남은 듯
구리개길 혜민서 옛터
“아메리카노 한 잔, 라테 두 잔요.” 을지로 비좁은 골목의 한 카페. 주문이 끝없이 밀려든다. 이 자리는 조선 시대 때 백성을 치료하고 약을 제조했던 ‘혜민서 옛터’로 알려졌다. 당시 유명 약방거리였던 ‘구리개길’ 권역이다. 6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손님들은 약재 대신 커피를 받으려고 줄을 선다. 현대인의 각성제 커피 아니던가. 길의 속성이 여전히 남은 듯 보인다.
한양 고지도에서 꺼내본 서울 옛길
옛 사료를 보면, 서울은 물길이 먼저다. 지형 따라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고 물길 따라 사람길이 생겨났다. 여기에 한양 형성 때 계획을 세워 만든 큰길이 서로 붙었다. 서울 옛길을 걷는다는 건 자연의 길과 인간의 길이 만나던 그 시작, 도시의 설렘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천년 동안 땅의 지문처럼 자리잡은 서울 옛길이 급속히 파괴된 건 고작 지난 100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과정에서 물길은 시멘트에 묻히거나 변형됐다.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도 같이 사라졌다. 남은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옛 사료를 보면, 서울은 물길이 먼저다. 지형 따라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고 물길 따라 사람길이 생겨났다. 여기에 한양 형성 때 계획을 세워 만든 큰길이 서로 붙었다. 서울 옛길을 걷는다는 건 자연의 길과 인간의 길이 만나던 그 시작, 도시의 설렘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천년 동안 땅의 지문처럼 자리잡은 서울 옛길이 급속히 파괴된 건 고작 지난 100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과정에서 물길은 시멘트에 묻히거나 변형됐다.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도 같이 사라졌다. 남은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도성 대지도
서울시는 <도성 대지도>(18세기)와 1912년 제작된 <경성부 지적원도>를 활용해 선조 때 형성된 ‘한양도성 내 고유의 길’ 기록 사업을 지난 2년 동안 했다. 1910년 전후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으로 만든 길은 제외하고, 아직 그 맥이 남아 있는 옛길 620개를 찾아냈다.
12갈래 옛길로 떠나는 서울 시간여행
‘서울 옛길 12경’은 그 가운데서도 풍광 좋고 걷기 좋은 길을 추려낸 것이다. 길 대부분이 물줄기에서 탄생한 덕인지, 부드럽고 유유하며, 때로는 골목까지 비집고 들어가 이야기를 쌓고 있다.
‘옥류동천길’은 인왕산 아래 옥류동 계곡과 수성동 계곡 두 물줄기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서촌 권역이자, 수성동 계곡에서 경복궁까지 이르는 긴 길이다. 예부터 마을과 계곡이 아름다워 시 한 수 서로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기러 온 선비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화가인 겸재 정선이 놓치지 않았는데, 화폭 속 선비들 뒤태가 사방 경치에 폭 싸여 여유롭다. 같은 길에서 시인 윤동주, 이상, 노천명, 소설가 염상섭, 화가 박노수 등 여러 문화예술인이 살다 갔다. 지금도 주말이면 인왕산을 오르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삼청동천길’은 삼청동 칠보사에서 경복궁 건춘문을 거쳐 동십자각까지 이른다. 북촌 권역이다. 북악산 동쪽 기슭에서 흘러내렸던 삼청동천은 조선 시대 청계천 지천 중 가장 큰 하천으로 꼽혔다고 한다. 경복궁을 비롯해 청와대, 국무총리 공관, 또한 (구)국군기무사령부 등 국가 주요 시설이 들어서 있다가 지난해에 이르러서는 대통령 탄핵 시위행렬이 강물처럼 흘러다니던 길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어 넉넉히 시간을 잡고 거닐기 좋다.
‘안국동천길’에는 명성황후의 생가인 ‘감고당’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덕성여고가 들어서면서 일부 시설은 이천으로 옮겨가고, 덕성여고 앞길은 ‘감고당길’이라고 한다. 안국동천길은 소격동 정독도서관에서 시작해 안국동 사거리를 거쳐 인사동 남인사마당까지 닿는다. 감고당과 가까운 옛 안동별궁 자리에 곧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선다. 인사동 옛 물길을 품고, 한국 전통문화거리로 그 맥을 잇겠다는 뜻이다.
제생동천길
‘제생동천길’은 가회동 중앙고등학교에서 안국역을 거쳐 낙원동 탑골공원까지 이어진다. 길 일대가 한옥 보존 구역이다. 기와 올린 집과 리듬 있는 골목,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계절 여행객을 부른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 돌담을 따라 걷는 ‘북영천길’ 역시 한옥 정취를 즐기기 좋은 길이다. 이 동네를 지난다면 ‘율곡로 10길’을 유심히 보자. 600년 전 물이 흐르던 형태가 지금까지 유지된 경우로, 지난 시간이 아스라이 와닿는다.
성균관대학교를 지나는 ‘흥덕동천길’은 성균관을 사이에 두고 흐르던 두 물줄기와 흥덕동에서 흘러온 물길이 만나 흐르다가 복개되어 생겼다. 혜화동로터리를 지나 대학로까지 이어지며, 길 끝에는 극장, 식당이 즐비하게 자리잡았다.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로 널리 알려진 길로, 경운궁 담을 따라 형성되어 현재도 도심 관광길로 손꼽힌다. 덕수궁을 비롯해 배재학당, 구세군회관, 정동교회, 중명전, 구 러시아공사관 등 역사문화 관련 시설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연인들의 산책로로 인기다.
정동길
명동역을 지나는 ‘남산동천길’은 남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만들었다. 조선 시대 때는 남촌의 주택가로 벼슬이 높지 않은 양반들과 군인 계층이 모여 살았다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모여들어 경성 제일의 번화가로 바꿔놓았다. 오늘날 명동은 옛길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 ‘걷는 맛’이 나는 길로 꼽힌다.
남산동천길
그 밖에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어지는 ‘필동천길’(남산골 공원~대림상가), 중부시장과 방산시장을 지나는 옛 시장길 ‘묵사동천길’(남산 노인정터~방산시장), 남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고이던 ‘진고개길’(명동성당~신세계백화점), 조선 시대 대표 약방거리로 꼽힌 ‘구리개길’(을지로 일대) 모두 살아 있는 서울의 옛길이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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