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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음악 열풍이 불던 1973년
‘나그네’ 등 포크풍 노래 녹음
트로트 가수 특유 마이너 감성 없어
“곡 들어보고 한번 부르면 끝”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가 1970년 ‘MBC 가수왕’을 차지하던 모습. 트로트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포크, 가곡, 팝, 민요 등 다양한 분야의 노래를 담아 발표한 이미자의 색다른 앨범들.
국내 대중가요 역사에서 혼성 듀엣의 노래는 유성기 시절부터 등장한다. 1960년 말 공식 팀명을 갖고 활동한 ‘서수남과 현혜정’ 이전의 모든 혼성 듀엣은 프로젝트로 팀을 결성하고 단발성으로 노래를 발표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1956년 안다성과 권혜경이 함께 부른 국내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청실홍실’은 전국의 안방을 강타했다. 이후 스타 가수 부부인 황금심과 고복수는 1958년 발매된 고복수의 은퇴기념 음반에서 ‘노래하는 부부’로 굳건한 금슬을 과시해 화제를 모았다. 1971년 하춘화와 작곡가 고봉산이 코믹하게 대화 형식으로 함께 부른 ‘잘했군 잘했어’는 지금도 불리는 프로젝트 혼성 듀엣 역사상 최대 히트곡이다. 이후 1987년 이문세, 고은희의 ‘이별 이야기’, 1990년 홍서범 조갑경의 ‘내 사랑 투유’ 등 아날로그 엘피(LP) 시절에 발표된 프로젝트 혼성 듀엣들의 달콤한 노래들은 어김없이 대중의 흥미를 일으키며 히트했다.
그런 점에서 1963년 킹스타레코드에서 발매한 남일해와 이미자의 10인치 LP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앨범이다. 21살 젊디젊은 이미자가 풋풋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선배 가수 남일해와 함께 부른 진귀한 혼성 듀엣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트로트 여성 솔로 가수의 대명사인 이미자가 프로젝트 혼성 듀엣으로 음반을 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앨범에서 유일한 혼성 듀엣곡은 반야월이 작사하고 나화랑이 작곡한 타이틀곡 ‘우리 둘은 젊은이’이다. 이미자와 남일해는 이때의 인연으로 1965년 개봉했던 영화 <계약결혼>의 주제가를 듀엣으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미자와 남일해의 듀엣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실체를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미국인들은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대를 영구보존해 해부해보고 싶어 했고,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를 해부해 특이한 구조를 발견하고 싶어 했다. 한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로 극찬받았던 이미자도 오래전 일본에서 ‘사후에 성대를 영구보존해 해부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 화제가 되었다. 1993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미자 성대의 비밀’을 풀어보고자,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이대부속병원 음성관리소에 이미자의 성대 분석을 의뢰했다. 당시 성대, 음폭, 발성, 공기 역학 부문으로 정밀 검사를 했다. “이미자의 성대는 점액질이 풍부하고 훈련이 아닌 천부적인 창법, 발성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이미자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일반인과는 차별되는 성대에서 시작된다는 판명이 나왔다. 이미자는 트로트 장르를 상징하는 존재지만, 트로트만 잘 부를 것으로 단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포크송, 가곡, 팝, 민요 등 그 어떤 장르의 노래도 타고난 음감으로 소화하는 만능 가수였다. 내친김에 트로트를 대표하는 이미자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던 음반들을 소개한다. 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미자는 팝송 번안곡 ‘태양의 저편’, 탱고풍의 ‘사랑의 등불’, 뭔가 트로트 가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럴까지 담백하게 노래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1967년에 트로트 가수 이미자는 세계 각국의 민요를 노래한 이색 독집을 발표하며 자신이 탁월한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했다. 양면이 펼쳐지는 ‘게이트폴드’로 제작한 이 앨범의 재킷 사진부터 보수적인 트로트 여가수의 이미지를 파괴했다. 양팔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민소매 상의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이미자가 들판에서 꽃을 들고 비스듬히 누운 파격적인 모습 뒤에서 밝은 표정을 짓는 4명의 남성들은 ‘바다로 가자’ ‘고향의 옛집’ 등에서 코러스를 맡았던 당대의 인기 남성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다. 이 앨범에 수록된 이미자의 노래에는 트로트 가수 특유의 마이너 정서는 온데간데없다. 창법에서도 가식이나 기교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순박한 시골 처녀의 상큼함이 가득하다. 첫 트랙 ‘오 대니 보이’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아일랜드 민요이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도 과거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익숙한 이탈리아 민요다. 이 음반은 1970년과 1971년에 추가 제작했을 정도로 히트했다. 또한 이 앨범의 인기 덕에 이미자는 1979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가 등을 수록한 세계 민요 앨범을 1장 더 발매했다. 줄리 앤드루스의 노래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도레미송’과 ‘에벨바이스’의 이미자 버전 또한 원곡 가수와 견줄 만하다. 1970년대는 맑고 고운 포크송과 팝송 번안곡의 시대였다. 청년들이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시대로, 당대의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의 거센 열풍은 이미자조차 포크송을 부르게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973년에 발표한 이미자의 포크송 ‘나그네’는 우리가 아는 ‘등대지기’의 멜로디에 가사만 다르게 붙인 포크송이었고, ‘여수’는 팝송 번안곡이었다. 1976년에 녹음한, 팝송 ‘로망스’ 번안곡 ‘그대는 내 추억’과 페리 코모의 ‘아이 빌리브 인 뮤직'을 번안한, 윤항기의 노래로 유명한 ‘노래하는 곳에’를 들어보면 그가 트로트 가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게 부른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음역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음 처리에 부담을 느껴 객석에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나쁜 습관’을 자꾸 보이는 가수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봤다. 그래서 팔순이 코앞이지만 한결같은 미성에 꾸밈없이 소박하고 진지한 이미자의 무대는 더 큰 감동을 안겨준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건만 신곡 녹음 때 작곡가가 피아노로 쳐주는 곡을 한번 듣고는 스스로 불러보면 끝이었다. 거기다 감정까지 적절하게 표현하며 바로 녹음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다”라는 작곡가 고봉산의 극찬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 실험은 물론이고 지금도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며 활동하는 이미자에게 어울리는 헌사일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소리는 신의 선물이다. 또한 단 한 번 곡을 들으면 곧바로 소화해냈던 이미자의 절대 음감은 신의 축복일 것이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미국인들은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대를 영구보존해 해부해보고 싶어 했고,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를 해부해 특이한 구조를 발견하고 싶어 했다. 한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로 극찬받았던 이미자도 오래전 일본에서 ‘사후에 성대를 영구보존해 해부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 화제가 되었다. 1993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미자 성대의 비밀’을 풀어보고자,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이대부속병원 음성관리소에 이미자의 성대 분석을 의뢰했다. 당시 성대, 음폭, 발성, 공기 역학 부문으로 정밀 검사를 했다. “이미자의 성대는 점액질이 풍부하고 훈련이 아닌 천부적인 창법, 발성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이미자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일반인과는 차별되는 성대에서 시작된다는 판명이 나왔다. 이미자는 트로트 장르를 상징하는 존재지만, 트로트만 잘 부를 것으로 단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포크송, 가곡, 팝, 민요 등 그 어떤 장르의 노래도 타고난 음감으로 소화하는 만능 가수였다. 내친김에 트로트를 대표하는 이미자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던 음반들을 소개한다. 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미자는 팝송 번안곡 ‘태양의 저편’, 탱고풍의 ‘사랑의 등불’, 뭔가 트로트 가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럴까지 담백하게 노래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1967년에 트로트 가수 이미자는 세계 각국의 민요를 노래한 이색 독집을 발표하며 자신이 탁월한 보컬리스트임을 증명했다. 양면이 펼쳐지는 ‘게이트폴드’로 제작한 이 앨범의 재킷 사진부터 보수적인 트로트 여가수의 이미지를 파괴했다. 양팔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민소매 상의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이미자가 들판에서 꽃을 들고 비스듬히 누운 파격적인 모습 뒤에서 밝은 표정을 짓는 4명의 남성들은 ‘바다로 가자’ ‘고향의 옛집’ 등에서 코러스를 맡았던 당대의 인기 남성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다. 이 앨범에 수록된 이미자의 노래에는 트로트 가수 특유의 마이너 정서는 온데간데없다. 창법에서도 가식이나 기교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순박한 시골 처녀의 상큼함이 가득하다. 첫 트랙 ‘오 대니 보이’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아일랜드 민요이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도 과거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익숙한 이탈리아 민요다. 이 음반은 1970년과 1971년에 추가 제작했을 정도로 히트했다. 또한 이 앨범의 인기 덕에 이미자는 1979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가 등을 수록한 세계 민요 앨범을 1장 더 발매했다. 줄리 앤드루스의 노래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도레미송’과 ‘에벨바이스’의 이미자 버전 또한 원곡 가수와 견줄 만하다. 1970년대는 맑고 고운 포크송과 팝송 번안곡의 시대였다. 청년들이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시대로, 당대의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의 거센 열풍은 이미자조차 포크송을 부르게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973년에 발표한 이미자의 포크송 ‘나그네’는 우리가 아는 ‘등대지기’의 멜로디에 가사만 다르게 붙인 포크송이었고, ‘여수’는 팝송 번안곡이었다. 1976년에 녹음한, 팝송 ‘로망스’ 번안곡 ‘그대는 내 추억’과 페리 코모의 ‘아이 빌리브 인 뮤직'을 번안한, 윤항기의 노래로 유명한 ‘노래하는 곳에’를 들어보면 그가 트로트 가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게 부른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음역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음 처리에 부담을 느껴 객석에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나쁜 습관’을 자꾸 보이는 가수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봤다. 그래서 팔순이 코앞이지만 한결같은 미성에 꾸밈없이 소박하고 진지한 이미자의 무대는 더 큰 감동을 안겨준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건만 신곡 녹음 때 작곡가가 피아노로 쳐주는 곡을 한번 듣고는 스스로 불러보면 끝이었다. 거기다 감정까지 적절하게 표현하며 바로 녹음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다”라는 작곡가 고봉산의 극찬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 실험은 물론이고 지금도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며 활동하는 이미자에게 어울리는 헌사일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소리는 신의 선물이다. 또한 단 한 번 곡을 들으면 곧바로 소화해냈던 이미자의 절대 음감은 신의 축복일 것이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