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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 숨결이 가득한 곳

도봉구 방학동 ‘간송 옛집’

등록 : 2018-05-3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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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 골목 안쪽, 도봉산 자락 아래 살포시 스며든 한옥 한 채. 조선의 문화와 정신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옛집이다.

‘간송 옛집’이라 쓰인 대문 앞에서 봄볕을 쬐고 있는 청초한 고택을 보고 있자니 홀린 듯 발걸음이 안으로 향한다. 절제된 미를 담은 기와지붕을 따라가다보면 기둥에 걸린 추사 김정희의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과 위창 오세창 선생의 편액(종이·비단·널빤지 따위에 글을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이 눈길을 끈다. ㄱ자 형태의 목제 기와지붕을 얹은 본채와 단층 홑처마 팔작지붕의 이 고아한 건물은 간송 선생이 생전에 살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간송 옛집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채 관리되어오던 것을 도봉구가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위해 지역 문화자원들을 발굴하던 중 발견해 2012년 12월1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21호로 등재한 곳이다. 도봉구는 이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많이 손상돼 있던 이 옛집을 복원해 2014년 9월11일 개관했다.

문화유산 수호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선생의 일화는 유명하다. 국보 제68호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한 푼도 깎지 않고 지금 가치로 100억원에 일본 골동품상에게서 사는가 하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모르고 적은 값을 부른 이에게는 제값을 다 주며 우리나라 유산의 품격을 지켜냈다.

간송 옛집이 더 빛나는 이유는 이곳이 단순한 관람용 고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간송 옛집 안팎에서는 간송 선생의 문화재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문화로 엮어가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안채에서는 도봉구 주민 자수모임 ‘슈지치(자수를 놓다는 뜻의 옛말) 동아리’ 회원들이 고서화를 펼쳐놓고 옷감에 수를 놓고 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 뜰에 나가보면 마을교과서를 들고 마을여행차 이 고풍스러운 옛집에 들른 학생들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 최고의 부자로 가산의 대부분을 문화재 보존과 연구에 쏟아부었던 간송의 정신이 이렇게 생활 속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와닿아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 짓게 된다.

도봉구는 올해 문화재청의 생생문화재 사업에 당선돼 문화재 체험프로그램 ‘문화보국(文化保國), 함께 걷는 간송의 길’을 진행하고 있다. 5월 진행된 ‘간송 야행(夜幸)’에서는 간송의 삶과 간송 옛집, 간송 소장 문화재를 함께 감상하고 다도도 익혀보았다. ‘간송 야행’은 6월과 9월, 10월 세 차례 더 할 예정이다. 간송가의 종부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인 송리 김은영 매듭장의 ‘간송 전승매듭’, 청소년 역사·성장 프로그램 ‘간송 동행’도 마련됐다.


봄과 가을 저녁에 열리는 ‘간송 옛집 어울림 음악회’는 이미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됐다. 아름다운 조명이 밝혀진 고택 옆에서 펼쳐지는 음악회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스러움 속의 예술’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송은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라는 스승 오세창 선생의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한다. 문화에 대한 이런 간송의 정신은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그릇’이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그릇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간송 옛집은 그 그릇에 어떻게 현대의 정신과 문화를 담아 이어갈 것인지 조용히 함께 생각할 시간을 제공한다. 간송 옛집에는 여전히 간송의 숨결이 가득하다.

이주영 도봉구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도봉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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