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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후암동에 처음 왔을 때 진짜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이었죠. 뷰(풍경) 하나 보고 너무 좋아 가게를 내야겠다 싶었어요.” 포토그래퍼 이민아(여·33)씨는 지난 4월 후암동 꼭대기(신흥로20길)에 ‘임금님네 사진관’을 열었다. “거제에 계신 아빠가 올라와서 집을 같이 디자인했어요. 아빠가 조선소 감독관이었거든요.” 좁고 낡은 건물이 부녀의 손길이 거쳐 작은 카페와 옥탑 스튜디오를 가진 매력적인 공간이 됐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오면 너무 재밌어해요.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사진관 인근에는 가수 정엽이 차렸다고 알려진 카페가 있다. 이른 더위 덕분에 실내는 늘 만원이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옥상(루프탑)을 들러야 하는데, 커피를 들고 오르는 계단이 조금 위태롭지만 그만큼 더 크고 아름다운 하늘이 당신을 기다린다. 난간 앞으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뒤로 N서울타워(남산타워)가 지척이다. 내려다본 후암동 언덕 곳곳에 루프탑 공사가 한창이니, 대세는 대세인가보다.
카페를 나서다가 마실 나온 개그맨 노홍철씨를 만났다. 마침 챙겼던 그가 쓴 책 <철든 책방>을 꺼내 사인을 부탁하니 “아하하하! 좋아, 가는 거야! 지치지 마시고 늘 긍정적으로 파이팅이요!”라는 긴 사인을 해준다. 노씨는 몇 해 전 해방촌 신흥시장에 동네서점 ‘철든 책방’을 열었고 최근 후암동에 ‘철든가정식책방’을 추가했다. 왜 후암동이냐 물었더니 “일단 신흥시장 건물이 너무 추웠어요. 또 언젠가부터 시장에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젠트리피케이션 걱정도 되고….”
후암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건 최근 2~3년 사이의 일이다. 범이태원 상권이 경리단길, 해방촌을 거쳐 이곳까지 확대됐다. 관에서도 나서서 후암동 골목길을 정비한다. 일부러 찾아오기도 힘들었던 곳에 새로운 것을 쫓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실 후암동은 새로운 동네가 아니다. 이미 100년 전 역사의 아픔을 겪으며 생겼다. 1908년 용산에 일본군 병영이 들어서면서 도성과 병영을 잇는 삼판로(현 후암로)가 놓였고 1921년 조선은행 사택이 후암동에 들어섰다. 보육원과 소학교, 중학교가 생긴 뒤 1930년대에는 서울의 대표적 문화주택지가 되었고 일본인 거주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후암동은 일인들이 모여 살던 일종의 ‘신도시’였던 셈이다.
해방이 되고 일인들이 나가자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물들과 도시 난민, 북에서 온 월남인들이 빈 곳을 두루 차지했다. 이후 오랜 개발시대를 거치면서도 마을에 큰 변화가 없었으니 남산과 미군부대가 후암동을 빙 둘러싼 탓이다. 일인들이 거주했던 이른바 ‘문화주택’도 300여 채 남아 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문화주택 답사를 권한다. 골목을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이쯤에서 걱정이 앞선다. 후암동은 그 ‘오래됨’을 얼마나 간직할 수 있을까?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 주택을 고쳐 살고 있는 한 주민에게 건물 보존에 관해 물었다. 사는 사람들은 불편해서 안 된단다.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 오래됨을 간직할 방법을. 그래야 새로운 것들이 이곳에서 다시 생겨날 수 있을 터다.
김재훈 용산구 홍보담당관 주무관 사진 용산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김재훈 용산구 홍보담당관 주무관 사진 용산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