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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48년 정부 수립일 중앙청 포착
2대, 부식 심한 필름 “안타까워”
“카메라 늘 소지, 역사적 장면 포착”
2대, 일본 잡지 의뢰로 광화문 촬영
“때려부수는 게 능사는 아닌데…”
3대 “다채로운 행사 자유로워 보여”
선대가 찍은 평화의 집 촬영하고
북한 건축·도시 사진 찍고 싶어
1954년 8월15일 1대 임인식 사진가가 찍은 세종로 주변 항공사진. 1950년 터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심 모습이다. 1926년 세운 옛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 뒤로 답답하게 가려진 경복궁 근정전과 북악산의 산세가 보인다. 이 일대 파괴가 유독 심각했다. 국가기록원이 발표한 ‘전후 민간인이 촬영한 최초 항공사진’으로 꼽힌다.
지난 10월25일 오후, 청암사진연구소 캐비닛에 다시 가을이 스몄다. 지는 낙엽처럼 갈변한 필름들이 위태롭긴 지난해와 마찬가지다. 2대 사진가 임정의(73)가 그 가운데 하나를 기자의 눈에 가까이 들어 보였다. 부식된 필름 속에선 수백 명 사람이 누렇게 변한 귀퉁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하던 날 중앙청 광장(현 광화문광장)이에요. 끝이 누렇지요. 삭는 거예요. 역사의 한 조각이 또 사라지는 거예요.”
반으로 나뉜 가족, 부서진 광장
1대 사진가 임인식(1920~1998)은 평안북도 정주의 한학자 아들로 태어났다. 라이카, 롤레이코드(롤라이코드) 등의 카메라를 일찍이 손에 넣었던 20대 청년은 서울을 ‘사진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도시라 생각했다. 1944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이주한 임인식은 곧 용산구 삼각지 부근에 ‘한미사진기점’을 차린다. 해방과 함께 그의 사진기점은 분주히 돌아갔다.
“1948년 남과 북이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정부를 세웠잖아요. 남한에선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고 광복 3주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기념행사가 열렸어요.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닌 아버지가 그 역사적인 장면을 담을 수 있었죠.” 2대 사진가 임정의가 설명했다.
1948년, 거리는 심상치 않았다. 조선 시대 주요 관아가 있던 육조 거리는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다가 이제 냉전과 대립의 전조가 깃들어 싸늘했다. “그리고 전쟁 후 분단이 되었어요. 아버지는 다시는 부모님을 못 보셨어요. 그게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에게는 천추의 한이었지요.”
1948년 8월15일 1대 임인식 사진가가 찍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행사. 1945년 8·15광복 후 미군정 아래에 서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가 ‘경축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 적힌 구조물 밑으로 행진하고 있다. 당시 용산구 삼각지 부근에서 ‘한미사진기점’을 운영한 임인식의 앵글에는 이 같은 해방 공간 서울이 자주 담겼다. 같은 해 9월9일 북에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들어서고, 1950년 6·25전쟁과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체결로 한반도는 둘로 갈려 오늘날에 이른다.
1950년 6·25 전쟁 때 국방부 사진대장으로 종군했다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봄에 군에서 나온 임인식은 남대문로에 ‘대한사진통신사’를 열어 사진 기록을 이어갔다. 한반도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이듬해 1954년 8월15일, 임인식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 촬영차 신설동에서 경비행기 엘나인틴(L-19)을 타고 상공에 올랐는데, 폭격으로 파괴된 광화문 주변과 세종로 일대까지 날아다니며 촬영하기도 했다. 이는 국가기록원이 발표한 ‘전후 민간인이 촬영한 최초 항공사진’으로 남았다.
군사정권 광장과 ‘광화문 아치’
1961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도시에 파격적인 높이와 생김새를 가진 ‘쌍둥이빌딩’이 들어서며 세종로 일대가 일제히 재구성된다. 현재 광화문 동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이 들어선 건물로, 이는 세종로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힌다.
“일명 ‘박스형 건물들’ 말이에요. 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 군사정권 아래 모던하게 생긴 고층 빌딩이 세종로에 의도적으로 들어설 때거든요. 68년 이순신 동상이 들어서고, 72년 화재로 시민회관이 사라지고, 78년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섭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앞두고서는 세종로 일대 도시 경관이 급속히 바뀌었죠. 그때 일본 건축잡지 <닛케이 아키텍처>에서 나한테 세종로 주변 빌딩과 외국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서울 건축물들을 촬영해달라며 의뢰해온 적이 있어요.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던 시대예요. 앵글이 경무대(청와대) 쪽으로만 가도 귀찮게 단속했으니까요.”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코리아헤럴드> 사진기자로, 또 건축사진 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임정의에게 ‘그 시절 광장’은 하나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 귀결한다.
“‘광화문 아치’ 말이죠. 당시 광장에 횡단보도가 없었어요. 사진기자로서 사명감이었을 거예요. 16차로 도로 속으로 들어가 중앙 분리선에 서서 아치를 찍었죠.” 1971년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광화문 아치’는 동아일보사 사옥(현 일민미술관)과 국제극장(현 동화면세점) 앞을 연결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취임 경축’이나 ‘조국수호 서울시민 행군대회’ 등의 구호와 ‘반공과 근대화’를 국민에게 주입하는 정부 선전 문구가 수시로 걸렸다. 아치는 1982년 철거됐다.
“정치 지형이 바뀔 때마다 광장 설계 도안이 바뀌는 모양을 수십 년 지켜봤어요. 우리 현대사에서 광화문광장이 그토록 상징적인 거지요. 공간과 건축물만큼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또 없다는 걸 위정자들은 알아요.” 지난 4월 서울시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했을 때도 임정의는 똑같이 혀를 찼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때마다 부수고 넓히고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두는 것 자체가 역사 보존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요.”
1973년 2대 임정의 사진가가 찍은 광화문광장. 군사정권의 주입식 구호를 수시로 내걸었던 광화문 아치 뒤로 이순신 동상과 옛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가 축을 이뤘다.
분단선 너머 자유평화의 광장으로
지금 광장에선 ‘촛불항쟁’ 2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2016년 10월 점화했던 촛불이 2017년 3월10일까지 쉼 없이 번졌다. 누적 집계로 1600만 명 넘는 시민이 광장을 행진하고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를 지켜봤다.
1대 사진가 임인식이 1948년 8월15일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행사를 촬영한 지 70여 년 만이다. 2018년 가을 광화문광장에 선 3대 사진가 임준영(42)은 “화려하고 복잡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 속 광화문광장에선 정부 주도 행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시민 주도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는 풍경이 자유롭다”고 말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한 촬영기술의 진보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가늠하게 하는 말이다.
오늘날 광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천만 명을 웃도는 서울 인구가 광화문광장을 오간다. 촛불항쟁이 낳은 문재인 정부는 지난 4월 ‘판문점선언’과 함께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이런 꾸준한 남북교류 기조 속에서 사진가로서 임준영은 일종의 ‘억울함’을 가진 듯하다.
“북한 건축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외국 사진작가들의 시선으로만 구경하고 있어요. 같은 언어를 쓰고, 가까이 사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3대 사진가 임준영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선대가 먼저 다녀가셨던 판문점 평화의 집을 촬영하는 것, 그리고 분단선 넘어 북한을 자유롭게 촬영하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건축과 도시를 작업하는 건축 전문 사진작가로서, 서울과 평양이란 도시를 같이 작업할 날이 곧 오겠지요?”
임준영의 ‘억울함’이 곧 풀릴 수 있기를 역사의 현장 광화문광장에 서서 기원해본다. <끝>
2018년 3대 임준영 사진작가의 광화문광장. 임 작가는 ‘1950+2018’이란 단어로 작품을 설명했다. 1대 사진가 임인식의 광장과 사람들, 임인식이 평생 애틋해한 가족의 이미지들을 3대 임준영 본인의 광장에 콜라주 형식으로 녹였다.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며 “(연재는 끝났지만) 희망으로 가는 길”은 계속되리라 믿는다는 그다.
기획·글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청암사진연구소·임준영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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