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유재하·김현식·김정호·최병걸…요절의 계절

11월 낙엽 따라 가버린 가수들 上

등록 : 2018-11-15 15:01 수정 : 2018-11-16 13:59

크게 작게

11월에 사망한 가객 유난히 많아

유재하 떠난 딱 3년 뒤 김현식도

포크에 국악 접목한 김정호도 33살에

‘찬비’의 최병걸도 38살 이른 나이에

유재하, 유작 독집<사랑하기 때문에>초반과 재반 재킷.

만추의 11월이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한동안 11월은 연예인들이 몸조심해야 된다는 ‘괴담’이 널리 퍼졌다. 11월에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한 연예인이 많아서 생긴 말이다. 실제로 11월에 세상을 떠난 중요 대중가수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11월에 우리 곁을 떠나 별이 된 가객들의 유작 LP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11월을 여는 첫날인 1일부터 걸출한 뮤지션이 2명이나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1987년 유재하에 이어 3년 후인 1990년 김현식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뒤를 이으면서 ‘11월 괴담’이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1987년 11월1일, 유재하는 서울 강변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스물다섯 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록 생전에는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아름다운 음반 한 장을 남겼기 때문이다. 한양대 음대 작곡과 출신의 순수음악도가 대중가수로 변신한 것도 평범치 않았다.

유재하는 데뷔 음반이 곧 유작 음반이 된 비운의 가수다. 유재하의 노래들은 여자친구와의 만남부터 몇 번의 헤어짐과 재회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담은 솔직한 연애 일기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가왕 조용필은 유재하가 만든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를 가장 먼저 녹음하며 그의 음악성을 알아봤다. 스산한 늦가을에 제격인 유재하의 유작 음반은 최근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들국화 1집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선정되며 존재감을 더했다.


유재하 독집의 초반은 1987년에 1천 장 정도를 발매했는데, 타이틀곡 ‘사랑하기 때문에’의 글자를 담배 연기로 디자인한 독특한 그림 재킷이었다. 이 음반에는 발매일을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았다. 수록 곡들의 녹음 번호로 미뤄, 총 9곡 중 8곡을 1987년 3월에 녹음했고, ‘가려진 길’은 4월에 녹음했음을 알 수 있다. 초반 커버 디자인이 유재하의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발매된 LP는 회색 콘크리트에 기댄 유재하의 사진과 “87. 夏”라는 글자를 넣어 디자인을 수정했다. 그런데 이 음반의 초반이 1987년 여름이 아닌, 녹음이 끝난 5월 즈음에 발매된 증거가 있다. 필자가 소장한 초반 재킷의 뒷면에 유재하가 친필로 쓴 사인에는 ‘87. 5. 19’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이 된 유재하가 너무도 쓸쓸해 3년 뒤 같은 달 같은 날에 선배 김현식을 데려갔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마의 11월 괴담설’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절친한 음악 선후배 사이였고 밤을 새워 음악과 인생을 논했던 술친구이기도 했다. ‘사랑의 가객’이라 하는 김현식은 뜨겁게 사랑을 노래하고 훌쩍 떠났다. 삶의 굴곡이 많았던 그는 성공과 좌절을 반복했다. 대마초 사건은 그를 정점에서 끌어내렸지만 숱한 명곡을 발표했다. 하지만 술과 담배로 자신을 혹사한 대가는 가혹했다. 병상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현식은 간 경화로 1990년 11월1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사후인 1991년에 발매돼 김현식의 유작 앨범이 된 6집과 타이틀곡 ‘내 사랑 내 곁에’는 그가 생전에 경험하지 못한 아낌없는 찬사와 호응을 끌어내며 자신을 영원히 추모하게 했다.

김현식, 1991년 유작 6집과 추모 음반 <하나로>재킷.

유재하와 김현식은 사후에 더욱 조명받았다. 1991년 제3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참가자들. 같은 해 김현식 1주기 추모 공연.

유재하와 김현식처럼 11월에 3년 간극으로 별이 된 가수가 2명 더 있다. 김정호와 최병걸이다. 1985년 11월29일 포크 가수 김정호는 33세의 아까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틱하게 짧은 삶을 살다 간 그의 등장은 70년대 대중음악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그가 만들고 노래한 수많은 노래는 젊은 학생층에 국한됐던 기존의 포크송 수요층을 온 국민으로 대상 영역을 넓히면서 시대정신이 되었다. 당시 유니버샬레코드사는 젊은 층을 겨냥해 기획한 ‘영 훼밀리’ 옴니버스 시리즈 음반 1집부터 5집까지(3집을 제외한) 모든 재킷 표지를 김정호의 사진으로 장식했다. 당시 그의 대중적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보여준다.

유난히 슬펐던 김정호의 노래들은 한의 정서를 담은 국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마초 흡연으로 활동이 금지된 좌절의 시간 동안 그는 인생을 성찰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진짜 소리를 찾는 창작 활동에 몰두했다. 5년 만에 맛본 해금의 달콤함도 잠깐이었다. 늘 심신을 힘들게 했던 결핵균보다 강하게 꿈틀거렸던 음악에 대한 그의 피 끓는 열정은 명곡 탄생과 더불어 자신을 사지로 모는 건강 악화를 불러왔다.

1983년 11월에 발표된 그의 유작 음반 LIFE는 피를 쏟아내며 발표한 마지막 정규 음반이다. 그의 마지막 히트곡인 타이틀곡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도 인천 결핵 요양원에서 안개가 자욱한 송도 해변을 걷는 한 여인의 모습에서 느낀 슬픔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또한 음반에 수록된 ‘님’ 등은 많은 후배 가수들의 창법에 영향을 끼친 김정호 특유의 애절한 샤우팅 창법의 전형을 제시했다. 사후에 선후배 가수들로부터 헌정 음반을 받으며, 국내 가수로는 최초로 헌정 음반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김정호가 별이 되어 떠난 3년 뒤인 1988년 11월7일. 70년대의 인기 가수 최병걸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에 데뷔해 ‘난 정말 몰랐었네’, 정소녀와 함께 불렀던 ‘그 사람’ 등 무수한 히트곡을 남긴 최병걸은 호남형의 외모로 여성 팬층이 두꺼웠다. 그의 대표곡 ‘난 정말 몰랐었네’는 1978년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5주 연속 1위에 오르며 그에게 그해 MBC, TBC 10대 가수상을 안겨준 공전의 히트곡이다.

김정호, 유작 추모 음반들과 ‘영 훼밀리’커버 모델 음반들.

김정호, 18주기 청개구리 추모 공연. 2003년 11월 서울YWCA 마루홀.

1970년대 한국 영화음악 작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최병걸은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와 아류작인 이유섭 감독의 <춘자의 사랑 이야기>의 주제가를 불렀다. 비록 개봉 일주일 만에 간판을 내렸지만 <춘자의 사랑 이야기>의 주제가 ‘찬비’는 생전에 고인이 자신의 노래 중 최고작이라 자평했을 만큼 애절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광고모델 한계순과 결혼했던 최병걸은 80년대 이후 노래보다는 창작에 더 몰두했지만 간암 말기로 수술도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후에 더욱 조명받았던 유재하, 김현식, 김정호와는 달리 최병걸은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아쉬움을 더한다.

최병걸, 정소녀와 함께한 대표작과 ‘찬비’가 수록된 LP 재킷.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