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어르신 국수데이…가족합창단은 벽 허물어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① 성북구 길음1동 ‘소리마을’

등록 : 2018-12-06 15:36 수정 : 2018-12-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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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언니” 또는 “왕언니”로 불러

주민공동체위, 매달 한 차례 운영회의

2013년 소리마을센터 개관 이어져

2년 전부터 홀몸노인 500원 국수 대접

센터 2층은 초·중·고생 만남의 장소

느린 학습자에 학습 도와주기도

3년 전 합창단 구성, 화합의 노래

어린이 환경운동 ‘에봉이’ 동아리도


성북구 길음1동 소리마을 주민공동체운영위원들이 4일 주민커뮤니티센터에서 ‘소리마을’이라고 적힌 부채를 들고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삐이걱, 아침을 여는 철대문 소리와 함께 커피믹스 한 잔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달달한 성북구 길음1동 ‘소리마을’로 달려가보자.

대문을 열어놓고 지낼 만큼 사람이 오가는 것을 반기는 마을, 골목길에서 나이가 많은 할머니를 “언니야, 왕언니야!”라고 부를 만큼 이웃을 가족처럼 여긴다.

주민공동체운영위원회가 2011년부터 주민커뮤니티센터 설립을 준비하면서 마을 주민 16명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민공동체운영위는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마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운영회의를 매월 1회씩 열었다. 이런 노력은 2013년 소리마을센터를 개관해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소리마을 주민공동체는 주민들의 관계 형성, 마을을 마을답게 유지해 나가기 위한 주체적 활동을 도모해오고 있으며, 소리마을센터는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좋은 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마을에 1인 가구와 노령 가구가 늘어나는 문제를 고민하던 중 건강한 모임을 생각하게 됐다. 주민공동체 운영회의 결과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혼자 식사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함께 식사하며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데 의미를 뒀다. 메뉴를 어르신들이 가볍게 드실 수 있는 국수로 결정해 ‘국수데이’가 탄생했다.

소리마을에서 30~40년 동안 살아온 어머님들의 자발적 참여로 봉사단체인 가족봉사단을 만들었다. 13명의 봉사자들은 2016년 3월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날 때면 “오늘 국수 하나” 물으시는 할머님들을 대할 때마다 “국수 데이는 수요일, 수요일은 국수데이”를 외쳤더니, 마을의 대표 인사말이 됐다.

봉사단은 하루 전날 장을 보고 9시부터 육수를 준비하고 국수를 삶으니, 멸치와 다시마 육수의 구수한 냄새에 어르신들이 소리마을 ‘대문’을 두드린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오실까? 혹시 못 드시고 가는 어르신이 있지 않을까? 봉사단들은 행복한 걱정을 뒤로하고 준비한 국수 채반을 살핀다. 맛나게 드시는 모습에 흐뭇하다. 국수데이 하루만큼은 따뜻한 웃음으로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국숫값은 500원이지만, 그냥 드셔도 돼요.” “어데, 내 친구 꺼하고 여기 천원이다.” 꼬깃꼬깃 접은 천 원 한 장으로 친구와 함께 정을 나누시는 모습이 든든해 보인다. 국숫값 500원은 어르신들의 식사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정했다. 수익금은 매년 12월 마을의 어려운 학생 2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된다.

어느 맑은 날 남은 밥과 나물을 가져와 마을 골목 평상에서 비빔밥으로, 궂은 날은 부침개로, 여름이면 더위를 이기시라고 삼계탕 잔치로 따스한 마음 한 자락씩 나눈다. 반짝이는 웃음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소리마을은 오늘도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주민커뮤니티센터 2층에 있는 소리마을 작은도서관은 초·중·고등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방앗간’인 작은도서관은 느린 학습자 아이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고등학생들이 돌봐주고, 외동이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언니나 형이 되어 함께 놀아준다. 2년 전부터 중학생 동아리인 ‘우리는 중이야!’는 마을카페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에게 쿠키 만드는 법을 배워 고3 선배들에게 수능대박 쿠키를 만들어 전달했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잠시나마 도서관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으며, 책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뒹굴뒹굴 수다를 떨며 숙제를 하고 가끔은 주먹밥으로, 떡꼬치로 출출한 배를 해결한다. 도서관은 아이의 쉼터 기능까지 함께하고 있다.

‘소리마을가족합창’은 3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고, 오늘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가족합창단의 노랫소리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아파트와 단독주택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처음 시작은 한두 가정씩 모이는 정도였지만 점점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마을 소공원에서, 마을 축제로 점점 퍼져나갔다. 아이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가족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족애가 두터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에봉이’(에너지를 절약하여 봉사하는 어린이) 동아리를 3년 전부터 시작했다. 에봉이는 정기적인 모임으로 매달 환경 관련 주제를 놓고 아이들 입장에서 토론한다. 또 가정에 한 달 전기사용량을 비교해 가장 많이 절약한 가정에는 작은 선물을 준다. 아이들은 주변 상가나 공원 또는 마을 축제 때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며 어릴 적부터 에너지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소리마을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각자의 에너지 통장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올해는 앵두주 담겠는걸! 실하게 열렸네.” 자발적으로 골목을 청소하는 깔끔이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입양’해온 앵두나무에 온 정성을 쏟고, 골목마다 버려진 화분에 꽃을 심어 쓰레기 문제로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골목을 관리한다. 밤에 어두운 골목을 돌아보시는 ‘맥가이버’씨는 소리마을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을 주민들은 매일매일 이런 작은 실천을 함께하며 봉사의 기쁨과 이웃의 발견으로, 서로의 관심과 눈길로 안전한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좋은 마을이 의외로 가까이 있음을 실감한다. 앞으로도 작은 실천으로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을이 되도록 솔선수범할 것이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웃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힘쓰는 소리마을은 계약 기간만 살고 떠나가는 임대의 삶이 아니라, 마을에서 가족의 사랑을 맛보며 살아가는 정착하는 삶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소리마을에 들어서는 빌라에 ‘소리마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협의하여 함께하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과 참여를 갖도록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마을의 구석에 자투리 공터를 소리마을 쉼터로 조성하고 마을 안에 주민운동시설을 확보해 함께 운동하며, 좋은 날에는 시원한 막걸리와 부침개를 나누며 햇살을 보약 삼아 서로 등 두드리며 건강을 챙기는 모습은 저절로 미소 짓게 한다.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내어놓고 작은 시간을 모아 마을에 필요한 손길이 되어 봉사하고 있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살면서 매일 좋을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을 열기까지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떠나는 삶이 아닌 정착하는 마을로 다음 세대에 소리마을의 좋은 소리를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은 마음, 여기는 길한 소리가 들리는 소리마을 주민공동체다.


운영위원 평균 나이 70살…“성취감도 즐거움도 함께”

현장심사 | 정은영, 조현진 활동가

2017년 9월22일 소리마을 주민과 운영위원들이 추석을 맞아 비빔밥과 송편을 만들고 있다.(왼쪽) 지난 9월4일 소리마을 운영위원들이 꽃을 심고 있다. 소리마을 제공

소리마을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가 도시재생 지역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주민들의 활동 공간인 주민커뮤니티센터를 만들었다.

소리마을에는 60살 이상 노인 비율이 60%나 되는 곳으로, 운영위원들도 평균 나이 70살 정도이지만 활기차게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소리마을 주민들은 재개발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마을 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주민커뮤니티센터를 맡아 운영한다. 운영위원은 16명으로 그 외 분야별 자원봉사자가 40명 정도 있다. 월 1회 운영위원회 회의와 매주 수요일 국수데이에 함께 국수를 먹으며 소통한다. 서로의 갈등은 깊어지기 전에 미리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국수데이 자원봉사자들은 무급으로 일하지만, 주민들이 알아보고 인사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5년간 센터를 운영하면서 주민 스스로 운영비를 만들어내고 지역주민들이 봉사를 하면서 성취감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는 게 인상적이다. 센터 대표는 “커피 한 잔도 자기 돈으로 사서 먹는 봉사자들에게 어떻게 빚을 갚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봉사자 모두 상을 하나씩은 받게 돼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상금이 나오면, 실무자 컴퓨터를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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