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도 없는 곳에 어르신 차량 등장…마을 연결망의 ‘성과’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② 관악구 삼성동 ‘마을마차

등록 : 2018-12-06 15:42 수정 : 2018-12-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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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쪽방촌이 죽 늘어선 밤골

연로한 어르신들의 나들이 위해

동네 주민들과 청년 셋이 힘 합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마차 운행

운행 전 어르신들 의견 청취해

이용객은 ‘박카스’와 ‘우루사’ 건네

서울시 청년 일자리 사업 덕에

청년 세 명 합류해 사업 촉진


지난 3일 관악구 삼성동의 주민공간 ‘마을활력소 행복나무’ 사무실에 마을마차를 운영하고 이용하는 주민들이 모였다. 마을마차를 타는 밤골 어르신들과 은빛사랑방 어르신들이 앞줄에 앉고, 뒷줄에는 마을마차 운영의 핵심 그룹인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준비위원회와 마을마차주민연구회 회원들이 어르신들을 든든하게 지키며 서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관악구 삼성동에는/ 일주일에 하루/ ‘마을마차’가 다닌다

마을버스도 안 다니는/ 산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복지관·병원·이웃사랑방으로

부지런히 오고가는/ 어르신들의 고마운 발/ ‘마을마차’

동네 교회에서 차를 내주고/ 청년 둘이서 함께 시작한/ 참 예쁜 이름 ‘마을마차’

일주일에 한 번씩 뵙는/ ‘마을마차’ 단골 어르신께서/ 오늘은 봉지에 박카스를 담아오셨다

함께 든 우루사 두 알을 보며/ 잠시 그 깊은 정에 울컥하고/ 오늘은 윤씨와 박씨가 정을 마신다

어르신 세 분이 병원 진료 중이라/ 잠시 나눔마당에서 쉬고 있는데/ 김씨 아주머니가 쑥떡을 내오신다

어젯밤에 만든 쑥떡과/ 정성 들여 담근 식혜로/ 시장한 배를 채웠다.

어르신들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 모퉁이 벽화 속/ 예쁜 그림과 시가 웃고 있다.”

관악구 삼성동에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쪽방촌이 있다. 예전 난곡동 산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오갈 데 없어진 분들이 이곳으로 많이 넘어온 것이다. 아랫마을 시장에서부터 윗동네 밤골까지 복개천 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무허가 집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서로를 돌보는 주민이 있다. ‘마을마차’는 드러나지 않게 마을과 함께 살아온 이분들이 연결돼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 주민분들을 자랑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됐다.

이곳과 인연이 닿은 건,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가 기획한 서울시 청년 일자리 민관 협력 사업 덕분이다. 노인건강돌봄청년코디네이터라는 색다른 이름에 끌려 이곳에 들어온 세 청년의 미션은 6개월간 어르신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듣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을에서 그것을 실현해보는 일이었다.

관악에 의료복지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계신 조계성님과 정유미님의 소개로 제일 먼저 인사 나눈 분은 김순복님이다. 40여 년을 이곳 주민으로 살면서 어르신들이 스스로 뭔가 해볼 수 있는 자활 모임이자 공간인 ‘은빛사랑방’을 꾸리는 데 앞장서오신 분이다. 10년여를 이어온 은빛사랑방에는 지금도 서른 분 정도의 어르신들이 짝꿍으로 이어져 서로를 돌보고 계신다.

청년들에게 마을에 머물 거점을 제공해주신 차정규님은 지역에서 2대째 살고 계신 목사님이신데, 마을분들에게 예수 믿으라고는 안 하시고 주로 홀몸어르신들을 찾아뵈면서 곤란한 일들이 생기면 해결해드린다. 세탁기가 고장나면 어디선가 중고 세탁기를 얻어와서 바꿔주시거나, 수도관이 얼면 뛰어가서 녹이고 뚫고 하신다. 목사님과 함께 어르신들 자조 공간 ‘안나의 집’을 운영하시는 장미화 부목사님도 빼놓을 수 없다.

청년들 거점인 ‘친구들 센터’라는 공간을 시작하기로 첫마음을 낸 건 배홍일 목사님이다. 또, 동네모임 ‘깨쏟동’(깨가 쏟아지는 동네)의 전 간사인 박경란님도 줄곧 조언과 관심을 나눠주신 멘토이다. 박경란님의 소개로 밤골 통장님을 만났다.

밤골 허창무 통장님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좁다란 길에 놓인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시간여 동안, 길을 지나는 주민들과 일일이 안부 나누고 수다를 떠시는데, ‘아 여기가 정말 서울이 맞나’ 싶었다. 지금은 120가구 중 65가구 정도만 남아 있지만 한분 한분 일일이 챙기시는 모습에서 ‘이런 분이 동장님이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야말로 이 지역의 주민 전문가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이웃과 함께하며 수 년에서 수십 년 간 바쁘게 살아온 이분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계기가 바로 마을마차다.

저희 청년 세 명이 삼성동에 들어왔던 목적, 즉 어르신들에게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알아보던 중에 밤골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89살이신데, 허리 수술로 철심 네 개를 넣은 뒤로는 거동이 불편해서 운동 삼아 집 근처만 왔다 갔다 하신다고 했다. 할머니가 계셔서 다행이지, 어쩌다 병원에 또 약국에 약이라도 타러 가려면 밤골 초입 딸깍고개에서만 열 번은 쉬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밤골의 위치는 독특하다. 마을버스가 돌아나가는 성림교회에서부터 밤골까지 오르는 500m는 경사져 있는데, 어르신들이 시장으로 병원으로 마실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마을버스가 닿지 않는 이곳까지 어르신들의 발이 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김순복님께 말씀드리니 그동안 여러 번 마을버스 노선을 요청했지만 도로폭이 좁아 안 된다는 결론이 났고, 몇 년 전에는 주민참여예산 쪽으로 마을마차를 응모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차정규 목사님은 다마스 같은 차량이면 어떻겠느냐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셨고 허창무 통장님도 그동안 밤골에 그런 교통수단이 있으면 했지만 여력이 안 돼 시도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청년들이 들어와서 해주면 고맙겠다고 하셨다.

내친김에 ‘마을마차 주민연구회’를 결성했다. 두 달간 세 차례 모여서 차량 형태·운행 방식과 서비스 범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밤골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표적집단면접조사(FGI)로 구체화하고, 장위동 도시재생센터로 찾아가 거점연계버스 운영 경험을 공유받기도 했다.

6개월의 사업 기간이 끝나 저희 세 청년 중 둘은 취업을 했다. 청년 중 한명인 김명철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을을 오가던 중, 차정규 목사님께 사회사업을 배우고자 일주일에 이틀을 삼성동에서 봉사하시기로 한 사현준님을 소개받았다. 이어 차 목사님이 11인승 교회 차를 내주시고, 사현준님이 운전사로, 제가 안전도우미로 매주 화요일마다 마을마차 운행을 시작했다.

오전 9시40분 은빛사랑방에서 출발한 마차는 밤골 인근 나눔터 체조교실로 어르신들을 모신다. 이후 병원 가시는 밤골 어르신들을 태우고 신림사거리나 더 먼 곳 병원까지 간다. 체조 마친 어르신들을 식사시간에 맞춰 복지관으로 모시고, 병원에서 진료 마치길 기다렸다 다시 모시고 오거나, 오후에 병원 등에 가시려는 어르신과 시간 약속을 하고 운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달린 지 8개월이 되었다. 사고가 날 경우 책임 소재 등의 문제로 아직 기존 관계망에 계신 어르신들 위주로 운행하는 한계가 있지만, 이젠 동네에서도 저희 존재를 아시는 분이 입소문으로 늘어간다. 지난달부터는 마을마차의 운영을 관악건강돌봄네트워크에서 맡는 것으로 하였고, 네트워크 회원 중 한 기관에서 몇 분의 어르신들을 더 소개해주시기로 했다. 여건이 허락되는 한 더 많은 어르신들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마을마차가 달릴 수 있는 건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주민분들의 마음과 노력이 있었고,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차, 달리는 공동체 공간”

현장심사 | 구자인, 김현주 활동가

지난 3일 삼성동 ‘마을활력소 행복나무’ 앞에서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마을마차에서 내린다.(왼쪽) 2017년 11월28일 마을마차 운영의 핵심 주체인 마을마차주민연구회 회원들이 관악구 신림동 공동체 공간 ‘나눔센터친구들’에서 마을마차 운영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마을마차주민연구회 제공

마을마차의 경우 119구급차조차 들어오기 어려운 가파른 동네에서 나이가 많아 이동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발이 돼왔다. 애초 뉴딜 일자리로 시작했지만, 그 사업이 끝난 뒤에도 청년과 마을 주민 11명이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마을마차 운영을 위한 정기회의를 열고, 차와 기름값 확보, 어르신 동행 등 각자의 일을 나누어 맡고 있다.

이 사업을 제안해 운영하고 있는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준) 소속 김명철씨는 “학생, 군대, 직장인일 때 행복하고 즐겁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마을마차를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정말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하는 가치 있는 활동이 금전적으로 보상되지 않아도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나씩 꾸려나가는 활동들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차 관계자들은 “재개발이 되면 없는 사람은 정말 더 못살게 된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재개발이 되더라도 이웃들이 흩어지지 않고 얼굴 보고 살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함께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을마차 또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위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달리는 공동체 공간’이라 평가할 만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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