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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 하다보면
새벽부터 빈속에 일하느라
아침 9시만 되면 꼬르륵
점심 한 끼 해결할 시간이 소중
12일 오전 11시께 영동 스낵카 기사식당 주차장에 택시들이 주차돼 있다.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점심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택시 기사들에게 점심시간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새벽부터 일하면 화장실도 가고 싶고, 무엇보다 새벽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나온 날이면 아침 9시만 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우선 주차하기 편해야 한다. 다음으로 값싸고 푸짐해야 한다. 여기에 맛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택시 운전 첫날인 2018년 12월11일, 오전 11시께 말썽을 일으켰던 카드결제기를 고치고 나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택시 기사가 된 이상 기사답게 기사식당을 찾아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살펴봤지만, 기사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기사식당’이라고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도 제대로 나오는 곳이 없었다. 이날은 어딘지도 잘 알 수 없는 2차선 도로변에 있는 일반 식당 앞에 택시를 세워놓고 한 끼를 해결했다.
택시 기사들이 항상 ‘기사식당’이란 간판이 붙은 곳에서만 밥을 먹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있는 위치나 승객 유무 등 상황에 따라 식사 장소를 결정한다. 주위에 기사식당이 없을 때 적당한 골목을 찾아 들어가다 가끔 괜찮은 음식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날 저녁, 회사에 돌아와 다른 기사들에게 물었더니, 기사식당 몇 곳을 알려줬다.
싸고 맛있는 수유동 ‘다래 함박스텍’ 둘째 날인 12월12일, 오전 11시께 손님을 태우고 강북구 수유동 부근으로 갔다. 수유동에 있는 기사식당 거리에는 햄버그스테이크로 유명한 ‘다래 함박스텍’이 있다. 돈가스, 생선가스, 오므라이스가 5천원(곱빼기 6500원)이다. 점심을 먹으러 다래 함박스텍으로 가는 도중에 손님 태우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12시가 넘자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도 못 본 척 그냥 점심을 먹으러 달렸다.
싸고 맛있는 수유동 ‘다래 함박스텍’ 둘째 날인 12월12일, 오전 11시께 손님을 태우고 강북구 수유동 부근으로 갔다. 수유동에 있는 기사식당 거리에는 햄버그스테이크로 유명한 ‘다래 함박스텍’이 있다. 돈가스, 생선가스, 오므라이스가 5천원(곱빼기 6500원)이다. 점심을 먹으러 다래 함박스텍으로 가는 도중에 손님 태우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12시가 넘자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도 못 본 척 그냥 점심을 먹으러 달렸다.
강북구 수유동 다래 함박스텍
겨우 다래 함박스텍에 도착했지만, 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이웃한 기사식당에서 자반조림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사납금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래 함박스텍은 소문이 난 이후 기사들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찾는다.
택시 체험이 끝난 뒤인 지난 11일 다시 찾아가서 먹어본 다래 함박스텍은 달달한 맛을 매콤한 맛이 잘 잡아줘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수유동 기사식당 거리는 수유사거리에서 우이신설선 화계역 쪽으로 직진하다가 수유로와 교차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나온다. 이곳에는 상다리 기사식당, 호남기사식당, 신빛고을 기사식당, 양자강 중화요리 기사식당, 전주기사식당 등 기사식당이 모여 있다.
다래 함박스텍의 햄버그 스테이크.
돼지불백 유명한 연남동 감나무집
마포구 연남동 ‘감나무집’은 돼지불백으로 유명하다. 20여 년 전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꾼들을 위한 함바집을 운영한 게 시작이다. 처음에는 생선구이를 팔다가 황태구이 등으로 주요 메뉴를 늘렸다. 2010년부터 돼지불백을 팔기 시작했는데 2013년 방송을 타면서 일반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10명 중 7명이 일반인이다.
마포구 연남동 감나무집
지난해 9월부터 8천원이던 돼지불백값이 9천원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손님이 많아 번호표를 받아야 먹을 수 있지만, 기사들은 번호표 없이 합석해서 빨리 먹고 갈 수 있도록 한다. 법인택시 기사 전용길(58)씨는 10일 “이 지역을 돌다가 시간이 맞을 때 가끔 온다”며 “비싼 것 빼고는 괜찮다”고 했다.
감나무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연남동 생선구이 기사식당으로 통하는 식당이 두 곳 있다. ‘시골집 할머니네’와 ‘연희동 할머니네’로 서로 원조를 자처하지만, 정작 식당을 이용하는 기사들은 어디가 원조인지 알기 힘들다고 했다. 시골집 할머니네는 7천원인데, 연희동 할머니네는 1천원 더 비싼 8천원이다. 개인택시 기사 곽파관(64)씨는 “40년 동안 택시 기사를 하는데, 맛이 괜찮다”고 했다. 그는 손으로 슬쩍 한 집을 가리키며 “이 집이 진짜 원조”라고 알려줬다.
몇 년 전만 해도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가 유명했다. 마포구 연남파출소에서 경의중앙선 철길을 건너 위쪽 도로변이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다. 하지만 경의선 숲길이 생기고 주위가 개발되면서 기사들보다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는 ‘연트럴파크’로 바뀌었다. 기사들은 택시를 주차하고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차장은 기사식당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경의선 숲길에는 기사들이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거의 없다. 한 택시 기사는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는 7~8년 전에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메뉴 다양한 대흥동 기사식당 거리
마포구 대흥동 기사식당들은 메뉴가 다양해 골라 먹을 수 있다. 서강대 후문에서 대흥동 사거리까지 영광모싯잎식당, 삼형제 육개장, 왕돈까스 동경육칼, 순이네 바지락, 재모식당, 양지분식 등이 도로변에 줄지어 있다. 이곳 식당들은 양으로 승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식값이 싸고 푸짐하다.
‘재모식당’은 돼지불백, 해장국, 순댓국, 돈가스가 5천원, 오징어볶음은 7천원, 동태찌개는 8천원이다. 이웃한 기사식당은 왕돈가스가 5500원, 보리밥+칼국수 6천원, 육개장칼국수 6천원, 비빔국수 4천원, 잔치국수 3500원, 제육비빔밥이 5천원으로 입맛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온 박평규 기사는 10일 “차고지가 근처 연희동이라서 가끔 온다”며 “칼국수를 먹었는데 맛있다”며 웃었다.
한티역 8번 출구 앞 영동스낵카
강남구 역삼동 한티역 8번 출구 앞 ‘영동 스낵카’는 버스를 특별 제작해 만든 스낵카로 여의도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던 1972년 무렵, 정부는 식당이 없어 공사 진행에 차질이 예상되자 국가유공자들에게 ‘이동 분식업’을 할 수 있는 스낵카 허가를 내줬다. 영동 스낵카는 1982년 학여울역에서 ‘쌍용 스낵카’로 영업하다가 1993년부터 현재 자리로 옮겨와 영동 스낵카로 지금까지 영업한다.
강남구 역삼동 스낵카 기사 식당
스낵카는 2015년 서울시로부터 역사성을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주차장에 전시돼 있다. 영동 스낵카는 바로 옆에 지은 건물로 옮겨 24시간 영업한다. 메뉴는 돼지불백과 비빔밥이 6천원, 김치찌개 5500원, 소불백, 북어찜, 콩비지가 7천원이다. 우동 4천원, 오뎅밥 5천원, 볶음밥 7천원, 짜장밥 5천원이다.
개인택시 기사 박용식(70)씨는 “맛은 거기서 거기지만 소불백과 북어찜을 이 가격에 하는 데는 없다”며 “강남 중심지에서 주차장이 넓고 주차하기 편해서 자주 온다”고 했다.
1972년에 허가받은 스낵카 13대 중에서 지금까지 진짜 스낵카에서 영업하는 곳은 딱 한 곳 있다.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에서 개나리아파트 사거리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도로변에 ‘스낵카 기사식당’이 있는데, 된장백반과 동태찌개가 6500원이다. 30년 가까이 택시 운전을 한 김아무개(73)씨는 “강남에는 택시 기사들이 차를 대놓고 식사할 곳이 마땅찮은데, 여기는 주차장도 있고 주문하면 5분도 안 돼 음식이 나와서 좋다”며 “동태찌개가 시원하고 맛있다”고 했다.
광진구 자양동 ‘송림식당’은 1982년 시작해 밥을 볶아 먹는 돼지불백 기사식당으로 유명하다. 돼지불백 8천원, 해장국·김찌찌개·된장찌개가 6500원이다. 고기를 익혀서 내어오는 감나무집과 달리 불판에 바로 구워서 밥과 함께 볶아 먹는다. 30년 경력의 택시 운전기사 황준호(65)씨는 “양껏 많이 먹을 수 있어 자주 온다”고 했다.
광진구 자양동 송림식당 돼지불백.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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