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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발표한 1집 90만원 호가
장르 파괴적 음악,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로버트 플랜트 영향을 많이 받아”
3집 다양한 음악 장르 척척 소화
정혜선 데뷔 무대인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모습. 1989년.
중고 음반 시장에서는 1970~80년대의 낯선 가수 음반이 인기 가수의 히트 음반보다 몇 곱절 비싼 값에 거래되곤 한다. 대부분 금지의 아픔이 선명하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이고 뛰어난 음악성을 지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발매할 때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를 빼앗겨 개체수가 희귀한 음반들이 이에 해당된다.
음반미디어가 LP에서 CD로 급격하게 전환되었던 1990년대에 발매된 이상은 6집 <공무도하가>, 유앤미블루의 정규 앨범, 넬의 인디 1집은 2000년대 들어 중고 음반 시장에서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최근 24년 만에 정규 3집을 발표하며 컴백한 정혜선의 앨범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그의 과거 앨범은 뒤늦게 재평가받으며 중고 음반 시장에서 각광받는다. 현재 정혜선의 1집 LP는 최대 90만원, 더 귀하다는 CD는 최대 30만원을 호가한다.
데뷔 시절 풋풋한 모습들. 1992년.
음악과 상관없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정혜선은 중학생 때 김광한, 김기덕, 전영혁, 배한성 등이 진행했던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록을 즐겨 들으며 성장했다. 성신여대 지리학과 86학번인 정씨는 1989년 우연히 학교 벽보판에서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포스터를 보았다. 떨어져도 그만이란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참가를 결심했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통기타와 통기타 교본을 구해 한 달 동안 독학했다. 자작곡 ‘나의 하늘’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주최 측에 제출해 예심을 통과했고 덜컥 은상까지 받았다. 대회 직후 발매된 기념음반에는 라이브가 아닌 조동익, 함춘호 등 전문 세션들과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버전이 수록되었다. 하나뮤직의 태동을 앞둔 1991년, 정혜선의 음악성을 알아본 심사위원 조동진이 ‘곡을 써오라’고 연락했다. 한 달 만에 만든 아홉 곡은 1992년 하나뮤직의 실질적 1호 앨범이 되어 LP, CD, 카세트테이프 3종 세트로 발매되었다. 앨범 발매 뒤 정혜선은 순수하면서도 원초적인 카리스마가 넘치는 ‘원조 음색 깡패'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수상곡 ‘나의 하늘’과 타이틀곡 ‘오, 왠지', 이국적인 느낌의 ‘해변에서’ 등 장르 파괴적 노래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문제작’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정혜선의 데뷔 앨범인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앨범 LP. 1989년.
‘여자 전인권’ ‘제2의 한영애’란 별명도 얻었던 정혜선은 “제 노래에 영향을 준 시조새는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1집은 “제작자 조원익씨가 제 음악은 최소 10년은 앞서간 것 같다고 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실물 구경이 어려운 정혜선 1집은 3만 장 정도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90년대는 무명 가수의 음반도 5만 장이 팔리지 못하면 주변에서 걱정했던 음반 최대 활황기였음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판매량은 아니다. 첫 독집 발매 후 김광석, 신애라, 김연주 등이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에 10여 회 정도 출연도 했다. 배우 이덕화가 진행했던 MBC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도 나가 ‘해변에서’를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대 90만원을 호가하는 정혜선의 희귀 정규 1집 LP. 1992년.
이후 1993년까지 하나뮤직에서 진행한 학전소극장 공연 등 각종 라이브 무대에 올랐다. 어느 날 조동진을 보러 정동극장 공연을 찾았던 사진작가 김중만이 정혜선의 노래를 듣고 반해 2집 제작을 제안했다. 비록 상업적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자기 음악에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이번에도 한 달 만에 속전속결로 아홉 곡을 만들었다. 1995년 제작된 2집은 스스로 ‘플라잉 창법’이라 하는 독특한 창법이 매력을 더하는 ‘꿈속의 꿈’과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담은 가사로 랩을 시도한 ‘아침신문’ 등이 담겼다.
1995년 제작된 2집은 제작자의 개인 사정으로 정식 유통이 되질 못하고 소량의 홍보용 CD만 배포되다 사장된 비운의 앨범이다. 실물을 직접 본 사람이 드물 정도로 희귀해 ‘저주받은 걸작’으로 입소문을 탔는데, 타이틀곡 ‘꿈속의 꿈’은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했다. 정식 발매가 되지 못했음에도 MBC 라디오에서 제작한 <오미희의 타임> 박스 앨범에 선곡되었고, 피시(PC)통신 천리안 음악동호회 두레마을에서 진행한 ‘우리가 죽기 전에 들어야 할 가요100곡’에도 선정되면서 그의 앨범은 특별해졌다.
공식 발매가 무산되어 희귀한 정혜선 정규 2집 CD 재킷.
김중만이 촬영한 2집 발매 당시 정혜선. 1995년.
2집 발매 무산으로 활동 동력을 잃은 정혜선은 1998년 결혼 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육아에 전념했던 그는 자녀의 성장과 더불어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마침 자신의 음반을 비싼 값에도 찾는 팬이 많다는 소식에 고맙고 미안해 보답하고 싶었다. 2017년 1인 회사를 만들어 2집 수록곡 4곡을 다시 녹음해 미니앨범을 발매한 것은 그 때문이다. 1집까지 재발매하면서 내친김에 신보 작업에 들어갔다. 20년 넘게 한 곡도 쓰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음악적 영감이 샘솟듯 콸콸 터져버렸다.
왼쪽부터 2017년 리마스터드된 정혜선 1·2집, 2019년 발매된 신보 3집 재킷사진.
자작곡 여덟 곡을 담은 3집 앨범 <시공초월>은 오랜만에 컴백한 다른 많은 가수가 반복했던 구태와는 멀찍한 간극을 둔다. 요즘 트렌드에도 잘 부합하는 전자음악, 감성적인 록발라드, 얼터너티브 록, 발라드, 모던 록 등은 더욱 깊고 넓어진 그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자칫 다양한 장르의 노래는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는 산만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창법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카리스마가 여전하다. 정혜선은 “20년 넘게 음악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계속 듣고 그리워했어요. 진부한 건 싫고 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롭고 유니크함”이라고 말한다.
24년 만에 컴백한 정혜선. 2019년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사진 최규성
정혜선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에 변화무쌍한 보컬 톤을 펼쳐내는 뮤지션이다. 그가 쓴 가사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 부조리와 비인간적인 것에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결국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따뜻함으로 귀결된다. 정혜선은 “긴 공백이 무색하게 새 음악이 계속 쏟아져 벌써 4집에 들어갈 곡들을 거의 만들었어요. 이젠 멈춤 없이 음악을 할 겁니다”라며 의욕을 보인다. 그의 정규 3집은 CD와 LP로 2월 말에 동시 발매되었는데, LP는 온라인 예약판매 단계에서 조기 품절되는 브랜드 파워를 보여주었다. 3월16일 홍대 앞 롤링홀에서는 3집 발매 기념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