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도시재생, 그 현장 속에서 1박 2일 체류

생활 밀착형 문화 숙박업으로 탈바꿈한 77년 된 ‘보안여관’

등록 : 2019-03-07 14:41 수정 : 2019-03-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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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지어 2004년까지 유지되다

2010년 옛 공간과 터 유지 재생

2017년 복합문화예술 공간 신축

경계 넘나드는 문화예술 플랫폼 실험

통의동 보안여관에도 봄이 왔다. 보안여관1942 41호 방 창가에 걸터앉으면 까치들이 노니는 풍경과 경복궁 경회루 정경이 영추문 너머로 펼쳐진다. 1942년 지금의 옛 보안여관 모습을 갖춘 이후 문인들과 예술인들, 관료들, 그리고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짐을 풀었다. 사진 전현주

'방’으로 떠났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자 길이 시작됐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으니, 모든 채비는 다 마쳤다. 여기는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41호 방이다. 창밖 너머로 3일 일요일 오후 3시께 풍경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잎사귀를 털어낸 나뭇가지 사이로 경복궁 경회루와 호수, 근정전, 하얀 샛길까지 보였다. 경복궁 서쪽으로 열린 영추문에는 사람들이 물처럼 흘러다녔다.

떠도는 이들을 더 잘 떠돌게 해주는 방


서울은 오늘도 새 방을 짓고 헌 방을 허무는 일로 바쁘다. 현재 서울에 있는 합법적 숙박업소는 대략 3200여 곳.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도 시대별 안목과 유행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안여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짓고 2004년까지도 손님을 받았다. ‘유서 깊은 서울여관’으로 손꼽힌다. 개발 논리에 밀려 그대로 삭제될 법한 공간과 터가 2010년 되살아났다. 최성우(59) 보안여관 대표는 옛 건물 골조를 그대로 두고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뒤, 2017년 복합문화예술 공간 ‘보안1942’를 나란히 신축했다. 새 건물 이름은 보안여관 천장 수리 때 발견한 ‘상량식 소화 17년’(1942년)이라 적힌 상판에서 따왔다.

보안여관 들머리를 그대로 보존했다.사진 전현주

77년 된 여관의 맥을 이어온 덕에 방마다 얘깃거리도 많다. 미당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선생이 머물며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문학의 산실’이란 별칭이 있는데, 최 대표는 “박제된 역사 속 방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숨 쉬는 방”이라며, 어제까지 방을 거쳐간 이들에게 애정을 치우쳐 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15명의 작가 그룹 루앙루파, 일본에서 온 사진작가 이타미 고, 영국과 중국에서 온 예술가들이 근래 들어 이름을 남겼다. 그 밖에 각국에서 온 패션디자이너, 엔지니어, 애니메이션 감독, 프로듀서들도 보안여관에 짐을 풀었다.

“예술가들이죠. 정주하지 않고, 묶어둘 수도 없는 이들이잖아요. 나그네들은 어디서든 잘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철학자 칸트가 말했죠. 세상 누구든 어디 가서든 적으로 간주될 수 없고, 누구든 ‘환대’받을 자격이 있다고. 떠도는 이들을 더 잘 떠돌게 해주는 일이 보안여관 정신이라 할 수 있어요.” 최 대표는 방을 거쳐간 이들의 숙박계를 보안여관 누리집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방을 알아주는 사람이 들어차야 풍경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먹고, 읽고, 자고 스스로 바탕을 만드는 방

보안1942 3·4층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 ‘보안스테이’는 7개 방마다 인왕산과 북악산, 경복궁, 통의동에서 저 멀리 효자동까지 사려 깊게 조망한다. 밤이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그림자가 빈 벽에 드리우는 방, 창문 너머 펼쳐진 디귿자 도시 한옥과 지붕을 노니는 고양이 무리가 인기인 방, 엘피(LP) 감상실로 꾸민 방, 홀로 숨어들기 좋은 방들이 있다.

한국작가들 도예작품으로 방을 채웠다.사진 전현주

개성 속에 질서가 자리했다. 41호 방은 물론, 보안여관의 모든 방은 지역 예술가들과 현대미술가들이 만든 소품으로 여백을 존중해 채워넣었다. 책상, 의자, 평상, 소반, 꽃가지 등도 유심히 볼 일이다. 이는 ‘본질적인 도시재생’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저희 보안여관 콘셉트 자체가 도시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실험하고, 사회와 중개 역할을 해나가는 일이니까요. 경계를 넘나드는 등 별걸 다 실험해보고 있죠. (웃음)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보안여관이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거예요.”

카페 겸 브랜드상품을 판매하는 보안여관1942 1층 ‘33마켓’.사진 전현주

‘편안함을 지켜준다’는 보안(保安)이란 명칭 속에서 ‘자고, 보고, 읽고, 먹고, 마시고, 걷게’ 하는 일이 박자 맞춰 이뤄진다. 2층에 ‘보안책방’이, 1층에 카페 겸 브랜드 상품 가게인 ‘33마켓’이 성업 중이다. 2년차를 맞은 책방은 한 달에 400여 권 판매 실적을 보인 적도 있다. 카페에선 한국적 다과를 곁들인 차 메뉴에 공을 들였고, 한국 현대 작가들의 도예 작품을 더불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4~5월 중 열릴 새 전시를 준비하는 지하 1층 전시 공간은 구름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는 옛 보안여관 건물 1, 2층 전시장과 궤를 같이한다. 지하 2층 술집은 현재 종료됐지만, 4월 중 열릴 새로운 콘셉트의 ‘요일별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바닥에 조선 시대 유구(집터) 4개를 그대로 보존해 노출시켰는데, 추사 김정희의 집터란 소문도 있다. 건물을 짓고 공간을 소비해온 지난 10년이 ‘생존 게임’이었다고 말하는 최 대표는 “생활 밀착형 문화 숙박업이자, 장소 특성적 예술을 생산하는 아지트”로서 보안여관을 꾸려나가는 일이 “공공성에 대한 책무”와도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오래된 여관방을 여행한다는 것

3일 저녁 7시. 보안서점에 코를 박고 머물다가 한 아름 책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과 공간을 구미에 맞게 정돈하고 차차 소요가 잦아드는 거리를 구경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깃털을 손질하던 경복궁 까치들이 청설모에게 시비를 거는 풍경, 궁궐을 청소하는 경비원들, 바삐 걷는 사람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뒤엉키며 거리가 살아나는 광경이 볼거리였다.

보안여관은 새봄을 맞아 창문에 입춘첩을 붙였다. 좀더 ‘한국적인’ 콘텐츠를 마련해 숙박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17일 보안여관 마당에서 열리는 ‘세모아’ 장터에서는 토종 먹거리와 농부들을 주제로 20여 팀 판매자들이 방문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상반기 중에는 ‘한일 관계’를 제대로 사유하는 인문학 모임이 예정됐다. 스스로 ‘궁중채화’(장인이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임을 밝힌 최 대표는 ‘우리 것에 대한 고민’이 오래된 서울 여관방을 지탱하는 힘이라 한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계속 연구하고 찾아서, 그걸 ‘보안여관스럽게’ 만들어서 보유하고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의 보안여관 방향이지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보안여관(왼쪽)과 새로 지은 보안여관1942(오른쪽)을 잇는 구름다리. 사진 전현주

방이란 한국인들 정서와 관습이 집약된 공간이다. 돌아보면 방 안에서조차 길을 잃고 헤매는 가련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거리를 방랑하는 예술가들과 나그네들에게 서울의 오랜 여관방들은 별처럼 존재한다. 그들의 결을 탐색하는 ‘방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먼 곳을 향하는 여정보다도 고되고 복될 수 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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