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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유학 말하기 용기 필요했으나
의외로 많은 사람 응원 보내줘
사회부 절반 이상, 고된 법조에서 보내
7년 전 <독학 파스타> 요리책 내며
2006년 ‘한 끼는 내 손으로’ 요리 도전
요리하며서 나를 재발견하는 즐거움
아내 적극적 후원으로 2년 전 회사 사직
망설이지 않고 이탈리아행
20년 기자 생활을 접고 이탈리아로 요리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권은중(50)씨가 이달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아스티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입학해 요리 수업 중 짬을 내어 사진을 찍었다. 권은중씨 제공
쉰이라는 반백의 나이에 유학을 간다는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언론사에서 20년 동안 펜대를 굴리던 내가 불과 칼을 쓰는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에 간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늦깎이 이탈리아 유학을 응원해주었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유학 기간이 11개월로 짧은 편인데도 마치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출국 두 달 전부터 매일같이 환송회를 가졌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일수록 그리고 자식들이 대입을 앞둔 고교생일 경우 친구들은 나를 더 많이 부러워했다.
나는 지난 8일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아스티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 ICIF)로 떠났다. 1991년 설립된 ‘이탈리아 요리 사관학교’라 하는 이곳은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 미국의 ‘미국요리학교’(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CIA)와 함께 세계 3대 서양 요리 학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많은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를 선택했을까? ‘스시 천국’ 일본과 무궁무진한 중국 그리고 서양 요리의 대명사인 프랑스 혹은 인종만큼이나 ‘요리의 용광로’라 하는 미국에도 요리 학교가 있는데 말이다. 내가 많은 나라 가운데 고민하지 않고 이탈리아행을 결정한 것은 ‘스토리아’(storia) 때문이다. 스토리아는 이탈리아어 여성 명사로 ‘역사’란 뜻이다.
옛 성을 그대로 사용한 ICIF의 모습.
봉지 커피·컵라면 즐기던 아재가 요리 유학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요리만큼 들어맞는 분야도 없다. 서양의 주식인 빵은 이집트에서 시작됐지만 진흙 화덕에서 굽던 납작한 빵에 입체감을 불어넣은 것은 고대 로마가 개발한 벽돌 오븐이다. 로마의 제빵사는 국가 공무원이었으며 빵을 나누어주던 곳은 신전이었다. 로마는 빵에 맛뿐 아니라 정치와 종교의 옷을 입혔다.
서양 음식의 짝꿍인 포도주는 로마를 빼면 말할 수가 없다. 예수 피로 맺은 성스러운 계약을 상징하는 포도주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유럽에 본격적으로 퍼졌다. 로마가 없었으면 서양 요리에 포도주는 없었다. 이처럼 빵과 포도주는 로마에서 재탄생했다.
우리의 젓가락에 해당하는 포크와 향신료의 핵심인 후추도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퍼져갔다. 파스타·커피·옥수수 등 이탈리아와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옥수수는 스페인이 유럽에 가져왔지만 뭐든지 팔려고 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에서 처음 주식으로 재배됐다. 그들은 비싼 밀은 외국에 팔고 값싼 옥수수를 먹었기 때문이다). 서양 부엌의 거의 모든 것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거나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됐다.
이런 음식의 역사는 물론 요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봉지 커피와 컵라면을 즐기던 평범한 아재였다. 아니 좀더 ‘다크’했다. 나는 20년 기자 생활의 절반을 신문사 내에서도 기피 부서인 사회부에서 보냈다. 사회부는 야근도 많고 취재도 어려워서 예나 지금이나 신문사의 ‘3D 부서’로 통한다. 병원으로 치면 외과, 경찰서로 치면 강력반쯤이다. 그것도 나는 사회부 경력 절반 이상을 법원·검찰 등을 취재하는 법조기자를 했다. 법조는 사회부에서도 가장 고된 출입처다.
법조기자는 언론사 간의 취재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악명 높다. 판결문·영장·소장 같은 일상적인 문건이 타사 기자들에게 ‘뜨거운 물을 먹이는’ 큰 특종이 된다. 검찰 출입기자들이 엠티(MT)를 가려던 날 아침, 전직 대통령 연관 가능성이 있는 비자금 기사가 나와서 아예 기자실 엠티가 취소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법조기자들은 판·검사를 만나고 수사 대상자를 만나느라 거의 매일 밤 서초동 언저리를 밤늦게까지 어슬렁거려야 했다. 나도 매일매일 새벽까지 서초동을 배회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도 스토리아를 쓰고 싶다
그런 내가 2012년 이탈리아 음식 관련 책인 <독학 파스타>를 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경북 안동에서 배추 뿌리와 생파를 간식으로 먹으며 유년을 보냈던 내가 이탈리아 요리 관련 책을 냈던 것은 나 자신도 의아했을 정도다.
'코스틸요레 다스티'의 메인 도로 어디서든 옛 성을 그대로 쓰고 있는 ICIF 건물이 잘 보인다.
책은 2012년에 나왔지만 원고는 이미 2009년에 다 써놓았다. 당시 미국발 경제 위기로 경기가 좋지 않아 직원들이 돌아가며 한 달씩 쉬는 무급휴직을 하고 있었다. 그해 9월 나는 한 달 휴직할 때 국회도서관에서 보름 만에 원고지 1천 매가량의 원고를 완성했다. 나는 그 뒤에 어떤 책도 그렇게 쉽게 쓰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뭐든지 파스타로 만들어 먹었다.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내가 요리를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처음에는 한 끼를 어떻게든 해결해볼 요량으로 시작했다. 김치칼국수와 콩나물이 첫 도전 메뉴였다. 물론 완벽한 실패였고 내가 한 음식은 먹을 수 없어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 뒤에 가장 손쉬운 요리를 찾아서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국수인 파스타가 포착됐다. 해보니 파스타는 쉽고 빠르고 맛있었다. 격무에 지친 요리사들이 주말에 쉴 때 혹은 애인과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음식이 파스타라고 한다. 파스타는 쉽지만 한 방이 있는 메뉴였다. 조개나 베이컨으로 만들던 파스타는 전복, 랍스터(바닷가재), 소갈비 등으로 화려해졌다.
그렇게 파스타를 만들다보니 어느새 한식도 중식 요리도 쉽게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요리 초보 시절 공포 그 자체였던 콩나물무침은 물론이고 심화 과정인 김치까지 담그게 됐다. 파스타로 요리의 이치를 튼 셈이다. 나는 이런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전혀 다른 소재의 책을 구상하고 있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나 한국 사회의 의미 있는 판결을 소개하는 <실록 대선자금> 혹은 <한국의 재판>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두 책은 내가 요리를 시작하면서 이내 잊혔다. 부드러운 요리가 딱딱한 법을 내 머릿속에서 몰아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나이 들어 재미를 붙인 요리는 결국 나를 일탈하게 했다. 언론계에서 드물게 정년이 보장된 <한겨레>를 그만두고 요리 유학을 떠나게 됐다. 프라이팬을 들고 있을 힘이 있을 때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행에 옮기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ICIF코리아 37기 동기들과 멀리 보이는 ICIF 건물을 배경으로 찍었다.
내가 가장 걱정한 건 체력이 아니라 아내였다. ‘마느님’(마누라+하느님의 줄임말)께서 반대표를 행사하면 사실상 어떤 결정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주말마다 해줬던 요리 덕이었을까. 아내는 요리 유학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후회가 없다”며 응원해주었다. 주말마다 오전에는 가족의 밥상을 차려놓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는 남편의 무미건조한 삶을 동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마느님의 허가를 받은 뒤 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17년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 작가로 활동하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을 떠난다면 목적지는 당연히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어를 한 마디도 못하면서 이탈리아 운운한 것은 내 요리 인생이 이탈리아의 파스타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내 차선으로 훅 들어온 파스타는 나를 늘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사회부 전공인 내게 요리책을 쓰게 했고 요리 관련 강연을 하게 했다. 심지어 내 이름으로 된 미식 여행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 역시 파스타가 보여준 길의 하나다. 나는 그 길을 나의 스토리아라고 생각한다. 쉰에 물설고 말 선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은 내 이야기를 완성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권은중 <독학 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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