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의 서울 푯돌 순례기

“나라 구하는 데 남녀 구분 있겠는가” 아직도 목소리 ‘쟁쟁’

중구 항일독립운동여성상 ‘거사 전야’

등록 : 2019-04-04 14:51 수정 : 2019-04-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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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교복 입은 두 여학생 형상화

뒷면 빼곡히 적힌 ‘낯선’ 이름들

잊혔던 여성 독립운동가 피·땀인 듯

읽는 이의 마음 슬프게 해

독립운동가 동상 93개 중 여성 7개

서대문형무소 수감 여성독립운동가 중

서훈 대상자는 7%에 불과

그들 앞 하나하나 등불 밝혀야


2·8독립선언 1백주년을 맞아 중구 정동 배재어린이공원 들머리에 세워진 항일독립운동여성상의 앞면. 뒷면에는 항일여성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이름과 조형물 건립 취지문이 적혀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중구 정동34 배재어린이공원에 있는 항일독립운동여성상 ‘거사 전야’를 찾아 길을 떠난다. 겨우 두 달 전에 세운 것이라 낯설다. 정동에 그런 게 있나 할 정도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서소문 쪽으로 100여m 걷다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고려삼계탕’ 집 앞에서 정동 로터리를 향해 서소문로11길을 250여m 따라 걸으면 닿는다.

길 왼쪽으로 지팡이를 짚은 수령 250년의 늙은 향나무 한 그루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붉은 벽돌집이 반기고, 오른쪽엔 서울시립미술관과 중부등기소가 이어진다. 조형물은 중부등기소 정면에 자연스레 놓였다. 공원은 배재정동빌딩과 빙그레 본사를 왼쪽에, JP모간프라자 빌딩과 주한러시아대사관을 오른쪽에 끼고 좁고 길게 누워 있다. 공원 끝자락 순화동은 주변 회사원들이 밥집을 찾아 오가던 굽이굽이 골목 동네였지만 지금은 고급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옛 골목은 흔적도 없다.

배재공원 들머리에 자리잡은 ‘거사 전야’는 2·8 독립선언과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동 거리의 여성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세웠다. 이화학당으로 대표되는 근대 여성 신교육의 요람 정동에 어울리는 상징 조형물이다. 정동은 한국 근대의 1번지이자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였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거사 전날 밤 풍경이다. 한복을 입은 댕기 머리 여학생이 호롱불을 비추고, 단발에 교복 차림의 다른 여학생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단발머리 소녀의 어깨 위에는 ‘평화의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작품 옆 바닥엔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가 지은 ‘안사람 의병가’ 노래가사 동판이 붙어 있고, 뒤 벽면엔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촘촘히 새겨져 있다. 마치 두 소녀가 항일 여성독립운동의 대표적 노래 ‘안사람 의병가’를 부르며, 여자독립선언서를 찍는 듯하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성 부부가 제작한 이 작품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상징조형물 건립위원회가 2·8 독립선언 100주년인 지난 2월8일 세웠다.

겉모양에 현혹되면 안 된다. 앞보다 뒤가 더 볼만하다. 푯돌 아래에 서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과감하게 위로 올라가서 잔디밭을 성큼 넘어 뒤로 돌아가야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화려한 소녀상과 독립선언서가 있는 앞면과 달리 뒤쪽 외진 곳에는 묵묵히 일한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항일여성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 있고, ‘오늘 그들 여기에’라는 설립 취지문이 새겨져 있다. 여성 독립운동의 실체이다.

푯돌의 취지문에는 “… 독립투쟁에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항일여성들은 의병, 의열단, 조선의용대, 광복군으로 무장투쟁에 가담했습니다. 일본관헌을 저격하고 반민족 행위자에게 사형선고문을 인쇄해 보내는 심리전을 벌였으며 밀정을 암살하고 일제 통치기구 시설을 폭파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군자금 모금, 군수물자 운반, 전단지 배포, 정보 수집, 연락책·수배자 침식 제공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항일여성들은 자주독립 의지를 일깨우는 교육사업과 계몽운동, 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무장 투쟁과 문화 투쟁을 벌인 무수한 여성 독립군의 존재를 잊고 있다. 이 글을 읽어야 늘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가던 여성 독립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김씨, 홍씨, 가네코 후미코, 두쥔훼이, 미네르바 구타펠, 신마실라, 최요한나, 황마리아, 조마리아, 김알렉산드리아, 남협협, 황애시덕, 윤악이, 임메불, 박우말례, 홍애시덕…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항일독립운동여성들.” 조형물 뒷면 동판에 무심하게 적힌 이름과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은 읽는 이를 슬프게 한다.

2·8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 교육자 김마리아, 사이토 총독 암살을 기도해 ‘여자 안중근’이라고 일컬어지는 남자현,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 김란사,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정정화, 신채호 선생의 부인이자 간호사들의 독립단체를 조직한 박자혜,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인으로 의열단원으로 활약한 박차정, 김구 주석의 비서이자 조선의용군 부녀대 부대장 이화림,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이었으며 간도 독립운동 세력의 살림꾼 역할을 한 이은숙 같은 낯익은 이름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357명의 이름을 새긴 듯하다.

“지식이 몽매(蒙昧)하고 신세가 연약한 아녀자의 무리이나 국민 됨은 일반이오 양심은 한가지라… 동포여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동포시여 대한독립만만세.” 벽면 가득 새겨진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여자도 무장하고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격문이다. 식민지 여성이 제국주의를 상대로 민족의 자유와 국가 독립을 선언,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8명의 여성이 공동 작성한 선언서에는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8명의 서명이 들어 있다. 그러나 김숙경만 유일하게 항일 지도자 황병길의 처와 동일 인물로 추정돼 서훈 대상에 올랐다. 나머지 7명의 이름은 독립운동 관련 자료에서 발견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조형물 앞면에 새겨진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이 자료는 1983년 미국에 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수산의 자택에서 가로 49㎝, 세로 31㎝ 크기로 발견됐다. 수산이 아버지 유품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 위해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 서명을 제외한 1335자 모두 한글로 쓰여 있었다. 선언서 말미에 ‘사천이백오십이년 이월’이라고 시일이 명시돼 있다. 여성들이 작성한 선언서 10여 종 중 3·1운동 이전에 작성한 유일한 선언서라는 데 가치가 있다. 이 선언서를 작성한 8인은 간도 지역 애국부인회 소속으로 추정된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으로 전파됐다.

조형물의 바닥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안사람 의병가’는 “…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라는 노랫말이 기백 넘친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열사가 1895년에 창작했다. 윤 의병장은 망명지 중국에서 서거하기까지 여성의병단을 결성하고, 노학당을 세워 가르쳤으며, 군자금을 모으고, 무기제조장에서 탄약과 병기를 만들었다. 초기 항일의병운동을 이끈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이 시백부였고, 제천의병장 유홍석은 시아버지였다. 남편 유제원도 의병이었으니 집안 전체가 ‘골수 의병’이었다. 의병운동 25년에 독립운동 15년을 더해 40년간 독립 활동에 투신하며 4대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을미의병에 참가해 의병가사 제작과 배포와 의병 뒷바라지를 했고, 정미의병에서는 춘천 여성 30여 명으로 구성된 ‘안사람 의병단체’를 조직해 화약과 탄약 제조, 군사 활동, 정보 수집 등을 주도했다. “나라를 구하는 데 남녀의 구분이 있겠는가!”라고 외친 윤희순 열사는 의병 항쟁과 조국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여장부였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안사람 의병가‘를 지은 윤희순 열사의 영정. 노주석 제공

국내 곳곳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동상 93개 중 여성 독립운동가의 것은 7개이다. 유관순(서울3, 진안 1개)이 4개이고, 김마리아(서울), 윤희순(춘천), 박차정(부산)이 1개씩이다. 2018년 현재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 유공자 1만5180명 가운데 여성은 2.4%인 357명이라고 한다. 2011년 202명, 2017년 296명에서 크게 늘어난 숫자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176명인데 이 중 서훈을 받은 사람은 1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이 항일여성독립운동사의 현주소다. 이름을 알 수 없고, 공적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헌신 앞에 하나하나 등불을 밝혀야 한다.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ㅣ서울전문 칼럼니스트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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