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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형의 준비물 너무 많아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 짐과 씨름
애먹인 전기밥솥·전기방석
이탈리아에서 톡톡히 효자 노릇
가장 큰 걱정거리는 체력 문제
‘병 걸리면 바로 귀국’ 두려움에
대상포진 예방주사 맞고
유학 결심 뒤 무조건 걸어다녀
이탈리아에서 인간다운 삶을 즐기게 해주는 1인용 전기밥솥. 가성비가 정말 최고다(사진 왼쪽). 처음으로 구입한 셰프용 칼가방과 칼집. 칼을 돈 주고 갈아봤더니 순하던 내 칼이 매서워졌다.
“떠나기만 해도 성공이다.”
이탈리아로 떠나는 나에게 여러 사람이 해준 격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나이 들어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기가 쉽지 않으니 떠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이탈리아에서 큰 욕심 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난 뒤 온갖 기대와 걱정으로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런데 이 말은 덕담이 아니라 예언에 가까웠다. 막상 떠나려 하니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밀라노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까지 ‘과연 내가 이탈리아로 떠날 수 있을까’ 하며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나는 국외 연수나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다. 따라서 1년 가깝게 한국을 떠나는 건 난생처음이다. 짧은 외국 여행 때도 매번 아내가 짐을 꾸렸다. 나는 그저 양말이나 속옷 정도만 챙기는 ‘속 터지게 하는’ 남편이었다. 나를 잘 아는 아내는 1년 정도 가려면 이민 가방을 쌀 각오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지만 나는 짐 꾸리기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변명하자면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인당 부칠 수 있는 짐은 20㎏ 정도다. 나머지에는 추가 요금이 붙는다. 요령껏 짐을 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체크리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이탈리아를 다녀온 지인들은 생활용품 대부분을 현지에서도 살 수 있으니 짐을 굳이 열심히 쌀 필요가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날씨도 이탈리아는 겨울이 없고 늘 가을 날씨니까 경량 패딩이면 충분하고, 그것도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물론 와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3월은 아침저녁으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꽤 춥다). 아내는 이것저것을 쌀 수 있는 큰 가방을 새로 사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평소에 쓰던 캐리어로도 충분하다고 고집을 부렸다.
셰프용 칼가방과 칼집도 처음 구입
짐을 꾸리다 전기밥솥과 전기장판을 챙기는 일로 가장 애를 먹었다. 나는 밥심으로 사는 전형적인 ‘아재’다. 이탈리아 파스타가 아무리 맛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밥을 먹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앙증맞은 1인용 전기밥솥이 있었다. 1만원대의 착하디착한 가격이었다. 그렇지만 작아도 밥솥은 밥솥이다. 이 밥솥 때문에 가방이 잠기지 않았다. 결국 밥솥의 종이박스를 벗겨 가방에 넣은 뒤 체중으로 눌렀더니 겨우 잠겼다. 우여곡절을 거쳐 가져온 이 밥솥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주말마다 밥은 물론 느긋하게 숭늉도 즐길 수 있다.
전기장판도 고민거리였다. 유럽은 바닥 난방을 하지 않아 추위를 타면 전기장판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내복을 입는 나에게 전기장판은 밥솥만큼이나 필수품이다. 그런데 매장에 가서 구들을 그대로 뜯어놓은 것처럼 늠름하게 누워 있는 전기장판들을 보고나니 말문이 막혔다. 전기장판만으로도 여행 가방이 가득 찰 것 같았다. 실제 전기장판을 가져온 사람들은 여행가방을 2개씩 들고 왔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폭 30㎝ 크기의 전기방석이었다. 이 방석은 돌돌 말 수 있어 짐의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 방석은 지금 물설고 낯선 이탈리아에서 밥솥과 함께 가장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셰프용 칼, 멀티탭, 여분의 휴대폰(이탈리아에서 휴대폰이 망가지면 신속한 수리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각종 약, 다시마(채식 선호자에겐 필수품이다), 고춧가루 등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챙길 것이 많았다. 셰프용 칼은 한국에서 날을 잡아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노량진 수산시장에까지 가서 갈아왔다. 날을 잡으니 순진하게만 보이던 내 칼이 매서워졌다. 칼을 갈러 간 길에 셰프용 칼가방과 칼집도 난생처음으로 샀다. 복잡한 짐 싸기에서 잠깐의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이 칼을 갈아주는 대장간. 한자루에 1만원씩 받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칼을 돈을 주고 갈아봤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빈약한 여행가방은 비명 질러
이런 식으로 짐이 하나둘 늘면서 안 그래도 조그만 여행 가방이 비명을 질렀다. 떠나기 전날 새벽까지 가방과 씨름해야 했다. 그날 밤 살 수만 있다면 남대문시장이든 어디든 택시를 타고 가서 큼직한 여행가방을 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덕분에 출국하는 날 집 근처에서 공항버스를 타는 그 순간까지 아내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떠나기 전 일주일 전부터 떠나는 날까지 아내에게 날마다 편지를 쓸 생각으로 사온 형형색색의 편지지는 짐을 싸느라 뜯어보지도 못했다. 1년을 못 보는 상황이었지만 로맨틱한 작별 인사는 없었다.
28인치 동기 캐리어와 22인치의 빈약한 내 키리어. 심지어 28인치 이 큰 가방을 가져온 동기는 내 캐리어만한 캐리어를 하나 더 가져왔다.
짐 싸는 것만큼 신경 써야 할 일은 많았다. 밀리면 큰일 나는 주택자금대출 이자 같은 건 일도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대상포진 예방접종이었다. 대상포진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50대 이상이 걸리기 쉬운 질환이다. 대상포진은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탈리아 의료 체계는 병원을 예약해 방문하는 시스템이다. 운이 없으면 의사를 만나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바로 귀국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상포진 말고 폐렴 두 종류와 파상풍 예방접종도 했다.
예방접종보다 더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도 있다. 하체 근력을 키우는 일이다. 요리사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주방에 서겠다는 목표로 날마다 기본 하체운동인 스쿼트를 수백 개씩 했다. 그래서 하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9월부터 토요일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나갔다.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겨우 5시간이었다. 그러나 첫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그날 저녁은 물론 일요일 오후까지 뻗어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었던 나는 무조건 걸었다. 퇴근할 때도 직장에서 집까지 1시간가량을 걸어다녔다. 미세먼지가 있든 없든 주말에는 집 근처의 산을 올랐다. 스쿼트도 그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하체가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ICIF 기숙사 전경. 주중에는 아침이 제공되지만 주말에는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탈리아 와서도 체력은 걱정거리다. 저질 체력 탓에 밤 10시면 잠이 쏟아진다. 젊은 동기들은 낮에 배운 요리를 복습하거나 기숙사 구내식당에서 외국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요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도 나는 아침마다 숙명처럼 기숙사 뒷산을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에 오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말 대신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글·사진 권은중 <독학 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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